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고공시위 130여일, 재능교육 여민희 오수영씨

지상에서 약 25미터(m), 건물 10층 높이의 서울 혜화동성당 종탑 옥상에 오른 순간 몸이 먼저 긴장했다. 바닥에 발을 꽉 밀어 붙이며 옥상 끝자락에 서자 4차선 도로를 지나는 버스도, 인도를 걷는 사람들도 아득하게 보였다. 머릿속이 핑 돌면서 몸이 휘청했다. 가슴이 철렁해 금방 뒤로 물러섰다. 한 평 반 남짓의 평평한 옥상을 둘러싸고 있는 난간은 겨우 발목 높이의 빨간 벽돌들 뿐. 이곳에 4인용 텐트를 치고 절반쯤 남은 공간을 마당삼아 여민희(40), 오수영(39)씨는 130여일을 지내왔다.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재능교육지부의 ‘종탑 농성장’이다.

“커피 한 잔 드실래요? 고공에서 마시는 커피가 흔치 않아요.”

지난 12일 오후 5시쯤 인터뷰를 위해 올라간 기자가 고공에서 순간적으로 당황한 모습을 보이자 여씨는 따끈한 믹스커피를 종이잔에 타서 건넸다.

▲ 오수영(왼쪽), 여민희씨는 지난 2월 6일부터 혜화동성당 종탑에서 고공농성 중이다. ⓒ 박소연

2000일 지상투쟁, 127일 고공농성

재능교육 노조는 단체협약 원상회복과 해고자 12명 전원복직(사망자 1인 포함), 노동조합 인정 등을 요구하며 6년째 회사 측과 싸우고 있다. 지난 2007년 12월, 학습지를 그만두는 회원이 많아질수록 임금이 삭감되는 수수료제도에 반대하며 시작한 농성이 지난 11일로 2000일을 넘겼다. 이 기간 중 오씨와 여씨는 해고를 당했다. 현재 노조지부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오씨는 지난 2001년 학습지교사로 입사해 일하다 회사와의 대립이 시작된 직후인 2008년 해고통보를 받았다. 1998년에 입사한 여씨는 오씨보다 2년 뒤인 2010년 해고됐다.

재능교육 노조의 투쟁은 지난 2월 26일로 1895일을 넘기면서 한때 기륭전자노조가 갖고 있던 ‘최장기 비정규직 투쟁사업장’ 기록을 갈아치웠다. 여씨와 오씨가 지난 2월 6일, 눈 쌓인 종탑 옥상에 텐트를 치고 고공농성을 시작한 지도 이날로 127일이 지났다. 오씨는 그렇게 많은 날이 지났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가요. 때가 되면 밥 챙겨먹고, 트위터 등으로 투쟁 소식 알리고, 문서 작업도 해야 해요. 매일 저녁마다 시민, 연대단체들과 함께 하는 문화제가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 농성장에서) 열리는데 무선마이크가 있어서 저희가 발언을 할 수 있어요. 오늘은 무슨 얘기를 할까 생각하다보면 하루가 금방 가거든요.”

▲ 울타리가 없는 종탑 옥상에서 두 조합원의 모습이 위태로워 보인다. ⓒ 박소연

이들이 투쟁 초기부터 고공농성을 작정했던 것은 아니다. 여씨는 “그동안 단식도 해보고, 삭발도 해봤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본사 인근의) 종탑에 오르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조합 내부에서도 말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들이 종탑에 올라와 있기 때문에 다른 조합원들도 본사 건물 앞에서 사측의 큰 방해 없이 농성을 이어갈 수 있음을 다들 인정한다고 여씨는 말했다.

“종탑에 오르기 전까지는 본사 앞에 한 번도 제대로 농성장을 쳐본 적이 없어요. 지금은 종탑 위에서 저희가 지켜보고 있으니까 함부로 하지 못하는 거죠.”

종탑에서 이들을 만나기 전, 지상 농성장에서 본 전국학습지산업노조 황창훈(40) 위원장 직무대행도 같은 얘기를 했다. 재능교육 본사 건물 주위에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이 21대나 설치돼 노조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는데, 이제는 종탑 위 두 조합원이 ‘노조를 위한 CCTV’ 역할을 해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측이 예전처럼 용역을 동원해 조합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집회를 방해하기 어렵게 됐다고 한다.  

노사간 교섭은 평행선, 특수고용직의 설움

종탑 위 두 조합원이 하루를 보내는 일은 사실 만만치 않아 보였다. 식사는 조합원들이 밧줄로 올려줘야 해결할 수 있다. 추위와 더위는 이들에게 회사만큼이나 가혹한 ‘적’이다. 5월까지도 해가 지면 겨울 점퍼를 입어야 할 만큼 추웠고, 이제는 폭우와 무더위가 이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좁고 위험한 공간에서 생활하다보니 운동부족으로 몸도 꽤 상했다. 이들은 지난 50일 동안 매일 오전 8시 30분부터 승리를 염원하며 절하는 ‘100배서원’을 해 왔는데, 여기에는 건강을 챙기려는 운동 목적도 있다고 한다.

