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걷을 궁리보다 대화복원이 먼저

▲ 제정임 저널리즘스쿨 교수
어느 마을에서 산을 넘어가는 길을 하나 닦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먼저 '어떤' 길을 낼 것인가부터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산허리를 빙 둘러가는 길을 낼 것인가, 터널을 뚫을 것인가, 아니면 산을 얼마만큼 깎아낸 뒤 그 위로 길을 닦을 것인가. 그 다음엔 그 길을 건설하는 데 돈이 얼마나 들지 계산해야 할 것이다. 소요 자금은 어떤 길을 어떤 공법으로 닦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 후에 해야 할 일이 바로 필요한 돈을 어떻게 마련할 지 결정하는 일일 것이다. 외부 도움 없이 마을 사람들끼리 해결해야 한다면 집집마다 어떤 기준에 따라 얼마씩을 분담할지, 그리고 몇 년에 걸쳐 걷을 것인지 의논을 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5일 광복절 기념사에서 '통일세'를 거론하자 '생뚱맞다' '뜬금없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은 바로 이런 상식적 절차가 무시됐기 때문이다. 과연 '어떤' 통일이 가능할지, 그 과정에서 얼마나 돈이 들지 감감한 상황에서 세금 걷을 얘기부터 꺼내니 어안이 벙벙해지는 것이다.

언론 보도를 보면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의 추산으로도 '통일 비용'은 천차만별이다. 북한이 개방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급격히 붕괴될 경우, 이후 30년간 2조1400억 달러(약 2525조 원)가 남북한의 경제통합비용으로 들 것이라고 한다. 남한의 4800만 인구가 1인당 5000만 원 넘는 부담을 져야 한다는 얘기다. 반면 북한의 점진적인 개방을 거쳐 남북통일이 성사될 경우 3220억 달러(약 380조 원, 1인당 약 790만 원)면 된다고 한다. 약 7대 1의 차이다. 이 전망의 타당성은 별도로 따져봐야겠지만, 일단 어떤 통일이냐에 따라 자금 수요가 달라질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지금 통일세를 설계할 경우 도대체 어디에 기준을 두고 시작한다는 것일까.

통일세 얘기가 더욱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남북관계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통일에서 멀어져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절 10여 년간 남북이 우여곡절 속에서도 '가까이, 더 가까이'를 실현해 왔다면, 이명박 정부 2년 반 동안의 남북관계는 '멀리, 더 멀리'를 외쳐온 것과 같다. 금강산관광 중단 등 민간 교류는 얼어붙고, 경의선 등 남북 통행은 끊기거나 위축됐으며,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악화된 군사적 대립은 남북 양쪽에서 '전쟁불사' 구호가 난무하는 지경으로 번지고 있다. 우리 군이 교전수칙을 더욱 공격적인 내용으로 바꿀 것을 검토 중이고, 북한은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대해 연일 '잔혹한 보복'을 다짐한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 통일세를 논의하자'는 제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래서 일부에서는 정부가 북한의 체제 붕괴에 따른 급작스러운 '흡수통일'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고 관측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4대 강 사업 등으로 바닥난 재정을 메우기 위해 세금 걷을 명분을 찾는 것이라는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남북 분단과 이로 인한 군사적 충돌 위험 때문에 엄청난 경제적 손해, 즉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당하고 있는 우리에게 남북의 평화공존과 통일은 안보 문제를 넘어서 '지속 가능한 경제'를 위한 핵심 조건이다. 무엇보다 평화공존을 이루지 못한다면 우리의 경제적 안정도 언제든 송두리째 뒤흔들릴 수 있다. 이런 방어적인 시각에서 한 발 나아가, 남북의 경제협력이 가져다줄 무궁무진한 기회를 주목해 보자. 남쪽의 자본과 기술, 북쪽의 노동력과 지하자원이 결합되어 엄청난 시너지(상승효과)를 발휘할 수 있고,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잇는 육로로 단숨에 유럽까지 시장을 확대할 수도 있다.

우리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1차원적 보복논리에 매달려 있는 동안 얼마나 많은 기회를 놓치고 있는지 직시해야 한다. 경제난 등 막다른 골목에서 '핵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북한과 '맞짱'을 뜰 것이 아니라, 극단적 선택을 포기하고 협력의 장으로 나오도록 끈기 있고 진정 어린 설득을 해야 할 시점이다. 그래서 남북의 화해와 경제협력이 본격화할 수 있다면 장차 우리가 걱정하는 '통일 비용'은 어떤 전문기관의 예상치보다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통일세를 거론하기 전에, 북한을 향한 '대화의 문'을 두드리는 게 먼저다.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이 칼럼은 8월 17일자 국제신문 <시론>으로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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