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국내 유일 ‘베이비박스’ 운영하는 이종락 목사

서울 난곡동 우림시장에서 주택가 오르막길을 따라 십 분쯤 걸어가면 장애아들을 거두기 위해 이종락(60) 목사가 설립한 주사랑공동체교회가 나온다. 교회 왼편으로 난 골목길을 몇 걸음 들어가면 교회건물 안으로 통하는 담벼락에 가로 70, 높이 60센티미터(cm) 크기의 ‘베이비박스’가 보인다. 손잡이를 비틀어 잡아당기면 아기를 담을 수 있는 깊이 50cm가량의 바구니가 나타난다. 박스 위쪽 유리창에는 “불가피하게 키울 수 없는 장애로 태어난 아기와 미혼모 아기를 유기하지 말고 아래 손잡이를 열고 놓아주세요”라는 안내문이 쓰여 있다. 

“박스에 아기가 들어오면 교회 2층으로 연결된 알림벨이 저절로 울려. 아이를 거둬 아픈 곳은 없는지 체크하고 경찰에 신고하면 구청에서 월요일과 목요일, 일주일에 두 번씩 아이를 데리러 오지. 혹시라도 벨소리를 듣지 못할까봐 24시간 긴장을 하고 있어야 돼.”

▲ 서울시 난곡동 주사랑공동체교회에 있는 베이비박스. ⓒ 조한빛

4년간 거둔 아기 212명 

이종락 목사는 지난달 30일 <단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2009년 처음 베이비박스를 설치한 이후 이곳을 거쳐 임시보호소나 보육원으로 간 아기가 4년간 모두 212명”이라고 설명했다. 출산우울증을 겪던 엄마가 아파트 밖으로 던지려고 했던 아기, 엄마와 함께 약을 먹고 죽을 뻔했던 아기, 태어난 지 2시간 만에 탯줄을 목에 감고 들어온 아기 등 절절한 사연을 가진 생명들이 눈물 젖은 편지 등과 함께 박스에서 발견됐다. 

▲ 이종락 목사가 베이비박스와 함께 들어왔던 편지 모음집을 보여주고 있다. ⓒ 조한빛

버려지는 생명을 안전하게 거두자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주변의 눈길이 곱지만은 않았다. 베이비박스가 2010년도쯤 언론에 보도되자 ‘아기를 쉽게 버릴 수 있게 해 유기를 조장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20여명의 장애아를 돌보고 있는 이 교회에 도움을 주던 관악구청에서는 ‘불법시설물’이라며 철거를 요구하다 응하지 않자 도우미 4명의 지원을 끊어버렸다. 이 목사는 이런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나 어렸을 때도 (먹고 살기 힘드니) 아이들이 버려져 죽었어. 그런데 (경제가 나아진) 지금도 버려져서 죽어. 대책을 세우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 무관심, 무반응, 무대책으로 내버려뒀단 거 아냐. 지금이 21세기인데, 왜 태어난 아기를 구하지 않느냐고.”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영아유기는 지난 2010년 96건에서 지난해 139건으로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 목사가 베이비박스를 생각하게 된 것도 지난 2007년 교회 문 앞에 버려진 아기를 우연히 거둬들인 게 계기였다. 새벽 3시, 굴비 상자에 담겨 있던 아기는 저체온증으로 싸늘해지고 있는 상태였다. 그는 그때 버려진 아기들을 빨리 보살피지 않으면 시체로 발견될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됐다. 그 아기를 살린 뒤 버려지는 생명을 안전하게 거두는 일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됐다. 정부와 민간이 운영하는 미혼모 보호소 등 관련시설이 국내에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절박한 처지의 아기를 복잡한 절차 없이 맡아주는 곳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입양특례법 개정 후 들어오는 아기 더 늘어   

이 목사는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 8월 개정된 입양특례법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법 개정 전에는 베이비박스에 한 달에 둘 셋, 많아야 5명 정도 들어오던 아기들이 법 개정 후 한 달 평균 18명씩으로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개정된 입양특례법은 아기를 입양 보내려는 부모의 출생신고를 의무화하고 일주일의 ‘입양 숙려기간’도 갖도록 했다. 입양을 좀 더 신중하게 결정하라는 취지지만, 가족도 모르게 출산하는 청소년 미혼모에게는 공식적인 입양을 포기하게 만드는 장애물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몰래 베이비박스를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는 게 이 목사의 분석이다. 

▲ 입양특례법의 부작용을 말하고 있는 이종락 목사. ⓒ 조한빛

그는 또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출생신고가 되지 않는 외국인 노동자의 아기, 불륜으로 태어난 아이, 이혼 후 출산한 아이도 개정된 입양특례법 때문에 버려질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걱정했다. 그래서 출생신고를 부모가 아니라 출산병원에서 하도록 하는 등 입양특례법을 현실에 맞게 개정하고 미혼모들도 떳떳하게 생활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은 정부에서 베이비박스 88곳 운영 

“관악구에서 왜 전국적인 아이들을 보호해야 되느냐는 소리도 들었어. 이거는 참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생명을 구하는 건 서울시가 하든, 관악구가 하든, 내가 하든 네가 하든 누구나 먼저 해야 되거든. 생명은 천하보다 귀한 거니까.”

이 목사에 따르면 독일은 베이비박스를 꾸준히 늘려 현재 88개를 운영 중이다. 베이비박스에 들어오는 아기들이 많아서가 아니라 한 명이라도 더 안전하게 맡길 수 있도록 여러 곳에 설치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도 하루빨리 정부 차원의 대책을 만들어 유기되는 아기들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현재 정부가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나라는 독일, 영국, 프랑스 등 17개국이라고 한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주사랑공동체의 전화가 울렸다. 

“김○○? 응, 아이 찾아서 키우려고? 그래 잘했다, 잘했어. 그러면 관악경찰서 가서, 학생 신분인데 아기를 도저히 키울 수 없어서 베이비박스에 넣었는데, (아이 아빠와) 결혼해서 이 아이를 키우려고 합니다. 정말 용서해 주시고 아이를 찾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아이 좀 찾아 달라고 하면 잘 찾아 줄 거야.”

지난달 15일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넣고 갔던 17살 여학생이라고 했다. 이 목사는 기쁜 표정으로 통화내용을 설명하며 이렇게 해서 가정으로 돌아간 아이가 50명 정도 된다고 말했다. 

▲ 이종락 목사가 '17세 엄마'와 통화하고 있다. ⓒ 조한빛

“찾아가면서 목사님, 찾아갈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는 거야. 참 그 말이 기억에 남지. 엄마가 찾아가고 아빠가 찾아갈 때 참 보람 있고 굉장히 뿌듯하지. 이런 걸 보면 베이비박스는 힘들 때 아기를 잠깐 맡겨 놓는 곳이지. 유기를 조장한다는 말 못하지.”

이 목사는 당뇨와 고혈압 증상이 있어 건강이 썩 좋지는 못하다고 한다. 아기가 들어올까 봐 24시간 신경 쓰는 일이 때론 버겁다. 다행히 자원봉사자들이 있어 구청에서 아기를 데려갈 때까지 돌봐주는 등 그의 짐을 덜어주고 있다. 그는 몸이 힘들어도 아기들이 안전해 진다고 생각하면 굉장히 행복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사람은 버리는 거 아니잖아. 쓰레기를 버리지 사람을 왜 버려. 태어난 생명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고, 치료받고 교육받을 수 있는 그런 나라를 만들어야지. 그걸 위해서 지금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 한 아이도 버려지지 않을 때까지 이 일을 계속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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