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문성근 등 각계인사 성명, 서울대 등 대학가 시국선언

“지금 대한민국은 거꾸로 가고 있다. 민주주의는 암흑의 시대로 가고 있다. 대한민국과 민주주의의 위기다. 어렵게 이뤄낸 민주주의와 헌법적 가치가 근본부터 무너지고 있다.”

20일 오후1시 서울 삼청동 진선갤러리 앞에서 시인 안도현 씨가 ‘국정원(국가정보원) 선거개입에 관한 우리들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그의 옆에는 공연연출가 탁현민씨와 배우 문성근, 주진우 시사인 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달할 꽃다발과 성명서를 들고 나란히 섰다. 이들은 성명에서 “지난 대선 때 자행된 국정원의 선거개입 정치공작은 변명할 여지가 없는 국기문란이자 헌법파괴”라며 “박근혜 대통령이 진심으로 사과하고, 강도 높게 ‘책임자 처벌’ ‘정보기관 개혁’ ‘수사기관 독립’ 방안을 내놓길 엄중하게 요구한다”고 밝혔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입장 표명

이 성명에는 시인 도종환, 영화감독 정지영, 조국 서울대교수, 표창원 전 경찰대교수, 진중권 동양대 교수도 작성자로 함께 이름을 올렸다. 탁현민씨는 “우리는 소속 조직의 일원이 아닌 각 개인의 자격으로 여기에서 입장을 밝히게 됐다”며 “이번 사건에 대해 한국에 사는 모든 분들이 생각하고, 개인들의 요구를 모아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안도현 시인이 국정원 선거개입 및 검찰의 표적수사에 항의하는 긴급성명서를 읽고 있다. ⓒ 이성제

문성근씨는 “선거 후 국정원 개입이 명백히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최대 수혜자인 박근혜 대통령이 얼마나 철저히 밝힐지 의심스럽다”며 “시민들이 광범위하고 자연스럽게 조직되어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안도현씨는 “국정조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 지켜볼 것”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 앞에 사죄하는 게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새누리당과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국정원 직원 댓글 의혹’ 관련 국정조사를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성명서 낭독과 기자회견을 마친 후 안 시인 등은 성명서와 꽃다발을 전달하기 위해 인근 청와대 민원실로 향했다. 현장을 둘러싸고 있던 경찰은 이들의 진로를 터주었지만 취재진과 이들을 보러온 시민들의 통행은 막았다. 청와대로 향하는 좁은 인도에 취재진과 시민, 경찰들이 뒤엉켰고, “취재를 왜 막느냐”는 등의 고함이 오가기도 했다. 안 시인 등은 경찰 측과 10여분 동안 협의했지만, 경찰이 청와대 민원실 입장을 막자 꽃다발과 성명서를 경찰 대열 앞 길바닥에 내려놓고 뒤돌아 나왔다. 탁현민씨는 “이정도 목소리에도 반응이 없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분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청와대 민원실에 성명서와 꽃다발을 전달하려다 경찰들에게 저지당하고 있다. ⓒ 이성제

 

▲ 전달되지 못한 꽃다발과 성명서들이 청와대 가는 삼청동 길에 놓여있다. ⓒ 이성제

대학생과 시민단체 시국선언도 줄 이어

이에 앞서 오전 11시 서울대 총학생회는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정문에서 검찰의 국정원 선거개입 부실수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날인 19일 ‘국가정보원 선거개입과 경찰 축소수사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던 서울대 총학생회는 이날 회견에서 “사건의 핵심은 공공기관에 의한 민주주의 제도 훼손”이라고 지적했다. 김형래 총학생회장(23·산림과학부)은 “국민의 통제를 받지 않고 불법적이며 은밀하게 행사한 권력이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헌법 1조를 공문구로 만들었다”며 관련 국정원 인사와 경찰관계자의 처벌을 요구했다.

이날 기자회견과 관련 서울대 총학생회 최석원 정책기획국장(24·경영대)은 “검찰이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한 뒤 ‘스누라이프’를 비롯한 서울대의 다양한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총학생회의 의견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컸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화여대 총학생회도 이날 서울 대현동 본교 정문 앞에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국정원 선거 개입과 경찰 축소수사를 규탄한다’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또 경희대와 성공회대 총학생회도 같은 날 시국선언문을 발표했으며 동국대 총학생회는 교내 중앙도서관 앞에서 서명운동을 벌인 뒤 21일 경희대, 성공회대와 함께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고려대와 연세대 총학생회도 공동 시국선언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사회단체들도 시국선언에 동참하고 있다. 전·현직 경찰관들의 모임인 '대한민국 무궁화클럽'은 이날 오전 서울 미근동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원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선거개입을 규탄했다. 지난 18일에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10곳이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국가정보원 정치공작사건 축소수사’를 비판하고 국회 국정조사를 통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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