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시국사건 종횡무진하는 박주민 변호사

“국정원 사태는 진보냐 보수냐 구분 없이 다 같이 분노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국민들이, 야당 지지자건 여당 지지자건 상관없이 다 분노해야 하는 일이라는 거죠.”

서울시청 앞 광장이 다시 ‘촛불’의 열기로 뜨거워진 여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의 사무차장을 맡고 있는 박주민(41) 변호사는 누구보다 많은 땀을 흘리고 있다. 그와 민변 회원들은 지난 18대 대통령선거과정에서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여당후보에 유리한 방향으로 여론을 조작했던 이른바 ‘댓글사건’과 관련해 지난 4월 국정원 직원들을 고발했다. 또 국정원의 댓글작업이 집중적으로 이뤄진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 운영자를 대리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고소했다. 지난달 29일과 지난 5월말 두 차례 <단비뉴스>와 인터뷰한 박 변호사는 국가 최고정보기관의 대선개입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시민들이 있는 반면 무덤덤한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 박 변호사는 국정원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결과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 서용호

박 변호사와 민변의 고소•고발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나온 검찰 수사결과는 개운하지 않다. 지난 6월 14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됐지만 직접 댓글을 달았던 간부와 직원들은 기소되지 않았다. 반면 국정원의 여론조작 및 정치개입 사실을 외부에 알린 국정원의 전현직 직원 두 사람은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범죄를 직접 저지른 사람은 빠져 나가고 공익목적으로 이를 고발한 사람이 법정에 서게 된 꼴이다.

'표현의 자유 억압'과 싸운 지난 5년

국가기관의 부조리와 불법에 대해 박 변호사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은 이번 국정원 사건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후퇴시켰다'는 비판을 받은 이명박 정부 시절, 이와 관련된 상징적 사건들을 맡아서 싸웠다. ‘광우병 촛불시위’ 이후 경찰이 서울광장을 전경버스로 에워싸서 집회를 방해한 것을 문제 삼은 2009년의 ‘서울시청광장 차벽위헌소송’, 2010년 주요20개국(G20)정상회의 홍보포스터에 쥐그림을 그려넣어 기소된 대학강사 박정수씨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박 변호사는 특히 해가 진 뒤의 옥외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대한 위헌소송을 맡아 2009년 ‘야간집회금지 헌법불합치결정’을 받아내기도 했다. 차벽위헌소송에 대해서도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이 내려졌지만 쥐그림 사건에 대해서는 박씨에게 벌금 200만원이 선고됐다.

“(이명박 정부) 5년간 우리나라에서 표현의 자유가 급속도로 후퇴했어요. 국가보안법 사건, 집시법 사건, 공직선거법 사건 모두 급증했죠. (집회 등과 관련해) 일반 교통방해사건이라든지 경범죄로 표현의 자유를 얽매는 일도 많아졌어요. 표현물이 음란하다 또는 정치적 비판이 심해서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식으로 인터넷의 게시글 삭제 같은 임시조치도 엄청나게 많아졌고요.”

박근혜 정부에서는 달라질 것 같냐는 질문에 그는 “지금까지는 이명박 정부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답했다. 지난 6월 10일 서울 중구청이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농성장을 철거한 것이나 경남 밀양 송전탑과 관련 주민들의 시위를 경찰이 막는 현실 등이 그렇게 보는 근거다. 특히 지난달 25일 민변 소속 권영국 변호사 등이 대한문 앞에서 ‘집회의 자유를 찾기 위한 시민 캠페인’을 벌였다가 체포되는 일까지 벌어져 현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크다고 말했다.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경찰관을 밀쳐 다치게 한 혐의로 권 변호사에게 구속영장까지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박 변호사는 “경찰이 대한문 앞 집회를 제한하는 것에 대해 법원이 집행정지 결정까지 했는데, 현장에서 무리하게 방해하다 몸싸움을 벌이고는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성토했다.
 

