[2013대한민국 노인보고서] 고령 일자리의 서글픈 현실 <하>

 
아파트 경비원으로 2년째 일하는 이모(65·서울 면목동)씨는 “근로환경 등에 악조건이 없진 않지만 스스로 선택한 일이니 큰 불만은 없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 하던 일과 무관하고 근무여건과 보수도 좋지 않지만, 그래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일하면서 생계를 책임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연금 등 복지제도가 취약한 우리나라에서는 이처럼 ‘힘들어도 좋다, 일자리만 다오’하는 노인들이 매우 많다.

‘힘들어도 좋다, 일자리만 다오’

그러나 노인들이 일자리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각 구청의 일자리사업팀이나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노인인력개발원(www.kordi.or.kr), 민간이 운영하는 실버잡(www.silverjobs.co.kr) 등 구직사이트가 있지만, 정보력이 떨어지고 인터넷 사용 등에도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다만 최근 들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적극적으로 노인일자리 개발에 나서면서 이를 이용하는 노인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하남실버인력뱅크에서 지하철택배원 일을 소개받은 조모(72·경기도 하남시)씨, 구청의 일자리사업팀에서 세차일을 안내받은 안모(68·서울 망원동)씨, 고용노동부 산하 서울북부고용센터를 활용한 경비원 이씨 등이 그 사례다.   

준정부기관인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고령층 대상의 일자리 개발과 알선을 지원한다. 노인일자리는 크게 다섯 가지 유형인데(표 참조), 초등학교 급식도우미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 돕기 등 공익형, 복지형 일자리의 경우 한 달에 40시간 일하고 20만원을 받는다. 이는 시급 5000원에서 5500원 사이로 최저임금기준을 겨우 넘는 수준이고, 혹한기·혹서기를 제외한 9개월밖에 기회가 없지만 지원자들이 많아 경쟁률이 꽤 높다고 한다. 노인개발원 실태조사 결과 지원자들은 대부분 생계비나 용돈 마련이 목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의 노인일자리사업 예산은 각 시·도와 군·구를 거쳐 사업수행기관으로 지원되며, 전국적으로 총 1000여개 기관이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수행기관이란 노인일자리 등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시니어클럽, 노인복지회관, 대한노인회, 노인복지센터, 사회복지관, 노인보호전문기관 등을 말한다. 이들은 사업계획을 세우고 참여자모집과 선발, 보수지급 등을 대행하므로 취업희망자는 가까운 지역의 수행기관에 문의하면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이 외에도 복지부산하 종합사회복지 노인복지관이나 고용노동부에서 운영하는 고령자취업알선센터가 있다. 이곳에서는 55세 이상에게 경비원, 미화원, 주차장관리원, 물품배달원, 매표원, 주유원, 가사도우미, 보모, 간병인, 설문조사원 등의 일자리를 소개하고 있다.

 

▲ 노인 일자리 사업 유형. ⓒ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이런 기관에서 소개하는 일자리의 문제점은 노인들의 능력과 기존 경험을 활용할 만한 직업은 극히 일부에 그치고 대부분 단순노동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린이나 청소년 등에게 전래동화, 한자, 예절, 전통놀이 등을 가르치거나 문화재해설, 통번역 등을 하는 교육형 일자리는 노인들의 경험과 능력을 살릴 수 있지만 실제 고용인원은 극소수다. 예를 들어 숲해설가는 전국 48개 사업단에 1439자리가 있고 문화재해설가는 전국 43개 사업단에 1131자리, 통번역가는 전국 5개 사업단 91자리에 불과하다. 이들 일자리 역시 노인의 건강상태를 고려해 9개월간 주 3~4일을 하루 3~4시간씩 근무하고 월 급여는 20만원이다. 특히 수익사업이 아니라 정부 재정을 일방적으로 투입하는 일자리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와 예산확충이 전제되지 않고는 인원을 늘리기 어렵다. 민간알선업체인 ‘실버잡’에도 고학력 노인들이 통번역같은 일자리를 희망하며 이력서를 올리는 경우가 있지만, 그런 일을 실제로 구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답했다. 경비원, 청소부 등의 인력파견형이 대다수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가 지원하는 노인일자리 사업예산은 2012년 기준 약 3513억 원으로 2011년의 약 3116억 원에 비해 397억 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시장진입형 일자리 중 경비원 같은 파견사업은 민간기업 등에서 돈을 주는 것이므로 지속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나이 많은 이들을 고용하려는 기업이 많지 않아 현실적으로는 그리 활발한 증가세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노인인력개발원 등과 협력해 노인친화형 일자리를 적극 만들어 내려는 기업들도 등장해 눈길을 모은다. ‘노인친화기업’으로 지정된 ㈜이웃애가 보건복지부, 노인인력개발원과 공동기획으로 만든 카페사업단이 대표적 사례다. 서울 강남구청역 앞에서 ‘노래하는 작은 숲’이란 뜻의 싱그로브 카페를 운영하는 이 회사는 1호점인 싱그로브 애비뉴점에서 하루 1백만원 이상의 짭짤한 수익을 내, 곧 서울 세곡동에 2호점을 낼 예정이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갖춘 노인들이 매장에서 매니저(관리자)급으로 일하며 커피를 직접 만든다. 1호점 직원 15명 중 노인이 12명이다. 노인들이 많이 일하는 곳이라 젊은이들이 기피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고 회사측은 밝혔다. 정부와 기업이 창의적으로 기획하고 협력하면 노인일자리가 다양하게 창출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싱그로브는 보건복지부와 노인인력개발원, 고령자 친화기업이 공동으로 계획해 만든 카페다. ⓒ 이승현

