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불패] 과학영농의 본산, 농촌진흥청

사양산업을 붙들고 있는 낙후지역. 우리나라 농업과 농촌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인상이다. 그러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농업농촌문제세미나’의 일환으로 방문한 농촌진흥청은 농업이 사양산업이 아닐 뿐 더러 농촌이야말로 혁신의 현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인간이 우주선을 타더라도 먹어야 살 듯 문명은 농업 없이 발전할 수 없다. 1906년 설립된 권업모범장에 뿌리를 둔 농진청은 그간 우리나라 농업기술 개발과 보급의 총본산임을 자처해왔다. 농진청은 일반 행정부서 말고도 산하에 농업과학원 식량과학원 원예특작과학원 축산과학원을 두고 있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학생들이 농촌진흥청을 방문해 바이오장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김동현

조선시대에도 온실재배한 농업기술강국

“빛이 있으라.” 기독교에서 천지창조가 빛으로 시작됐다고 하지만, 과학에서도 식물생장의 원동력은 빛이다.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양분을 얻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에도 겨울철에 온실로 채소를 가꿔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1459년경 어의 전순의가 쓴 <산가요록>(山家要錄)에는 ‘동절양채(冬節養菜)’, 곧 겨울철에 채소를 기르는 방법이 소개돼 있다.

‘먼저 적당한 크기로 온실을 짓되 삼면을 막고 종이를 발라 기름칠을 한다. 남쪽면에도 살창을 달고 종이를 발라 기름칠을 한다. 구들을 놓되 연기가 나지 않게 잘 처리하고 온돌 위에 한 자 반 높이로 흙을 쌓고 봄 채소를 심는다.(하략)’

▲ 조선 중엽 저술된 <산가요록>에 따라 경기도 양수리 세미원에 재연해놓은 조선시대 온실. 온돌과 한지를 바른 창으로 온기를 유지해 겨울철에도 채소를 재배할 수 있었다. ⓒ 농촌진흥청

이는 1599년 네덜란드와 영국에 있었다는 온실보다 백수십년 앞선 것이지만 그렇다고 세계 최초라고 주장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로마제국 시절에도 온실과 비슷한 곳에서 식물을 재배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 선조들은 경험을 바탕으로 수많은 농사기술 서적들을 남겼는데, 그런 과학영농법 개발의 전통이 오늘날 농진청에 의해 계승되고 있는 셈이다. 농진청은 이제 인공광원과 첨단기술로 좁은 땅과 기후에 도전하고 있다. 빛을 통해 식물이 자라는 속도를 조절하고 색깔과 모양을 바꿀 수 있다. 과거 농업의 핵심은 햇볕, 흙, 물과 같은 자연과 사람이었다. 그러나 농진청 식물공장에는 햇볕과 흙, 그리고 사람이 없다.

햇볕, 흙, 사람이 필요 없는 식물공장

어린 채소들이 배양액이 담긴 박스째 수직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2층 높이 건물 천장까지 오르내리며 인공광원을 통해 광합성을 한다. 공장 안으로 병충해가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유리 벽 바깥에서 본 식물공장은 공상과학영화에서 봤던 광경이다. 씨앗을 화분에 담는 것부터 수확까지 모두 기계가 한다. 식물공장은 시설 내에서 빛, 온도, 수분, 양분 등을 조절해 생육기간을 단축하고 기후와 상관없이 안정적으로 재배할 수 있다. 작물에 최적 조건을 제공하여 최대 생산성을 올리는 농업 형태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인건비는 비슷합니다. 하지만 생산단가 차이가 큰 것은 바로 땅값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사막에서 농사지어 수출합니다. 네덜란드는 척박한 땅에서 화훼와 채소를 가꿔 수출합니다. 과학기술을 통해 땅 문제를 해결한 겁니다.”

이양호 농진청장은 우리 농업 문제의 핵심은 ‘땅값’이라 했다. 토지 소유자와 경작자가 일치하지 않아 문제가 발생한다. 땅을 고르고 씨앗을 심고 수확하는 지금까지 농업은 땅을 평면으로 이용했다. 수직형 식물공장은 몇 평의 땅을 무한대로 확장하는 고층빌딩처럼 재배면적을 넓혀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 10년 전부터 식물공장 분야 연구개발을 시작한 미국과 일본은 현재 도시 한가운데 전자동 빌딩형 식물공장을 계획하고 있다.

