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핵운동가 헬렌 캘디콧 "살아남으려면 당장 원전 멈춰야"

 

▲ 탈핵운동가 헬렌 캘디컷 "20대 후반이라고요? 미안하지만, 당신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듣지않거나 보지않으려 하지 마세요. 공포스러운 이야기여도 진실이에요." ⓒ 권우성

장시간 비행과 시차로 얼굴에 피곤함이 가득했다. 하지만 '핵(Nuclear)'이란 단어가 나오는 순간, 그의 푸른 눈동자는 반짝거렸다. 만 75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고, 손동작도 다양해졌다.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받았고, 미국 스미소니언 연구소가 선정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인 호주 출신 탈핵운동가 헬렌 캘디콧 이야기다. 그는 '시민방사능감시센터(소장 이윤근)' 초청으로 방한했다.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환경운동연합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난 그는 기자에게 나이를 물었다.

"20대 후반이라고요? 미안하지만, 당신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공포스러운 이야기여도 진실이에요. 그렇지만 우리가 (미래를) 바꿀 수 있어요. 원자력 발전소를 닫고, 석탄을 태우는 일을 멈추고, 전 세계 핵무기의 97%를 보유한 미국과 러시아가 핵무기를 없애면 가능합니다. 두 나라는 북한(의 핵 무장)을 비판할 처지가 못 되죠."

캘디콧은 미국과 러시아의 이중성을 꼬집었다. 15살 소녀 헬렌이 탈핵문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을 때는 소련과 미국이 치열하게 군비 경쟁을 하던 시절이었다. 캘디콧은 우연히 핵 전쟁을 다룬 책을 읽고 "핵 전쟁은 곧 '종말(the end)'"임을 깨달았다. 의과대학에 들어간 후, 방사능이 인체에 얼마나 해로운가를 주제로 여러 가지 실험을 하면서 핵 발전 문제도 고민하게 됐다. 미국 하버드 의대 대학원에서 공부한 뒤 호주로 돌아온 캘디콧은 '낭포성섬유증(Cystic Fibrosis)'를 연구하고, 이 병에 걸린 아이들을 치료했다. 그는 "제 환자들은 모두 죽었는데, 낭포성섬유증의 원인 중 하나는 방사선 노출이었다"고 말했다.

1980년의 어느 날, 캘디콧은 '미국이 위성을 이용해 소련에 크루즈 미사일을 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만약 그럴 경우 핵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았다. 캘디콧은 아이들이 핵 전쟁으로 죽거나 그로 인해 낭포성섬유증 등 각종 질병으로 고통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당시 근무하던 하버드 의대를 떠나 '사회적 책임을 위한 의사협회(Physicians for Social Responsibility·PSR)를 세웠다. 이전에도 호주와 미국을 오가며 탈핵을 외쳤지만,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공산주의자 되느니 죽겠다'며 핵무기 찬성하던 미국인들이 돌아선 이유

의사 2만3000명이 참여한 PSR은 창립 후 '만약 핵 전쟁이 미국에서 일어난다면, 그 의학적 영향은 어떨까'란 주제로 미국 전역에서 강연회를 열었다.

"1978년 제가 만난 미국인들은 '공산주의자가 되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할 정도로 소련에 적대적이었고, 핵 무기에 찬성했어요. 그런데 5년간 PSR에서 강연을 다닌 후 미국인의 80%가 '핵무기에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것은 '혁명'이었습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바로 교육, 그리고 언론 덕분이었어요. 강연으로 사람들이 변했고, 또 그 내용이 많이 보도됐거든요."

그는 1982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을 만났던 이야기도 들려줬다. 캔디콧은 "당시 레이건 대통령은 핵무기의 위험성을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나와 만난 후부터 '핵 전쟁으로 (적을)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고 하고, 고르바초프와 교류하기 시작했다"며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연합(UN) 등이 여전히 '방사능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캘디콧은 "WHO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미 1958년 'WHO는 IAEA의 동의 없인 어떤 핵 사고도 조사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만큼, 지난 2월 WHO가 낸 보고서 역시 IAEA가 쓴 것과 다름 없다"고 비판했다. WHO는 이 보고서에서 '후쿠시마 사고 때문에 일본 내 암 환자가 급증하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 탈핵운동가 헬렌 캘디컷 "후쿠시마 원전에서 쓰인 우라늄도 호주산이었습니다.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죽이고 있어요. 죽음을, 암을 팔고 있습니다." ⓒ 권우성

