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한일우호추진모임 마수부치 하루미 부대표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우면서도 마음의 거리는 가장 먼 나라. 경제와 문화 등에서 긴밀하게 교류하면서도 독도나 위안부 문제만 나오면 서로 눈에 쌍심지를 켜는 사이. ‘불행한 과거’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특별히 마음고생이 심한 사람들이 있다. 한국인과의 결혼 등으로 이 땅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이다. 이들은 ‘한일 역사를 극복하고 우호를 추진하는 모임(한일우호추진모임)’을 만들어 ‘반성을 모르는 조국을 대신해 한국인에게 사과하는’ 일련의 노력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부대표를 맡고 있는 마수부치 하루미(64) 서경대 일본어학과 교수는 지난 9일과 지난 5월 18일 두 차례 <단비뉴스>와 인터뷰를 통해 “두 나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과거사 문제를 극복하고 화해와 협력의 미래를 열어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모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가 위안부 할머니를 위해 거리로 나선 이유

▲ 한일우호추진모임의 부대표 마수부치 하루미씨는 한일관계가 화해와 협력으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조건으로 과거사문제 해결을 꼽았다. ⓒ 김남범
“일본에 있을 때는 저도 위안부 문제를 잘 몰랐습니다. 한국에 와서 처음 위안부 할머니들의 존재를 알았죠. 특히 80세가 넘는 할머니들이 매주 수요일마다 거리로 나와 집회 하시는 모습을 보고 일본인으로서 당연히 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마수부치 부대표는 10여년 전부터 개인적으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찾아가 사과와 위로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 여성들을 전쟁터에 강제로 끌고가 성적으로 착취한 만행 등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태도와, 한일 갈등을 부추기는 일부 일본 언론의 보도행태가 여전한 것을 보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할머니들이 연로하셔서 점점 기력을 잃고 있는데 일본 정부는 여전히 이 문제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몇몇 일본 정치인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가 국제적 망신을 당하기도 했잖아요. 두 나라 사이가 더 나빠지면 결국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서 태어난 우리 아이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서 우리라도 나서서 위안부 할머니들께 공개적으로 사죄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녀는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의 커뮤니티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과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40여 명과 함께 지난해 5월 30일 한일우호추진모임을 만들었다. 이들은 이후 주요 기념일 마다 거리로 나가 위안부 등 과거 일본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일본 정부의 사죄를 촉구했다. 그리고 한일우호협력을 추진하는 집회와 서명운동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운동에 동참하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지난해 8·15 광복절에는 서울과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1500여 명이 사죄운동에 참여했다. 회원 대다수는 한국으로 시집온 일본 여성들이지만 일본인 남성이나 한국인도 포함돼 있다.

 

▲ 한일우호협력모임은 현재 1,500여 명이 넘는 회원들이 전국에서 사죄 운동을 하고 있다. ⓒ 한일우호협력모임

이들의 ‘사죄운동’을 지켜본 한국인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고 한다. 일본 정부의 몰염치에 대한 분노를 한일우호모임 회원들에게 대신 쏟아 붓는 노인도 있었고, ‘고향에서 이런 일을 하는 일본인이 있다니 감동’이라며 마수부치 부대표의 손을 꼭 잡아준 재일교포도 있었다. 마수부치 부대표는 그 중에서도 지난 3월 1일 서울 프레스센터 앞에서 사죄운동을 했던 날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바람이 세게 부는 추운 날씨에도 40여 명의 회원들은 집회에 참석해 3.1절 노래를 부르며 독립운동을 하다 희생된 선열들께 사죄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한 중년 남자분이 갑자기 흰 종이 위에 한글로 무언가를 적어서 우리에게 보여주셨어요. 종이에는 ‘일본의 총은 미워하지만 평화를 사랑하는 당신들은 존경합니다’라고 적혀있었습니다. 그 분은 우리에게 큰 절을 하시고 가셨습니다. 그 때 우리도 울고 그 분도 울었습니다. ‘사죄운동을 열심히 하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싶었습니다.”