농성이 길어지면서 가족을 챙기지 못하는 미안함도 커진다고 두 사람은 말했다. 오씨의 남편과 9살 난 아들은 지상 농성장에 자주 온다고 한다. 오씨는 “지난달에는 아들이 농성장에 와서 노래를 불러줬다”고 말했다. 스피커 음향이 커서 종탑 옥상에서도 지상의 집회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독신인 여씨도 남동생 등 가족이 종종 찾아온다고 한다.

▲ 농성 2000일이던 지난 11일 밤에는 계속 비가 내렸다. ⓒ 홍우람

고공에서 기약 없는 투쟁을 이어가면서도 오씨는 “본사 앞 농성장을 지키는 조합원들이 더 고생”이라고 걱정했다. 이현숙(39·여), 정순일(40)씨 등 지상의 여러 노조원들도 밤새 돌아가며 농성장을 지키고,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등 밤낮 없이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동료들은 시위하는 틈틈이 여씨와 오씨의 식사를 챙기는 등 뒷바라지를 한다. 이날 아침에는 ‘죽이 먹고 싶다’는 오씨의 문자메시지를 받고 정순일씨가 인근 죽 전문점에서 흑임자죽 등을 포장해 종탑에 올려주기도 했다. 오씨는 이런 동료들이 있기 때문에 고공농성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버티기. 종탑 위에서는 버티는 것 말고 특별히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요. 현실과 부딪히면서 일을 하는 건 밑에 있는 조합원들이에요. 우리를 잘 모르는 사람들과도 만나서 우리의 투쟁을 설명하고 설득도 해야 하죠. 맘에 들지 않는 사측과 만나서 논의해야 할 일도 있고요.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어요.”

사측과는 지난해 8월까지 14차례 노사 교섭이 있었지만 결렬됐다. 지난해 8월 28일 재능교육 사측은 해고자 11명 복직과 노조에 대한 민형사상 고소고발 취하 등의 내용을 담은 협상안을 제시했다. 단체협약 체결 등은 복귀 후에 논의하자고 했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의 실체인정을 전제로 하는 기존 단체협약을 원상회복시켜야 한다며 이 제안을 거부했다.

“단체 협약을 새로 체결하려면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 장담할 수 없어요. 1년 이상 걸릴 수도 있죠. 원래 있던 단체협약을 사측이 일방적으로 파기했으니 원상회복시키고 우리를 복직시키면 되는 일이에요. 지금 상황에선 복직한다고 해도 사측이 정말 노조를 인정하고 단체협약 교섭에 나설 지 알 수 없고요.”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8년간의 투쟁 끝에 지난달 복직했지만 회사측이 ‘생산라인이 없다’며 일감을 주지 않고 있는 것을 봐도 복직이 능사는 아니라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여씨는 오랫동안 사측이 노조를 탄압해왔기 때문에 사측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1999년 11월에 처음 재능교육 노조가 설립된 후 한 때 조합원이 3천800여명에 이르렀어요. 이후 사측에서 직원의 집까지 찾아가 노조 탈퇴를 종용하고, 조합 간부들에게는 수업을 배정하지 않는 등 탄압이 엄청났죠. 2007년에는 결국 조합원이 100여명밖에 남지 않게 됐어요.”

▲ 재능교육 본사 앞 농성장 모습. 조합원들의 요구를 담은 선전물이 보인다. ⓒ 홍우람

재능교육지부의 어려움은 특수고용직 노동자라는 신분 탓도 있다. 학습지 교사, 보험모집인, 택배 기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등은 대표적인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노동의 대가로 사업주에게서 임금을 받지만, 법적으로는 개인사업자나 위탁계약자로 분류돼 근로기준법과 산재보험 등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노동자이면서 노동자가 누려야 할 권리가 제약되는 특수고용직이 현재 분류 기준에 따라 80만~250여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노동계는 추정한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노동관련법 개정을 통해 자신들의 노동권을 제대로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평범한 사람도 극단에 몰릴 수 있는 현실”

오후 6시 정각이 되자 묵직한 종소리가 혜화동 전역에 울려 퍼졌다. 혜화동성당은 오전 6시, 정오, 오후 6시 등 하루 세 번, 한 번에 21회 타종한다. 종소리 때문에 불편하진 않느냐는 질문에 오씨는 노동자답게 답했다.

“성당에는 저희가 불청객이죠. 그리고 종 치는 분들이 모두 노인들이에요. 그분들이 24시간 교대근무를 하면서 하루 세 번 종탑까지 가파른 계단을 올라오시는 거예요. 어떻게 일하시는지 알면 불만을 가질 수 없어요.”

▲ 취재진에게 인사하는 여민희, 오수영씨 모습. ⓒ 박소연

인터뷰가 마무리된 오후 6시 반, 농성 2001일의 해가 서서히 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날짜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오씨는 “밑에 있는 조합원들이 지치지 않도록 종탑 위에서 건강히 잘 버티는 게 우리가 할 일”이라고 다짐했다. 두 조합원은 자신들을 특별하게도, 불쌍하게도 여기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특별한 사람이라 생각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저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언제라도 극단에 몰릴 수 있는 게 지금 우리나라 현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언젠가 나의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연대해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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