캘디콧은 "정부는 진실을 은폐하고, 많은 정치인들이 IAEA에 협조하고 있다"며 그 이유를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원전은 없지만, 세계 최대의 우라늄 매장량을 자랑하는 호주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캘디콧은 "호주는 우라늄·석탄 등 원재료를 수출하는 경제구조여서 특히 광산업계의 힘이 세다"며 "그들은 굉장히 나쁜 방식으로 정치를 좌지우지한다"고 설명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쓰인 우라늄도 호주산이었습니다.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죽이고 있어요. 죽음을, 암을 팔고 있습니다. 또 호주는 석탄을 이용, 화력 발전으로 전력을 생산하는데 그건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죠."

"사람들이 진실 알아야 정치가 그들을 대변" "살려면 원전 당장 멈춰야"

그가 탈핵 운동을 시작하며 세운 목표 중 하나는 '냉전의 끝'이었다. 저서 제목 '핵은 답이 아니다'는 캘디콧이 40년 넘게 외쳐온 말이기도 하다. 그 결과 냉전은 끝났지만, 또 다른 목표인 '핵 없는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다. 후쿠시마 사고에도 새로 핵 발전소를 짓는 나라들이 있고, 2009년 체코 프라하에서 "핵 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마저 핵무기 현대화 예산을 늘린 2014년 국방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캘디콧은 '핵 없는 세상은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현실에 굴하지 않고) 그냥 계속 탈핵운동을 했다(Keep going)"고 말했다.

'교육'과 '언론 보도'로 진실을 아는 것 만큼 탈핵에 중요한 일이 시민들의 참여다. 캘디콧은 '시민방사능감시센터''와 비슷한 시민운동이 호주에도 있지만 정치적으로 강력하지 않다며 안타까워했다.

4월 15일 문을 연 시민방사능감시센터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우리가 아이들을 방사능 위험에서 보호하자'며 뜻을 모은 시민들이 돈을 모아 세운 곳이다. 전문 인력과 장비를 갖춘 시민방사능감시센터는 앞으로 생활 속 방사능위험을 감시하고 농수산식품이나 토양 등을 조사, 정확한 방사능 정보를 제공할 계획이다.

캘디콧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를 신뢰하지 않거나 싫어한다면 당신이 정치를 해야 한다"며 "사람들이 (핵 문제의) 진실을 알고, (그동안 진실을 감춰온) 정치인들에게 '당신을 뽑지 않겠다'고 말해야 그들이 우리를 대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한국처럼 "매우 불안하고, 위험한 상황"일수록 시민들의 참여가 더욱 중요하다. 캘디콧은 후쿠시마 사고가 완전히 수습되지 않은 데다 국내에 원전이 23개나 있는 현실을 언급했다. 그는 후쿠시마에서 지진이라도 난다면, 원전 한 곳에서라도 사고가 발생한다면 "수많은 사람이 암으로 죽고, 후손들은 방사능으로 오염된 땅에서 자라난 작물을 먹게 된다"고 경고했다.

15일(현지시각) 미국 보스톤에서 일어난 폭발테러 같은 테러의 위협과 북한의 공격도 한국을 위험하게 만드는 요소다. 그는 "미국과 한국이 계속 북한을 도발하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한국의 원전을 공격할 수도 있다"며 "재래식 무기로 공격하더라도, 한국은 후쿠시마처럼 '살 수 없는 땅'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세계 역시 "핵 때문에 위험에 처해있다"고 덧붙였다.

"살아남고 싶은가요? 그럼 당장 원전을 멈추세요.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고, 통일로 가는 길을 준비하세요. 또 모든 건물에 태양광 발전기와 풍력 발전기를 설치하고, 재생가능한 에너지를 이용하세요."

 

▲ 탈핵운동가 헬렌 캘디컷 "살아남고 싶은가요? 그럼 당장 원전을 멈추세요." ⓒ 권우성

* 이 글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졸업생 박소희 기자가 오마이뉴스에 보도한 기사를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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