농업과학원 이영희 과장은 친환경 에너지로 가동할 수 있는 식물공장이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기후와 사막화 현상에 대비할 수 있다고 했다. 남극 세종기지에 설치한 식물공장은 기후 조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석유를 원료로 전기를 생산해 식물공장을 가동하지만 그 덕분에 대원들이 신선한 채소를 섭취할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 농업과학원 식물공장에서 기르는 채소들은 초기에 경제성이 문제되기도 했지만 탄소 감축, 안정 생산 등 수익 이외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현재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 농촌진흥청

전쟁 대비 하나 더 짓는 한국판 ‘노아의 방주’

“배추값이 금값이라는 말은 옛말이에요. 이젠 배추값이 파프리카 값이라고 하세요.”

농업유전자원센터 박홍재 농업연구관이 종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한 말이다. 실제로 금 1g은 6만원인데 파프리카 종자 1g은 12만원이다. 1회 재배 후 다시 쓸 수 없게 돼있는 파프리카 종자는 네덜란드에서 사와야 한다. 한국 영토 3분의1밖에 안 되는 네덜란드는 국토 절반이 해수면 이하다. 하지만 농식품 수출량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15년 전부터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교육에 농업예산을 배분하고 꾸준히 연구개발을 해온 결과다. 

농진청 농업기술연구센터가 ‘가치혁명’을 기치로 토종종자 보존과 종자특허 보존, 신품종 개발에 힘을 쏟는 이유다. 농진청은 70년대 통일벼와 새마을운동으로 대표되는 녹색혁명을 통해 전국민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데 기여했다. 이제는 첨단기술 농업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국민의 먹거리를 지키는 역할을 한다. 농진청은 내년에 전북 전주 등으로 이전되지만 농업유전자원센터는 현재 건물을 유지하면서 하나 더 짓게 된다. 특별한 사고 등으로 보존에 실패할지도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 농업유전자원센터의 종자저장고와 초저온 보존시설에서는 종자 50만 점과 미생물 5만 점 등을 보존할 수 있다. ⓒ 김동현

농업유전자원센터에는 거대한 방마다 스테인리스 철 선반이 빼곡히 늘어서있다. 선반에 보관된 종자들은 관제실에서 컴퓨터를 조작하면 레일을 타고 자동으로 반출된다. 2008년 세계종자안전중복보존소 인증을 받은 농업유전자원센터는 세계 6위 규모로 종자 50만 종을 보유할 수 있다. 기후변화로 매일 150여종의 동식물이 멸종될 만큼 생물다양성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특히 식량과 의약품, 생명공학산업의 기본 재료인 농업유전자원은 한 번 사라지면 다시 만들 수 없다.

‘농부는 죽어도 씨앗을 베고 죽는다’는 우리 속담에서 알 수 있듯 종자는 농업의 핵심이다. 이제 국제법에 의해 종자는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고 이용하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농업지식재산권을 놓고 자원보유국과 자원도입국, 다국적 농업기업과 정부 등 이해당사자 간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농업유전자원센터는 25만 여종의 종자를 보관하고, 미국 일본 등지에 가있는 우리 종자를 되찾는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지금은 사라질 위기에 놓인 식물의 종자가 미래 환경변화에 따른 생산량 감소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연을 이길 수 없어요. 아무리 뛰어난 과학이라도 자연을 따르고 닮는 과정일 뿐이에요.”

박홍재 연구관은 특이한 콩이나 식물을 보면 연락해달하고 부탁했다. 사라지는 종자를 지키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종자주권이다. 신종플루로 불린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창궐했을 때 타미플루는 그 병을 퇴치하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스위스 제약회사 ‘로슈홀딩’은 중국의 토착 향료식물에 불과했던 팔각회향을 활용해 신종플루 치료제인 ‘타미플루’를 개발했다. 종자 독점을 통해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산하는 약으로 연간 20억∼30억 달러의 부가가치를 올리고 있다. 우리도 항암•항생물질 성분을 가진 마늘의 알리신, 은행잎의 징콜라이드, 주목의 택솔 성분 등을 이미 활용하고 있고, 아직 밝혀내지 못한 미지의 물질•성분을 함유한 수많은 자원이 개발을 기다리고 있다.

