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감천문화마을, 달동네 재개발 대신 미술로 문화 재창조
관광객에 속옷 빨래까지 노출되는 주민 사생활 어쩌나

세계 어느 도시에나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지만, 우리네 ‘달동네’는 세상에 유례가 없는 독특한 주거지역이다. 외국의 슬럼가는 범죄에 찌든 사람들이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곳이 많지만, ‘달동네’는 정반대다. 그들은 일할 의욕이 없어 가난해진 사람이 아니다. 자식 교육열도 높다. 이른 아침 비탈진 골목길을 쏟아져 내려오는 학생들은 ‘달동네’의 희망이다. 겉모습이 남루할 뿐 그들만의 행복한 보금자리요 건전한 공동체가 바로 달동네이다.

▲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감천문화마을. ⓒ 박세라

정감 어린 ‘달동네’들이 대부분 개발주의에 밀려 헐리고 있는 가운데 오히려 ‘달동네’에 문화를 입혀 더욱 더 살만한 주거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지역이 있다. 부산시 사하구 감천문화마을이 바로 그곳이다. 감천만을 내려다보는 천마산 자락에 자리잡은 이 마을은 부산에서 사라져가는 독특한 주거 양식을 간직하고 있다.

달동네 상생의 주거양식 보존∙∙∙공공미술로 치장

알록달록한 집들이 모여 계단식으로 층을 이루고 구불구불하게 뻗은 좁은 골목이 집들을 연결하고 있다. 마치 레고 장난감으로 잘 만든 마을처럼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그리스 에게해 산토리니섬의 산비탈에 들어선 아름다운 마을이 연상된다.

문화마을이 이런 구조를 갖게 된 것은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몰려들어 제각기 언덕 위에 집을 지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햇볕을 받지 못하는 집이 없는 양지바른 마을이다. 새 집을 지을 때 이웃집에 피해가 가지 않게 하고, 골목으로 서로 연결해 함께 살아가는 의미를 다져왔다.

조용하고 소박했던 마을에 변화가 시작된 것은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의 ‘마을미술 프로젝트 공모전’에 당선되며 부산 예술가들의 작품이 설치됐다. 공공미술이 입소문을 타며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끌었고, 2010년에도 연이어 수상하며 주민들도 함께 마을 꾸미기에 참여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개발은 원래의 모습을 뒤엎고 새로운 건물과 도로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마을은 재개발과 재건축이 아닌 방법으로 낙후된 마을을 재탄생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러한 특색이 도시에서 자고 나란 우리에게 매력으로 다가왔을까? 작은 마을에 평일은 4백여 명, 주말은 1천5백여 명이 방문한다. 학생들 방학기간에는 하루에 3천여 명이 방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 마을에 매일같이 수많은 외부인이 구경하러 온다면 기분이 어떨까?

▲ 카메라를 메고 좁은 골목길을 걷는 연인들. ⓒ 박세라

골목이 곧 우리 집 마당인데...

‘찰칵찰칵!’ 신기한 광경을 본 듯 주택 사이 빨랫줄에 걸린 속옷까지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 한 사람도 지나다니기 좁은 골목, 그 길을 따라 이어진 집. 시원하게 뻗은 아스팔트길이 아닌 투박하고 제멋대로 생긴 시멘트 길을 휘저으며 방문객들은 연신 웃음꽃을 피운다. 걷는 걸음 뛰는 걸음으로 온 동네에 요란스러운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곳은 주거공간인데도 조심히 걷는 사람은 드물어요. 주말이면 집에서 편히 쉬고 싶은데 시끄러운 발소리와 웃음소리가 방해하죠. 이럴 때 스트레스 안 받는 사람이 있겠어요?”

하재문(50•남•15통 통장)씨는 웃으며 말했지만 그 속에는 씁쓸함이 전해졌다. 얼마 전에는 웃지 못 할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어떤 방문객은 자신만의 사진을 찍으려고 해요. 이웃집에서 있었던 일인데, 어떤 사람이 아무 말 없이 옥상에 올라가 사진을 찍었다고 하더군요.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져야 할 텐데...”

▲ 주민들 삶이 드러나는 좁은 골목길. ⓒ 박세라

이렇듯 유명세를 타다 보니 정작 살고 있는 주민들이 감내해야 할 불편은 증가하고 있다. 마을 입구 정자에는 ‘음주를 하지 말고’ ‘청소년들한테 모범이 되자’는 주민 주의사항까지 붙어있다. 보통 정자는 어르신들이 모여 술도 마시며 편히 쉬는 곳인데 젊은이들이 카메라를 들고 수없이 마을을 찾아오니 일거수일투족을 조심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 된 것이다. 주민 김아무개(53•여)씨 또한 사생활 침해를 괴로워했다.

“시끄러운 것은 말도 못하지요. 마음대로 사진 찍고 인터넷에 올리고 이러는 게 너무 부담스러울 때가 많아요.”

야경사진 찍는다며 밤늦도록 법석

이 마을은 모든 집들이 골목으로 연결돼있다. 골목 사진을 찍으면 주민 얼굴, 집의 내부, 심지어 방치돼 있는 빨랫감들까지 함께 찍히는 경우가 많다. 사적인 공간의 경계가 모호한 곳이 달동네라지만 내 사생활을 세상에 훤히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 벽에 붙은 물고기를 따라 문화마을을 걷다보면, 실내가 훤히 보이는 가정집을 만나곤 한다. ⓒ 박세라

마을을 둘러보는 추천 코스는 있지만 ‘여기서부터 여기까지가 문화마을이다’라고 지정된 구간이 없어서 주민들의 불편함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야경을 찍으러 오는 사람이다. 야경이 멋있다는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은 밤늦은 시각에 골목을 시끄럽게 지나다니거나 허락 없이 건물에 올라가 피해를 주기도 한다. 실제로 많은 블로그에 이곳 야경사진이 멋있게 포스팅 돼있다. 이를 본 네티즌들은 “나도 야경 찍으러 가야겠다”고 댓글을 단다.

