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

프랑스 혁명이 유혈혁명으로 치달은 데는 언론이 제구실을 못한 탓이 컸다.

1789년 7월14일 바스티유 감옥이 파리시민들에게 점령됐을 때 당시 유력지 ‘가제트 드 프랑스’는 그 사건 기사 대신 왕이 책을 선물받은 소식을 실었다. 그런 언론환경에서 ‘왕의 군대가 민중들을 마구 학살하기 시작했다’는 등 유언비어가 난무하자 혁명의 불꽃이 금방 전국으로 확산됐다. 사실대로 보도하는 신문이 있었더라면 5만명이 처형되는 참사 없이 프랑스도 영국처럼 명예혁명을 거쳐 입헌군주국이 됐을 거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다.

주말마다 열리는 국정원 규탄 촛불집회를 보도하는 태도는 보수·진보 언론이 극명하게 갈라진다. 방송과 보수신문만 보는 사람들은 시청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다. 진보신문 중에는 경향신문만이 집회 상황을 상세히 보도해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정보 욕구를 풀어주었다. 8일자에는 주말 “1만 촛불”이라고 보도했고, 15일자에는 “‘2만 촛불’, ‘국정원 민심’ 심상찮다”는 1면 머리기사와 함께 3면을 털어 촛불집회에 참석한 이유 등을 집중보도했다.

집회 기사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참가자 숫자다. 경향이 추산한 참가자 수가 얼마나 사실에 부합하는지 점검해볼 겸 해서 지난 13일 일부러 상경해 시청 앞 집회 현장에 나가보았다. 경향이 보도한 숫자는 대체로 주최 측 추산을 수용한 것이었는데, 경찰 추산은 6일 4500명, 13일 6500명이었다. 집회 참가자 수를 늘리려는 주최 측과 줄이려는 경찰의 의도가 개입됐다고 보면 아무래도 경향신문의 기사 제목은 과장된 듯하다.

인근 건물에 올라가 인파를 추산해보았다. 서울광장은 1만3207㎡에 둥근 잔디밭이 6449㎡이다. 1㎡에 한둘이 앉는다고 치고 점유면적을 곱해보았더니 대체로 경찰과 주최 측 추산의 중간쯤에 답이 나왔다.

이맘때 툭하면 ‘해운대 해수욕장에 피서인파 백만 몰렸다’는 기사가 나가는데, 10배쯤 뻥튀기한 기사라고 보면 된다. 2007년 해수욕장이 매우 붐비는 시각에 부산시소방본부와 동의대 강만기 교수팀이 항공촬영을 통해 인파밀집도를 분석한 결과다. 오후 2시에 2만5000명으로 집계됐는데 인파가 하루 네 번 바뀐다 쳐도 10만명에 불과했다.

집회 참가자 수가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에 얽매여 과장보도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1인시위’라도 그 목소리를 경청해야 하는 게 민주주의 국가의 정부다. 처음 바스티유 감옥에 몰려간 군중도 1000명에 불과했다.


  이 기사는 <경향신문>과 동시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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