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취업에 ‘나이 차별’ 논란, 헌법소원에 규탄대회도

“결국 30대 취업준비생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겠죠.”

서울의 한 보습학원에서 시간제로 중고생을 가르치고 있는 방대영(30)씨는 ‘청년고용촉진 특별법 일부 개정법률안’(이하 청년고용촉진법)이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내년부터 3년간 공기업과 공공기관에서 매년 정원의 3%를 15세 이상 29세 이하 청년으로 의무 고용해야 한다는 내용의 청년고용촉진법은 일반 기업뿐 아니라 공기업 입사도 고려하면서 취업준비를 해 온 방씨에게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공기업들이 신입사원을 많이 뽑지 않는 상황에서 20대를 우선적으로 선발하면 30대는 아예 기회를 잃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방씨는 특히 이 법 시행을 계기로 일반기업도 신입사원 적정 연령을 29세로 제한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일반기업은 공기업의 취업 제도를 따라 가는 관행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불만과 걱정을 가진 30대 취업준비생들 가운데 일부는 청년고용촉진법의 해당 조항 철폐를 요구하는 행동에 나섰다. 지난 22일 인터넷 포털 다음의 ‘공공기관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임(공준모)’ 카페에서 활동하는 조모(32·서울 중계동)씨 등 30대 구직자 8명이 헌법재판소에 ‘개정 청년고용촉진특별법은 위헌’이라는 내용의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 법이 헌법상 기본권인 직업의 자유를 박탈하고 20대와 30대를 차별해 평등권에 위배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지난 12일 서울시청 앞에서 청년고용촉진법 반대 집회를 가졌으며 6월 6일 2차 집회를 갖겠다고 밝혔다.

 

▲ 다음 아고라의 청원 사이트에서 청년고용촉진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서명을 하고 있다. ⓒ 아고라 화면 캡쳐

직접 행동에 나서지 않아도 이들에게 공감하는 청년들이 적지 않다. 취업준비생인 위대근(30·경기도 파주)씨는 “요즘은 신규채용 때 나이 제한을 없애는 추세이고 지난해 남성 대졸 신입사원의 평균연령이 33세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런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법”이라고 비판했다. 지방국립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4년째 공기업 입사를 준비하고 있는 이모(28 ·여)씨는 “(나도 곧 30대가 될 텐데) 30대끼리 한층 좁아진 공기업 입사 자리를 놓고 더욱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될 것”이라며 “30대를 겨냥한 사교육이 늘어나는 등 취업준비생들의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특히 지난 22일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청년고용촉진법에 따른 청년고용할당을 민간 기업으로 적극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혀 30대 미취업자들의 불안감을 부채질했다.

나이 제한 부활, 갈 길 잃은 30대

그동안 한국마사회 등 여러 공기업과 공공기관은 나이와 학력에 대한 제한을 없애고 ‘블라인드 면접’을 통해 배경과 조건을 따지지 않고 신입사원을 선발하는 등 ‘열린 채용’의 추세를 보였다. ‘28세가 넘으면 대기업에 신입으로 들어가기는 어려운 것 아니냐’는 피해의식을 가진 30대 취업준비생들에게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나이 제한 폐지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그런데 청년고용촉진법에 따라 공기업과 공공기관에서 사실상 나이 제한이 부활 되고 정부가 이를 민간에까지 적극 권장한다면 30대 미취업자는 갈 곳이 없어지지 않겠느냐고 이들은 하소연 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 3월 기준 20대와 30대 미취업자는 각각 277 만명, 218 만명으로 차이가 크지 않다. 이처럼 30대 미취업자가 많은 이유는 극심한 취업난과 과도한 스펙(조건)경쟁으로 청년들이 대학을 졸업해 취업문을 통과하는 나이가 점점 늦춰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은 2012년 상반기 100인 이상 주요 기업의 대졸 신입 사원 평균연령이 남자 33.2세, 여자 28.6세라고 밝히기도 했다.

‘30대 역차별’ 논란이 확산되자 그동안 청년고용의무화를 요구해 온 시민단체 청년유니온과 해당 법안을 공동 발의한 민주통합당 김관영 의원 등은 법 시행령에서 ‘청년’으로 규정되는 나이를 상향조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몇 살을 목표로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청년유니온과 김 의원 측 모두 아직 고심 중이라고 답했다.

김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극심한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본 법의 목적이 아무리 정당하다 할지라도, 그로 인해 선량한 누군가가 나이로 인해 차별받게 된다면 공정하다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청년 나이 상향조정을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아울러 ‘실업문제를 특정 연령층에 대해서만 선별적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다른 모든 연령층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지적에 대해 “신규채용 의지가 별로 없는 공기업에 청년채용의무를 지워 3년간 3700명 정도의 일자리창출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라며 “전반적인 고용문제 해결에도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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