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박근혜 비판 후 명예교수 탈락한 정지창 전 교수

그는 지난 29년간 영남대의 역사를 지켜봤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될 때 눈치 보지 않고 목소리를 냈다. 그 대가는 정년퇴임한 교수들이 대부분 문제없이 추대되는 명예교수직 배제. 지난 2월 퇴임 후에도 학교 측과 각을 세우고 있는 영남대 정지창(65·독어독문학) 전 교수를 지난달 22일 대구에서 만났다. 이날 ‘영남대재단 정상화를 위한 범시민대책위원회’는 정지창 명예교수 추대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영남대가 학교의 명예를 스스로 훼손하는 자해행위를 하고 있다”며 “학교와 재단 측은 더 늦기 전에 명예교수 배제 결정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박정희 비판하면 '배신자'되는 대학

“영남대는 지금 정상적인 학문공동체가 아니라 일종의 신앙공동체가 됐습니다.”

정 전 교수는 지난 3월 영남대교원인사위원회가 ‘학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자신을 명예교수 추대 대상에서 제외한 데 대해 이렇게 꼬집었다. 그는 지난해 9월 영남대 범시민대책위 공동대표를 맡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의 영남학원 재단 완전 퇴진과 박정희 전 대통령 미화교육 중단 등을 요구했다. 재단 측은 정 전 교수의 주장이 근거 없다고 일축했다. 

▲ 영남대재단 비판 후 명예교수 추대에서 배제된 정지창 전 교수의 모습. ⓒ 오마이뉴스 김수희 시민기자

“대학은 토론하고 논의하는 학문공동체입니다. 하지만 지금 영남대는 ‘너 박정희와 새마을 운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는 질문에 부정적으로 답하면 ‘넌 여기에 있을 자격이 없다’며 내쫓는 신앙공동체가 되어 버렸어요. 대학구성원들에게 일정한 사고방식을 강요하고 거기에 맞지 않으면 쫓아버립니다. 박정희를 비판하면 ‘배신자’, ‘친북좌빨’이라고 몰아세우는데, 이렇게 되면 대학에서 학문과 양심의 자유가 존중받지 못하게 됩니다.”

영남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으로 꼽히는 새마을운동을 영남대의 ‘브랜드’로 정착시킨다는 목표 아래 2010년 박정희리더십연구원과 2011년 새마을정책대학원을 설립했다. 영남대가 이렇게 ‘박정희 정신’을 강조하는 것은 박 전 대통령이 이 학교를 권력으로 ‘강탈’했고, 1980년 이후 박근혜 전 이사장이 재단의 실권을 행사하면서 학교를 사유화했기 때문이라는 게 정 전 교수의 주장이다. 정 전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이 겉으로는 ‘영남대에서 손을 뗐다’고 말하면서 사실상 인사권을 행사하는 등 정직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영남대의 역사는 복잡하다. 이 학교는 1967년 대구대와 청구대를 통합해 만들어졌는데, 대구대 설립자인 최준 선생이 ‘한강 이남에서 제일가는 대학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삼성 이병철 회장에게 운영권을 맡겼다고 한다. 그런데 1966년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곤경에 처한 이 회장이 대구대를 박정희 정권에 헌납했다는 게 정 전 교수와 시민대책위의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소유주인 최준은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1979년 박 전 대통령이 저격당한 후) 박근혜씨가 오직 그의 딸이라는 이유로 영남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것도 부당합니다. 정당하게 설립한 대학도 아니고 남에게 빼앗아서 만든 대학을 상속하듯 넘겨주는 것은 타당하지 않아요.”

주인 잃은 영남대, "박근혜 대통령이 손 떼야 정상화"

1980년 박근혜 이사장이 부임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영남대의 주인은 박정희’라는 것을 정관에 못 박는 일이었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은 설립과정에서 1원도 출연하지 않았지만 영남학원법인 정관 1장1조에 ‘교주 박정희’라는 문구가 81년도에 들어갔다. 하지만 88년도에 재단은 부정입학, 사용처 불명의 재정집행, 토지무단매각 등의 비리로 위기를 맞았고 박 이사장은 불명예퇴진한다. 

“박근혜씨는 당시 학교 일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다고 성명을 발표했어요. 그런 사람이 20년이 지난 2009년 재단 정이사 7명 중 4명을 추천했어요. 사실상 박근혜 체제가 돌아온 거죠.”

▲ 박정희정책새마을대학원(위)과 박정희리더십연구원(아래) 홈페이지.

대구대를 설립한 최준 선생과 청구대를 설립한 최해청 선생은 상해 임시정부에 자금을 대고 민족자본을 키우거나 독립국가의 기둥이 될 청년을 키우자는 취지로 교육사업에 나선 애국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유족은 지금 영남대에 대해 아무런 소유권과 발언권이 없다. 대신 재단과 학교는 ‘손을 떼겠다’고 공언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으며, 이들은 ‘박정희 미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 정 전 교수의 주장이다. 

“새마을운동에는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면이 같이 존재합니다. 새마을운동으로 농촌소득이 10배 정도 늘어났다고 하는데 다른 통계를 보면 농촌 빚은 18배로 늘어났어요. 이렇듯 새마을운동은 여러 측면을 보고 토론하고 평가할 단계이지 그것을 좋다고 단정 짓고 대학원을 지어 전수할 때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영남대 재단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청구대·대구대 설립자 유족들의 발언권을 보장하는 게 재단정상화의 방향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가능하다고 보는 것일까?

“쉽지는 않을 거예요. 그렇다고 포기하면 안 됩니다. 박근혜씨가 집권한 5년 동안에는 아마 꿈쩍도 안 하겠죠. 하지만 10년, 20년 뒤에도 박근혜 씨가 계속 정치권력을 갖고 있을까요? 장기적으로 보면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상식과 합리가 지배하는 사회, 인간다운 삶이 존중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린 적이 없다는 정 전 교수. 느리면서도 강단 있는 그의 목소리는 ‘99%의 불가능’ 속에서도 ‘1%의 희망’을 붙잡고 가겠다는 결의를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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