도시도 농업과 친구가 될 수 있어

인류가 농경사회로 접어들면서 농민은 존경받는 직업이었고 농업은 경외되는 산업이었다. 그러나 산업화 물결 속에 농민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려들면서 어느새 농업은 시골 오지의 낙후된 산업이 되어있었다. 도시는 농업과 상관없는 잿빛 공간이 되었다. 농진청 도시농업연구팀은 잿빛 도시에 푸르름을 돌려놓고 도시가 농업을 친구 삼게 하는 일을 한다. 굳이 소득창출을 목표로 하지 않는 도시농업은 일반농업과 다른 차원의 기술 개발을 필요로 한다. 도시농업팀 정순진 연구사는 “도시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도시민이 주체가 되어 이루어지는 것이 도시농업”이라고 소개했다. 도시민들이 농업을 쉽고 편하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 지속 가능한 환경을 만들기 위한 기술이 중요하다.

▲ 호롱불의 심지가 기름을 빨아올려주는 것과 같이 심지를 통해 물통의 물을 올려 화분에 공급해주는 심지관수형 LED 채소재배기. ⓒ 농촌진흥청

상추와 쑥갓이 발광다이오드(LED) 빛을 쬐며 광합성을 하고 채소재배기 속 식물들은 심지를 이용해 물을 빨아들인다. 커다란 거울이나 벽면 가득 올망졸망 붙어있는 화분들은 초록빛을 내뿜는다. 실내에서 활용할 수 있는 농업기술을 개발해온 결과다. 빛이 부족한 실내에서 작물을 키울 수 있고 물은 심지로 빨아올리는 심지관수형 채소재배기와 부착형 화분도 개발돼 재배법이 간편해졌다.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긴 도시민이 농업에 가까워 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텃밭이 꼭 꽃밭 같죠? 일반 텃밭처럼 간격 맞춘 직사각형이 아니니까요. 여긴 텃밭정원이에요. 적색을 몰아 심고 녹색을 몰아 심는 등 디자인을 하는 게 가능하고 꽃을 피우는 채소들로 경관을 조성할 수도 있어요. 텃밭정원은 수확만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 텃밭과 달리 수확과 감상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공간이죠.”

건물 밖으로 나가니 독특하게 생긴 텃밭정원이 나타났다. 텃밭정원 한 켠에는 벤치와 테이블을 갖춰놓아 일하다가도 쉴 수 있게 돼 있었다. 정 연구사는 도시민들이 최대한 편하고 가깝게 느낄 수 있는 농업공간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화장실, 주차공간까지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시의 삭막한 공간을 대상으로 한 녹화사업도 중요한 과제다. 도시농업팀은 건물의 벽면이나 옥상 같은 인공지반의 소재에 따라 어떤 기술을 접목할 수 있는지 연구하고 있다. 도시의 휑한 콘크리트 벽면을 싱그러운 생명으로 채울 수 있다면 도시 환경은 한결 나아질 수 있다.

▲ 옥상공간의 농업적 활용을 위해 콘크리트라는 인공지반 위에 토양층을 조성해 작물을 재배하는 옥상정원. ⓒ 농촌진흥청

최근 베란다나 옥상에서 식물을 기르거나 주말텃밭을 가꾸는 등 도시농업에 관심을 갖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 한다. 하지만 아직도 도시와 농업은 잘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도시농업연구팀은 잿빛 도시에 초록빛이 돌도록, 도시민의 삶에 농업이 자리 잡도록 기술개발에 힘쓰고 있다.

진정한 ‘첨단’은 무엇일까 고민 필요

어쩌다 농업이 우리 사회에서 이토록 무시당하고 소외 받게 됐을까? 예부터 농업은 우리네 삶의 근간이자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산업화 시대 경제발전도 그 기초는 농업이었다. ‘첨단’의 사전적 뜻풀이는 ‘시대사조와 학문, 유행의 맨 앞 장’이다. 농진청에 본 농업은 농업이야말로 첨단산업임을 깨우쳐주었다.

하지만 한자어 ‘첨단’(尖端)의 또 다른 뜻은 ‘물체의 뾰족한 끝’이다. 쌀을 뺀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2011년 기준으로 불과 3.4%였다. 쌀을 넣은 식량자급률(사료포함)도 22.6%에 지나지 않는다. 프랑스 174%, 캐나다 180%, 호주 241%와 비교하면 처참한 수준이다. 우리가 농업을 등한시하며 다른 산업의 성장에만 몰두한 결과다. 먼 앞날은 생각지 않고 앞만 바라보고 내달리는 첨단은 날카로운 칼이 되어 우리를 겨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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