▲ 박 변호사는 참여연대와 민변에서 활동하며 공익소송을 맡고 있다. ⓒ 서용호


박 변호사는 시민들이 민변에서 내놓는 성명이나 논평을 관심 있게 읽고, 거리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줘 힘이 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적인 진영논리로 모든 것을 해석하는 사람들 또한 적지 않아 걱정스럽다고 지적했다. 국정원이 국내 정치에 개입한 일이나 표현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는 문제는 진영을 떠나 모두가 문제 삼아야 할 일인데 정치적 색깔을 덧씌워서 왜곡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미국 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이 <민주주의는 가능한가>라는 책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파가 서로 상대방이 하는 얘기는 다 틀렸다, 안 듣는다는 식으로 하면 민주주의가 안 된다고 지적했어요. 그러면서 저자는 기본권이라는 걸 가지고 합의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만들어서 쌓아 올라가자고 제안했죠. 저는 이런 것들이 우리나라에서도 좀 시작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쉽지 않은 길을 계속 갈 수 있는 이유

박 변호사는 서울대에서 사법학을 전공하던 1995년부터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에서 활동했고 변호사가 된 후 2005년부터 민변에서 적극적으로 공익 소송을 맡고 있다. 법무법인 한결 소속 변호사로 일하다 지난해 12월에는 뜻을 같이 하는 친구들과 법무법인 이공을 만들었다. 민변 활동과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활동 외에 인권단체연석회의 산하 공권력감시대응팀의 일도 맡고 있다.

“어렸을 때는 그냥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 정도의 생각만 있었죠.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하면서 구체적으로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는데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변호사를 하더라도 돈을 벌기 보다는 사회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민변이나 참여연대 활동을 시작한 거죠.”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서 강자에 맞서는 공익변호사 일이 늘 보람과 기쁨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싸움은 대부분 고통스럽고, 억울한 패배를 맞는 날도 적지 않다. 경제적으로도 손해가 많다. 그런데도 그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도 잠깐 밀양 송전탑 관련해서 인권단체들과 회의를 했어요. 다들 한숨을 쉬었죠. 이거 뭐 맨날 싸워도 되는 게 없다고. 하지만 기본은 ‘해야 되니까’ 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힘들다’ 또는 ‘성과가 없다’를 당연하게 여기죠. 언젠간 조금씩 나아지겠지, 계란으로 바위를 못 깨겠지만 계란을 만개쯤 던지면 계란이 바위를 이길 때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거죠.”

 

▲ 박 변호사가 소속된 국정원 시국회의는 지난 1일 국정조사 기간 연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 참여연대 누리집

그는 ‘억울한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짠해지는 것’, ‘지금보다 더 행복해진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욕망’이 자신을 움직이는 두 가지 원동력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 변호사의 좌우명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1센티미터(cm)라도 움직이자’라고 한다. 지금은 얼마 정도 돌린 것 같냐는 질문에 그는 “1cm는 돌린 것 같다”며 “여기서 안주하지 않기 위해 자신과 싸운다”고 덧붙였다. ‘이쯤 했으니 이제 돈 벌고 살아야 되지 않을까?’, ‘내 나이에 지금도 복사해야 돼?’, ‘흰머리도 많이 나는데 집회에 가야 돼?’ 하는 생각들이 가끔 떠오르기 때문이라고. 박 변호사는 무엇을 향해 강자와의 싸움은 물론 자신과의 싸움도 거듭하며 달려가는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가 ‘참주정은 통치자 한 사람의 이익을 위한 통치형태이고, 과두정은 부자의 이익을 위한 통치형태이며, 민주정은 빈자의 이익을 위한 통치형태다’라고 말했죠. (이 땅에) 민주주의가 제대로 자리 잡아서, ‘없는 사람’들이 대우받는 사회, 그래서 모든 사람이 소중하다고 인정받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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