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흥얼흥얼 팔도 어쿠스틱’ 김예찬 기획자

‘지방에서도 서울 문화를 접하도록 하겠다.’ 2008년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 말이었다. 강신익 인제대 의대 교수는 칼럼에서 그 발언을 소개하면서 넓은 의미의 ‘문화’ 개념을 끌어와 비판했다. 문화란 인간의 삶이 표현되고 있는 행위와 행위를 이루어내는 전 과정의 사고, 그리고 그에 관련된 삶의 현상을 말한다는 것이다. 만약 유 장관이 넓은 의미의 문화를 말한 것이라면 지역의 삶 전체를 폄훼하는 망언이다. 그러나 유 장관이 ‘문화’를 좁은 의미로 이해했다면 이 발언은 일면 옳다고 할 수 있다. 좁은 의미에서 ‘문화’는 ‘교양’이나 ‘공연예술’ 전반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민들이 토로하는 문화적 박탈감은 좁은 의미의 ‘문화’에서 비롯된다. 

▲ '흥얼흥얼 팔도 어쿠스틱' 홈페이지에 실린 제주밴드 영상 갈무리. ⓒ 흥얼흥얼 팔도 어쿠스틱
‘흥얼흥얼’-이들이 팔도를 떠도는 이유 
 
문화산업시설이 전무한 지방을 돌아다니며 지역 밴드의 공연을 영상에 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문화공연장이 서울에 집중돼 무대에 서지 못하는 지역 밴드들의 연주를 웹 공간에 옮겼다. 전국 팔도를 돌며 지역 밴드들을 인터뷰하고 공연 영상을 기록하는 '흥얼흥얼 팔도 어쿠스틱’ 팀이다.
 
2010년 ‘흥얼흥얼’을 기획한 웹진 ‘모자이크’ 김예찬(28) 대표는 친구 양윤모(28)씨, 동생 김예신(25)씨와 함께 영상과 글로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만드는 웹진 ‘모자이크’를 창간했다. 점들이 모여 하나의 작품이 되는 모자이크처럼 사람들의 다양한 참여로 하나의 큰 작품을 만들어보자는 뜻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 '흥얼흥얼 팔도 어쿠스틱'을 기획한 웹진 ‘모자이크’김예찬 대표. ⓒ 장경혜
“‘흥얼흥얼’은 웹진 ‘모자이크’의 하위 프로젝트로 진행됐습니다. ‘모자이크’는 다양한 테마들을 기획해 영상과 글로 제작한 웹진인데요. 때마침 팀 내에서 테마 자체가 메인이 될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한번 해보자는 열의가 있었어요. 그렇게 탄생한 것이 ‘흥얼흥얼 팔도 어쿠스틱’입니다. 홈페이지 역시 웹진 ‘모자이크’에서 따로 분리해서 독립된 사이트를 개설했죠.”
 
웹진을 운영하며 ‘여행자의 마음’, ‘종이 위에 집 짓기’ 등 주제를 정하고 이와 관련한 다양한 영상들을 제작하면서 ‘모자이크’만의 인터뷰 문체와 영상 감각을 길렀다. 쌓인 내공을 발판으로 2011년, 팔도를 돌아다니며 지역 밴드들의 영상을 촬영하는 ‘흥얼흥얼 팔도 어쿠스틱’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지역 밴드들이 이루려는 ‘모자이크의 꿈’
 
“‘버버리 어쿠스틱’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버버리’라는 영국 명품 의류 브랜드에서 지역 뮤지션들에게 버버리 옷을 입혀놓고 연주를 시킨 적이 있어요. 자기 브랜드를 섞어서 상업적으로 마케팅한 건데, 영상과 음악이 너무 좋았어요. 저는 그 프로젝트에서 특히 ‘지역’이라는 부분에 꽂혔죠. 지역을 컨셉으로 한 음악영상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그래서 저희와 뜻을 같이 해줄 기업들을 찾았고, 취지를 잘 설명하자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 의류브랜드 '버버리' 사이트에 게재된 '버버리 어쿠스틱' 영상 갈무리. 지역밴드들이 버버리 의류를 입은 채 연주하고 있다. ⓒ 버버리 어쿠스틱
‘버버리 어쿠스틱’은 고전적 명품이라는 브랜드 이미지에 젊은 활력을 불어 넣은 마케팅이었다. 지역 밴드들 역시 버버리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 자신들의 밴드 이름과 음악을 알릴 수 있었다. 각종 매체에서 음악과 패션 그리고 미디어를 잘 융합한 바람직한 사례라는 평가를 받았던 기획이다.
 
