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MFF 경쟁부문 대상] <킨샤사 심포니> 리뷰

▲ 영화 <킨샤사 심포니> 중 한 장면. ⓒ JIMFF

배부른 사람 아닌 배고픈 사람을 위한 하모니

‘오, 벗들이여! 이 선율이 아니오! 그보다 좀 더 기쁨에 찬 노래를 부르지 않겠는가!’ 베토벤 교향곡9번은 오케스트라 공연의 단골 메뉴다. 특히 위 가사로 시작되는, 웅장한 합창 피날레는 단연 압권이다. ‘환희의 송가’(쉴러)에서 따온 가사는 힘찬 멜로디에 실려 기쁨과 희망을 전 세계에 전한다. 그런데 이 곡을 작곡하던 당시 베토벤의 삶은 곡과 정반대였다. 귀머거리가 되고, 경제적으로 궁핍해졌으며, 복잡한 가족사까지 겹쳤다. 가장 힘들었던 무렵, 그는 9번교향곡을 쓰며 희망을 꿈꿨다.

열악한 환경에서 꿈을 놓지 않고 달렸던 베토벤. 이제는 아프리카의 한 악단이 그의 마음을 담아 9번을 연주한다. 중부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 수도 킨샤사의 ‘킴방기스트 관현악단’이 바로 다큐멘터리 영화의 중심에 놓인다. 국내 유일의 악단에 단원도 225명에 이르지만 사전에 음악 교육을 받고 들어온 이는 아무도 없다. 연주는 동영상을 보고 따라하거나 음반을 듣는 등 모두 독학으로 공부한다. 악기조차 모자라, 갖고 있던 악기를 해체해본 뒤 그대로 따라 만들어 사용한다.

정전과 줄 끊어진 악기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사실 이곳은 오케스트라를 꾸려나가기 힘든 환경이다. 콩고는 80여 년 간 벨기에 식민지였고, 1960년 독립 이후에도 수많은 분쟁과 내란이 있었다. 불안정한 정세로 얼룩진 역사를 극복한 지는 아직 10년도 안 됐다. 남동부의 자연자원은 서방 자본에 의지해 개발되는데다, 혼란으로 모든 산업 활동이 위축돼 경제도 지지부진하다. 그런 상황에 오케스트라라니, 배부른 소리 아닌가?

단원들의 삶도 피폐하긴 마찬가지. 모두가 ‘투잡족(Two-job族)’이다. 시장에서 오믈렛을 팔며 첼로를 연주하는 조세핀, 약사로 일하며 튜바를 부는 퍼피, 시장에서 조화를 팔며 성악을 하는 파울린 등 사정도 다양하다. 대부분 돈에 쪼들리는 생활을 한다. 이런 사람들이, 매일 밤 전기도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연습실에 모여 베토벤과 헨델을 연주한다. 타이어 휠이나 자전거 줄을 악기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지휘자 역시 정식 음악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오케스트라로 모였고, 땀을 흠뻑 흘리며 어두운 공간에서 ‘환희의 송가’를 연습한다.

“노래를 부를 때면,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아요.” 한 여성 합창단원이 행복한 표정으로 말한다. 사실 이들의 음악은 썩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다. 연주와 노래가 거친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다. 그런데도 단원들의 표정은 프로 못지않다. 악기를 대할 때면 얼굴에는 진지함과 행복한 미소가 동시에 피어오른다.

영화는 킴방기스트 관현악단이 야외 콘서트를 하기 위해 연습하는 과정, 그리고 그 공연을 담아낸다. 단원들이 낮에 자신의 일을 하던 중, 길거리에서 연주를 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아름다운 현의 선율, 묵직한 금관악기의 음성은 빵빵대는 자동차 경적소리와 시장의 시끌벅적한 소음에 섞인다. 음악을 자세히 듣고 싶어도 소음은 무시할 수 없다. 콩고의 가난한 현실과 음악 하는 사람들의 꿈이 교차되는 지점이다. 오케스트라는커녕 클래식 음악에는 관심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악을 지키고 알리려는 이들의 소박한 소망이 부드러운 선율을 타고 세상에 번진다. 킨샤사의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자 한 감독의 의도가 드러난다.

절망 속에서 맛보는 베토벤 9번의 환희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도 ‘졸린 음악’을 한다고 외면 받던 단원들. 그럼에도 클래식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며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 이들. 결국 야외 콘서트에서 이들은 수많은 관객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는다. 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 베토벤의 9번 교향곡과 헨델 등을 연주한 그들의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하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줄 알았는데, 웬걸, 남은 장면이 더 있었다.

플루트를 부는 한 아이엄마가 사람들로 분주한 강가에 서서 쓸쓸한 곡조를 연주하는 장면이다. 이 여성은 아이와 함께 살 집을 구하느라 바쁘지만 가진 돈이 얼마 없어 힘든 상황이다. 이들은 꿈을 갖고 살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얼마나 팍팍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영화는 그 점을 강조하는 일을 잊지 않았다. 현실의 고단함을 잠시 잊고 싶을 때 그들은 악기를 들고, 또 다른 세계에서 행복을 맛보는 것이다.

▲ 영화 <킨샤사 심포니>의 마지막 장면. ⓒ JIMFF

이들의 열정이 통한 걸까? 지난해 프랑스 신문 '르 피가로(Le Figaro)'에 이들이 소개됐고, 이들에게 매료된 프랑스 파리 지역의회 의원의 도움으로 킨샤사 현장에서 지휘자 및 음악교수들의 교육 프로그램이 실시됐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지난해 창립 15주년을 맞았던 킨샤사 관현악단은 장차 아프리카에 클래식을 알리고, 프랑스 순회공연을 하는 야심찬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들 악단이 사랑스럽기는 하나, 영화는 다소 지루한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따분하게 전개되는 그들의 소소한 일상은 결코 쉽게 얻어낸 것이 아니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흑인으로만 구성된 오케스트라, 세상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지역 중 하나인 곳에서 만들어진 오케스트라, 킴방기스트 관현악단의 미래를 위해 박수를 쳐 주자.

감독정보

클라우스 비쉬만  Claus Wischmann 

프랑크푸르트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색소폰을 전공한 후, <바흐 24시간>, <모차르트 24시간> 등 고전음악 관련 대규모 국제TV이벤트의 프로듀서로 활동해왔다. 현재 음악 관련 인물소개 프로그램, 다큐멘터리, 르포르타주, 연주실황 등의 분야에서 집필과 연출을 병행하고 있다. 
 
마르틴 바에르   Martin Baer 
1963년 독일 자르뷔르켄에서 태어난 마르틴 바에르는 베를린에서 광학 및 사진기술학교를 졸업했다. 1989년부터 카메라맨, 기술스탭, 작가로 활동하며 주로 독일국영 ZDF 방송국 및 프랑스-독일합작 아르테 방송국에서 제작하는 다큐멘터리 작업들에 참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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