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불패] 대산농촌문화재단 장학생 연수 참가기

자유무역협정(FTA)은 비교열위에 있는 우리 농업의 희생을 전제한다. 우리 농촌은 어떻게 위기에 대응하고 있을까? 대산농촌문화재단이 방학을 맞아 대산장학생들에게 베푼 농촌 연수는 우리 농업의 문제를 현장에서 확인하고 혁신의 가능성을 살펴볼 좋은 기회였다. 교보생명그룹 창립자 대산 신용호 선생이 설립한 대산농촌문화재단(이사장 오교철)은 1991년 이후 꾸준히 장학사업과 농촌문화사업을 벌이고 있다. 19일부터 2박3일간 진행된 동계연수에는 재단의 농업CEO양성 학부장학생 6명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인 농촌전문언론인양성 장학생 4명이 참가했다. (편집자)

거제도에서 농사짓는 이는 농민만이 아니다

자유무역시대에 거제시 농업을 떠받치고 있는 사람은 농민만이 아니다. 공무원들의 노고가 큰 버팀목이 됐다. 거제시농업기술센터 이양일 소장은 그 중 핵심인물이다. 이 소장은 지난해 농업과 관련된 공직에서 농촌 발전을 위해 힘쓴 이에게 주어지는 대산농촌문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1998년에 동료들과 함께 바다를 메워 거제시농업개발원을 설립했을 뿐 아니라 거제시의 새로운 특화작물을 개발해온 주역이다. 유자, 한라봉, 알로에 등이 대표적인 지역특화작물인데 제각기 거제도 농민들의 고소득원이 됐다. 그는 또 거제꽃섬축제를 기획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했다. 농업개발원은 농업인 교육장인 동시에 시민의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 거제시 농업기술센터 이양일 소장은 “보조금 나누기에 그친 농업현실이 안타깝다”며 “지속 가능한 농업정책과 안정적 기반시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안형준

“농업은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종합예술입니다. 향토문화를 살릴 수 있는 열쇠이기도 하고요.”

‘생각하지 않으면 농업은 외롭다’는 철학 아래 이양일 소장 비롯한 농업개발원 직원들은 농민을 위한 아이디어 개발에 열중한다. 농민 교육과 농민 주도 학습조직체 구성, 영농기술정보 전파에도 애쓴다. 특히 품목별 연구회에서 농민과 함께 이뤄낸 성과는 그들에게 큰 보람을 가져다 주었다.

거제도 한라봉이 더 맛있는 이유

귀농한 지 5년 된 진창운(60) 한림농원 대표는 서울에서 학원을 운영했다. 지금은 거제도에서 1,300평 규모로 한라봉을 재배하고 있는 농업인이다. 농업개발원 윤명수 박사는 그를 “새내기 귀농인“이라 소개했지만, 그의 표정에는 은근한 자부심과 여유가 묻어난다.

▲ 진창운 대표는 “한라봉은 365일 손이 많이 가는 작물이지만 재배하는 게 재미있다”고 말했다. ⓒ 안형준

그가 직접 딴 한라봉을 방문객에게 하나씩 나누어주자, 새콤한 한라봉 향기와 달콤한 맛에 취한 듯 탄성이 터져 나왔다. 거제도 한라봉은 엄격한 선별작업을 거쳐 당도 13Brix 이상, 산도 1% 이하 조건을 충족해야 공동출하가 가능하다.

거제도에서 한라봉을 재배하기 시작한 건 1992년이다. 이양일 소장이 제주도 출장길에 우연히 한라봉을 접했던 게 거제도 보급의 시작이었다. 그는 제주와 기후 조건이 비슷한 거제에서도 한라봉 재배가 가능하리라 여겼다. 처음에는 600평 정도로 작은 규모였지만, 윤명수 박사가 재배기술을 보급하면서 점차 여러 농가로 재배면적이 넓어졌다. 여러 차례 바이러스 개선을 거치며 거제도 한라봉은 균일한 품질을 갖춘 지역특산품으로 자리잡았다.