‘흥얼흥얼’ 역시 이와 비슷하게 작업한다. 지역 뮤지션이 추천하는 장소에서 뮤지션의 공연 영상을 촬영하며, 이를 ‘흥얼흥얼’ 웹사이트에 옮긴다. 뮤지션들의 인터뷰와 촬영 뒷얘기도 함께 싣는다. 영상과 인터뷰 업데이트 홍보는 SNS를 활용하며 각종 문화 관련 사이트에도 관련 소식을 꾸준히 올린다. 가방 전문 브랜드 ‘잔 스포츠’에서 경제적 후원도 받는다.
 
영상 배경은 철저히 지역 뮤지션들 선택에 따른다. 뮤지션 자신들에게 의미 있는 공간에서 촬영이 이루어진다. 보통은 첫 공연을 한 클럽이거나 부둣가, 갈대밭 등 자신이 살아왔던 공간에서 진행된다. 단순히 음악을 소개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지역의 공간과 뮤지션을 하나로 묶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이를 통해 서울 홍대앞 등을 중심으로 음악 생태계가 몰리는 현실을 지적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 지역에 살고 있기 때문에 지역 뮤지션만이 보여줄 수 있는 공간들을 영상에 담는 것이 포인트라고 생각했습니다. 지역의 특수한 배경이나 뮤지션의 투박한 말투와 손짓 등을 통해 음악뿐 아니라 이들의 음악 세계 형성에 영향을 끼친 지역의 모습을 담고 싶었어요.”

▲ 영상이 만들어지는 과정. 편집을 거친 영상은 '흥얼흥얼 팔도 어쿠스틱' 홈페이지에 실린다. ⓒ 장경혜
지역의 문화적 박탈감은 장벽이자 기회
 
“광주의 한 밴드는 선배들이 원망스럽다 하더라고요. "지역에 남아서 계속 같이 활동해줬다면 자신들이 롤 모델이 될 수 있었을 텐데"라고 말이죠. 지역 밴드들은 자신들 음악으로 영리를 추구하기 힘든 구조이다 보니 크고 작은 지역 행사들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데요. 문제는 선배들이 서울로 다 떠나버려서 프로 밴드들의 공백이 생겨 공연료 체제 자체가 무너져버리는 겁니다. 아마추어 스쿨 밴드들만 남게 되고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가 없어져 공연료 체제가 무너지고, 생계 유지가 안 되는 거죠.”
 
김 대표는 지역에서 헌신하는 뮤지션이나 클럽 사장님이 있어야 지역 인디음악의 장(場)이 유지될 수 있다고 말한다. 중심이 되는 인물이나 공간이 지역 뮤지션의 보호막 역할을 해주는 까닭이다. 대구에서는 지역기반 클럽인 ‘헤비’가 지역 밴드들에게 공연할 장소를 마련해준다. 그러나 많은 공연클럽들이 집중된 홍대에 견주면 턱없이 부족하고 열악하다. 게다가 지역은 서울에 비해 인디음악을 찾아 다니며 관람하는 관객들이 적다 보니 공연 장소가 생길 수 없는 문제도 있다.
 
그 때문에 지역 밴드들은 음악만 하지 않고 자체 홍보로 활로를 찾는다. 밴드 ‘우물 안 개구리’는 광주 지역의 카페들을 돌면서 공연해 스스로 팬층을 만들고 적극적으로 자기들 음악을 홍보한다. 부산 밴드 ‘DHNP’의 객원 멤버 역시 부산 라디오 방송에서 고정 DJ를 하고 있다.
 
“지역의 젊은 밴드들은 자생력을 가지려 노력하고 있어요. 각자 개인이 노력해서 성장하고 그렇게 자라나가는 것은 어느 시대나 가능한 것 같아요. 그런데 인프라가 커지는 것을 목격하지는 못했어요. 그 점이 안타까워요.”
 