 

▲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진심어린 사죄운동에 깊이 감동하고 있다 ⓒ 한일우호협력모임

일본의 보통사람들은 까맣게 모르는 위안부 문제

그렇다면 일본 현지의 반응은 어떨까? 그녀는 위안부를 포함한 과거사에 대한 한국과 일본 국민들의 태도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우리의 활동에 대해 거의 몰라요. 일본 매스컴에서 거의 다루지 않기 때문이죠. 그동안 몇 차례 일본 언론과 접촉이 있었지만 그 때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기사를 낼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과거사에 대해 이미 충분한 대가를 치렀다고 주장하는 일본 정부와 우익 단체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어요. 일본 사람들은 한일 관계나 위안부 문제보다 중국과 영토 분쟁 중인 센카쿠 열도에  더 촉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 일본정부를 대신해 사죄운동을 하고 있는 한일우호협력모임 회원들 ⓒ 한일우호협력모임

이 같은 일본의 무관심에도 이들은 계속 노력하고 있다. 지난 2월과 3월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총리에게 한국과 일본의 공동 발전을 위해 두 나라 간 화해·협력을 추진해달라고 촉구하는 탄원서를 보내기도 했다. 회원들은 또 개인적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이 계신 ‘나눔에 집’을 종종 찾는다고 한다. 직접 만든 스시(생선초밥)로 할머니들을 대접하는 여성회원, 명절 때 할머니들 찾아가 용돈을 드리는 주한특파원 출신의 남성회원도 있다고 마수부치 부대표는 소개했다. 처음 찾아갔을 때 반가움에 눈물을 보이던 할머니들은 요즘 ‘일본 정부는 밉지만 일본 사람은 좋다’는 얘기들을 한다고.

한국인과 결혼한 일본 여성, 아이들 마음고생에 눈물도 

윤동주 시인을 좋아한다는 그녀는 남편을 만나 한국에 온 지 올해로 꼬박 30년이 됐다. 슬하에 딸을 하나 두고 대학에서 일본 문학을 가르친다. 이렇게 한국에 정착하기까지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특히 30년 전에는 지금보다 두 나라의 교류가 훨씬 적었고 일본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감은 더 컸다.

“양가 부모님들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일본어를 쓰는 것도 눈치가 보일 정도였어요. 제가 대학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는데 당시만 해도 일본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일본어를 왜 배우느냐고 물어보면 ‘일본을 알고 이기기 위해서’라고 대답하는 경우도 있었죠.”

마수부치씨처럼 한국 남자와 결혼해 국내에 정착한 아시가와 가즈에(50) 사무국장의 경우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서 한일역사에 관해 배운 날 엄마가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해 울면서 집에 돌아온 일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두 나라간의 경제 문화교류가 점점 풍성해지고 특히 ‘한류’가 일본에서 각광을 받게 되면서 한일 국민들은 서로를 한층 가깝게 느끼고 있는 것 같다고 마수부치 부대표는 진단했다.

“얼마 전 제 고향인 도치기 현(간토지방)에 갔다가 새삼 한류를 실감했습니다. 동방신기 등 한국 가수가 왔는데 이들을 보기위해 정말 많은 팬클럽 회원들이 모여 조용했던 시골마을이 북적였어요. 그중엔 제 사촌조카들도 있고요. 한 회원의 어머니는 80세가 넘으셨는데도 한국드라마에 완전 빠져서 배우들 이름을 다 안다고 합니다. 한국드라마에 열광하는 주부들 사이에서는 한국어를 공부 열풍이 불고 있고요.”

마수부치 부대표는 그래서 두 나라가 문화교류를 넘어 정치, 경제 등 다방면에서 더욱 우호적이고 밀접한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노력이 아쉽다고 강조했다. 한일 정부가 과거사를 극복하고 협력하는 길을 만들어 나가면 두 나라의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되고 세계적으로 동아시아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얘기다. 이를 위해 한일우호협력모임은 두 나라가 과거사 문제를 극복하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한일공동조사위원회를 만들어 위안부의 존재와 독도 영유권 등의 역사적 근거를 명확히 하자는 주장도 하고 있다.

 

▲ 지난 3월 1일 서울 프레스센터 앞에서 열린 사죄운동 ⓒ 한일우호협력모임

“두 나라 관계가 좋아질 만하면 위안부나 교과서 등 역사 문제가 등장해 또 갈라집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한일관계가 개선되길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만행 등) 과거사에 대해 진심으로 뉘우치고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하루 빨리 두 나라가 어두웠던 과거를 극복하고 화해 협력의 미래를 열어가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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