마을 공식 홈페이지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거주지이므로 저녁 6시 이후로는 개방하지 않는다’고 명시돼있다. 하지만 이 마을에 울타리나 출입문 같은 것이 없으니 누구나 밤이고 새벽이고 찾아갈 수 있다. 사하구청 창조도시기획단에서는 “방문객 에티켓 안내판을 증설하고 안내자를 배치하며, 투어 코스를 지정해 사생활 침해가 최소화하도록 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실질적으로 체감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 주민 사생활 보호를 위한 안내 팻말이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 박세라

기반시설 열악한데도 ‘예산 타령’

도로가 너무 비좁은 것도 큰 문제다. 주민 대부분은 육칠십대 이상 노인들인데 건강에 이상이 생겨도 앰뷸런스가 들어올 수 없다. 화재가 나도 소방차가 들어올 수 없다. 2005년부터 소방도로를 확보하는 공사가 시작됐지만 2010년 중단됐다. 마을주민협의회 김성천(81•남) 회장은 예산 문제로 소방도로 건설이 중단된 것을 안타까워했다.

“도로망 사업이 예산이 많이 드는 것은 잘 알고 있는데, 사업을 진행하다 중단되니 주민으로서 걱정이 더욱 커졌죠. 동네에 노인들이 많아 언제라도 119를 부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우리는 가까운 곳에 있는 이웃에게 늘 협조를 당부할 수밖에 없죠.”

마을을 구석구석 걷다 보면 도시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것들이 종종 보인다. 바로 공중화장실이다. 놀라운 사실은 공중화장실이 40여 개나 있다는 것이다. 10여 평 남짓한 집 안에 현대식 화장실을 설치할 수 없어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는 주민들이 많다. 하지만 마을 하수구 사정은 좋지 않다. 정화조가 묻혀있기는 하나 곧장 하수구로 흘러가거나 정화조가 없는 데도 있어 여름철에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왜 ‘문화’마을 이에요?

방문객의 목소리를 통해 들어본 문화마을은 의문점이 많다. 서울에서 부산 여행 코스를 정할 때 제일 먼저 문화마을 방문을 다짐했다는 이지현(23•여•대학생)씨는 마을 이름에 의문을 가졌다.

“워낙 유명한 곳이라 기대를 하고 왔어요. 미술품도 멋있고, 마을도 예쁜데 이름처럼 문화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마을의 독특한 경관과 아기자기한 집들이 미술작품들과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방문객도 많았다. 마을의 카페 주인이자 주민협의회 운영위원인 김정희(44•여)씨도 문화마을이라는 이름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있다고 한다.

“설치되는 작품들이 테마가 있거나 마을과 조화가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예술작품을 설치하는 것도 이 마을의 역사를 담고 있는 한국전쟁이라든지 마을 이름의 유래와 관련된 것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품 대부분이 주민들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작가들의 개인적인 생각이나 공모전에 나온 것이 설치되다 보니 마을과 동떨어지죠.”

사하구청 창조도시기획단 관계자는 “공공미술품 설치는 마을에 사람을 모이게 하고 활력을 찾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다”며 "작가와 마을 주민들이 합심하여 작업한 작품이 있기 때문에 애향심을 고취하고 일상생활에서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전망대에 올라 알록달록한 집을 구경하는 아이들 너머로 마을 주민의 빨래가 널려있다. ⓒ 박세라

순수한 협동조합으로 가는 길

감천문화마을 주민협의회는 현재 127명으로 구성된 순수 민간 공동체다. 협동조합이 뜨고 있는 요즘 이 마을도 주민의 자치활동으로 마을 사업을 이끌어가고자 한다. 카페 운영과 마을지도 판매 등을 통한 수익은 마을기금이 된다.

하지만 관계부처에서 많은 예산을 받다 보니 주민의 자치적인 활동에 제약을 받는 부분도 있다. 예산 지원을 받기 때문에 시청이나 구청에서 정해주는 계획에 따라야 하는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되면 3년간 인건비가 지원된다. 이것에 의존해 사업에 뛰어들면 일에 대한 책임감이 결여돼 제대로 경영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사하구의회 김경열(55•남) 의원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정부의 지원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주민 자체적인 수익구조도 필요하다”며 “색깔만 바뀌는 ‘겉모습 발전’이 아니라 주민 자치로 일구는 사업으로 내실을 다져야 한다”고 말했다.

감천문화마을이 사업을 진행한 지 햇수로 3년 째. 그 동안 많은 공공미술품이 설치되었고 벽화도 그려졌다. 하지만 정작 주민들 삶의 질을 개선시키기 위한 노력은 미미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사업의 처음 취지는 ‘다 함께 잘 살아보자’였지만, 아직까지 주민의 불편사항은 나아지질 않고 있다. 지금까지는 방문객을 끌기 위한 계획 위주였다면, 지금부터라도 그 속에 있는 주민들을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이 행복해야 진정한 ‘문화’마을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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