지역색 있는 음악만을 기대하는 건 문제
 
김 대표는 대중들이 지역이라고 해서 그 지역에 맞는 특색 있는 음악을 기대하는 것을 문제 삼았다. 자신도 그런 의도에서 ‘흥얼흥얼’ 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작업을 진행하면서 그런 접근이야 말로 지역 밴드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에서 비롯한 것임을 새롭게 성찰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사실 우리 모두는 어릴 적부터 비슷한 음악을 듣고 비슷한 문화 환경을 경험하며 성장한다. 지역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는 얘기다. 김 대표는 ‘흥얼흥얼’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전에는 문화적 취향이 엇비슷할 수 밖에 없는 한국 대중음악의 현실을 고려하지 못했다고 한다.

▲ 제주밴드 '데빌이소마르코'의 영상 중 일부. 영상은 제주 앞바다에서 촬영했다. ⓒ 흥얼흥얼 팔도 어쿠스틱
그런데도 그는 지역 환경에 영향을 받는 밴드들이 있고, 그것을 발굴할 때 느끼는 신선함이 ‘흥얼흥얼’을 진행하는 보람이라고 말한다. 제주도에서 만난 밴드 ‘데빌이소마르코’가 그 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음악에 바람과 물소리를 의도적으로 담는다. 이들처럼 독특하게 지역성을 구심력으로 삼으려는 팀들이 있는 반면 대부분 지역 밴드들 음악은 홍대에서 활동하는 밴드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역 밴드들조차 주류 인디음악의 흐름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인디음악이 트렌드가 되는 것을 지적하며, 트렌드라는 것은 유행이 지나가면 다른 유행으로 대체되기 때문에 그 아래서 음악의 다양성이 사라질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뮤지션을 뮤지션으로 대해야지 지방 뮤지션으로 대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자리가 있었습니다. 저희가 광주를 시작으로 대구, 제주, 부산, 인천 모두 한 바퀴를 큼직큼직하게 돈 상태에서, 홍대에서 이들을 전부 모아서 페스티벌을 열었어요. 뮤지션들이 지역과 상관없이 지역이라는 벽을 다 허문 상태에서 음악가로 설 수 있던 자리였죠.”

▲ 2012년 6월 30일과 7월 1일 '흥얼흥얼 팔도 어쿠스틱' 프로젝트에 참여한 지역밴드들이 서울의 '까페커몬'에 한데 모여 공연했다. ⓒ 흥얼흥얼 팔도 어쿠스틱
지역 음악 살리려는 정부∙기업 후원 있었으면…
 
현재 ‘흥얼흥얼’ 사이트는 새 단장을 기다리고 있다. ‘모자이크’팀이 임순택 감독과 함께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하면서 인력이 부족해 잠시 휴면기를 갖고 있다. 김 대표는 다채널 시대에, 자신들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음악을 이어가는 지역밴드들을 도와주는 프로젝트와 정부 지원, 기업 후원이 더 유기적으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흥얼흥얼’ 역시 지역 문화 생태계를 부흥시킬 수 있는 좋은 취지의 프로젝트였음에도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창구는 제한적이었다. 김 대표는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서 ‘흥얼흥얼’을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할 수도 있었지만 ‘비영리 공동체’로 남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요구하는 가시적 성과에 얽매이게 되고, 진행과정을 정부나 지원단체와 공유해 그들의 개입을 허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보다 주체적으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기 위한 결심이었다.
 
“저희는 여가와 영리의 타협점을 잘 찾은 것 같아요. ‘상상마당’과 함께 영상프로젝트도 작업하고 있고, 외부 기업으로부터 영상 관련 일감도 꽤 들어오는 편이거든요. 다른 영상 프리랜서들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라고 하겠지요. 저희와 같은 문화산업 종사자들이 어렵게 창조해내는 좋은 기획들이, 경제적 문제를 극복하지 못해 묻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를 위해서는 보다 유연한 정부와 사회적 기업들의 지원이 있어야겠지요. 대한민국 지역 밴드들도 명품 입고 공연할 날, 오겠죠?”

▲ '흥얼흥얼 팔도 어쿠스틱' 웹사이트. 차곡차곡 쌓인 지역공연 영상을 볼 수 있다. ⓒ 흥얼흥얼 팔도 어쿠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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