선진국은 정년 연장하고 고령자 취업교육도 강화

다채로운 경험과 능력, 지혜를 갖고 있는 노인들이 적재적소에서 건강하게 일할 수 있다면 경제발전과 사회통합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튼튼한 노인복지제도를 갖추는 것과 함께 일을 원하는 노인들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제도와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 1991년 '고령자 고용촉진법'을 제정해 60세 정년제를 확보한 데 이어 65세까지 정년을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또 2010년 기준으로 종업원 50명 이상 규모 기업 중 90% 이상이 고령자고용 의무를 이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순자 박사의 학위논문인 ‘노인취업정책에 따른 비교연구’(2011)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후생노동성을 중심으로 고령자 취업 관련 사업수행체계를 일원화하고 고령자 취업 활성화 정책을 국가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사업집행은 실버인재센터, 고령자사업단, 고령자협동조합이 전국 조직망을 형성해 담당하고 있다. '실버인재센터'는 전국에 1300여개가 설치되어 있으며 임시 취업을 주로 알선한다. 고령자협동조합은 95년 일본노동자협동조합연합회가 주도해 설립했으며, 현재 전국 30여개 도도부현(都道府県)에 설치되어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은 노동부의 직업훈련청(ETA)에서 ‘SCSEP(고령자 지역사회 서비스 고용 프로그램, Senior Community Service Employment Program)’을 시행하고 있다. 참가자의 적성을 고려한 직업교육을 통해 고령세대의 취업을 장려하고 자주적 생활능력을 증진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한국노인복지학회의 '고령자 고용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한-미간 비교연구(2009)'에 따르면 SCSEP은 매년 5억달러(약 5500억원) 내외의 사업예산을 통해 전국적으로 약 10만명 내외의 고령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 고령화위원회는 “SCSEP은 투자된 1달러당 약 1.50달러의 정책효과를 내고 있다”며 “연방정부의 정책 프로그램 중 가장 효과적”이라고 평가했다. 또 1961년에 설립된 ‘시니어소스(The Senior Source)’란 비영리조직은 고령층을 위한 취업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실시하면서 고용주들이 노인고용을 늘리도록 의식전환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 시니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는 민간 업체 '실버잡'. ⓒ 화면 갈무리

노인 일자리 늘리고 연령차별 없애야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연금 등 노인복지제도를 강화하는 한편으로 경제적 자립과 자아실현을 원하는 노인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노력을 적극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지은정 부연구위원은 “노인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하고 일자리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노인고용정책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사결과 우리나라의 55~79세 인구 중 59.9%가 일자리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처럼 광범위한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우선 정부의 관련예산을 대폭 늘리는 등 일자리의 양적확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고령근로자에 대한 기업들의 부정적인식과 차별도 노인고용을 힘들게 하는 요소인 만큼 선진국의 ‘연령차별금지법’같은 제도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지 부연구위원은 제안했다. 이와 함께 고령자 고용에 대한 장려금 지원제도와 임금피크제(일정 연령이 지나면 임금이 하락하는 보수체계) 등을 통해 고용주의 부담을 덜어주고, 이와 연계해 정년연장과 재취업 보장 등 고용안정성을 높이는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 부연구위원은 또 정부주도의 노인 일자리사업이 수익을 많이 창출해 자립할 수 있는 시장형일자리를 중심으로 확대되어야 하며 고령자들이 직업훈련을 통해 고용가능성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실질적인 교육프로그램을 개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허준수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적 기업들이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고령자 취업난을 해결할 수 있다”며 고용과 사회복지 향상에 함께 기여할 수 있는 사회적 기업 활성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준비되지 못한’ 노후를 맞이한 우리나라 노인은 절반 가까이가 빈곤층이다. 가난은 질병과 외로움 등 노년의 고통을 증폭시킨다. 불편한 몸으로 남의 밭일을 하는 농촌 노인이나 지하철택배로 생계를 유지하는 도시 노인 등 가난한 노년은 죽을 때까지 ‘밥벌이의 구차함’에서 놓여나지 못한다. 사설 요양병원에서 학대 받는 치매노인, 골방에서 혼자 숨을 거두는 고독사 등 비극적 현장도 소리 없이 늘고 있다. <단비뉴스>는 청년의 ‘가족’이자 ‘내일’인 노인의 삶에 주목했다. 그들의 현실을 생생히 드러내면서 ‘노인복지후진국’을 벗어나기 위한 과제를 점검하고, 독자와 함께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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