▲ 거제도의 따뜻한 햇볕과 해풍을 맞으며 자란 한라봉. ⓒ 안형준

한라봉이 거제도에 뿌리내리게 된 것은 농업기술센터가 거제도에 적합한 작물을 개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온 결과이다. 센터에서는 지역특화작물이나 고소득작목 개발 노력을 꾸준히 이어왔다. 특히, 아열대성 작물의 도입은 기후변화에 따른 작물 생육 환경 변화에 적응하려는 노력의 하나였다. 농업기술센터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거제에서 재배하기 적합한 작물이 무엇인지, 알맞은 재배방법은 무엇인지 알아보는 실증시험 연구와 재배다.

실제로 센터에서는 한라봉을 비롯해 아보카도, 구아바, 망고, 아떼모야, 파파야, 레몬 등 아열대 과수의 지역적응 실증시험 연구를 하고 있다. 거제도는 일조량이나 기후조건, 토질 등이 한라봉을 키우기에 적합하고, 특히 일조량은 제주도보다 600시간 정도 더 길어 당도 높은 한라봉을 생산하는 데 유리하다. 현재 거제도에서는 39농가가 약 13ha 규모로 한라봉을 재배하고 있는데, 앞으로 망고 등 다른 아열대 작물로 확대될 전망이다.

눈길을 끄는 점은 거제도의 지역 특성이 한라봉의 성공에 큰 몫을 했다는 것이다. 거제도에서는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 등 조선소 근무자만도 4만 명이나 돼 주민들 소득수준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품질과 맛만 보장되면 물류비용을 크게 들이지 않으면서도 판로가 어느 정도 확보되는 셈이다. 실제로 거제도 한라봉은 대부분 거제도 안에서 소비되고 있다.

홍가시나무가 거제도에 상륙하기까지

홍가시나무도 거제도 농민들의 큰 소득원이다. 이 나무는 꽃꽂이 소재로 인기가 높은데 거제에서 재배된 지는 10여 년밖에 안 된다. 이 소장이 2000년 제주도 출장 때 본 홍가시나무를 거제도에 들여왔고, 지금은 전국 최초 꽃꽂이 소재류 재배단지로 확대됐다. 기후가 온화한 남해안 일대 도로변에는 조경용으로도 많이 심어진다.

▲ 진선영 우리농장 대표는 “지역 환경에 맞는 품종을 선택해야 실패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 안형준

"아침에 일어나서 항상 하는 일은 농장 한 바퀴 도는 일입니다. 특히 바깥쪽을 세심하게 봐야지요. 잘 되는 곳만 가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데 농사는 그러면 바로 실패합니다. 10년 동안 농장 제일 끝부터 중심까지 한 발씩 밟으며 돌봐왔습니다."

▲ 장미과인 홍가시나무는 꽃꽂이 소재로 인기가 높다. ⓒ 안형준

우리농장 진선영(67) 대표는 1만여 평 홍가시나무 농장을 홀로 관리한다. 관리 비결은 “하루도 거르지 않는 것과 쉽게 일하고 싶은 마음을 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주문은 보통 건축업계나 정부 쪽에서 1만 주(그루) 단위로 들어오고 연간 묘목 출하 규모는 1만5천 주 정도다. 가격은 한 그루에 1m50cm까지는 8천 원, 2m50cm까지는 2만 원 선에서 거래된다. 보통 10년 주기로 성장하다 경쟁업체가 많아지면 가격이 내려가고 건설 경기에 큰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2000년 홍가시나무 재배 시작 후 13년이 지난 지금도 월평균 매출이 1천만 원 선은 된다고 말했다.

홍가시나무 재배를 도운 이양일 소장은 정부 보조금을 그대로 농민 손에 쥐어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거제시농업기술센터에서 새로운 작목마다 작목반을 만들고, 농민과 모여 함께 계획하고 보조금을 집행했다. 홍가시나무 역시 작목반의 연구와 함께 농가재배를 병행했다. 새로운 수익원 창출의 위험부담을 정부와 농민이 함께했고, 새로운 판로를 개척했다.

홍가시나무는 꺾꽂이로 심은 뒤 최소 3~5년은 키워야 조경수로 쓸 수 있다. 거제도 홍가시나무 사업은 초반에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꺾꽂이 뒤 4~5년차 되던 2008년에 부산시가 ‘그린(Green) 부산’ 사업을 펼치면서 2만 그루를 사 간 덕분에 일찍 정착이 될 수 있었다.

농업·농촌이 가야 할 길

예로부터 농민에게는 근면이 최고의 덕목이었다. 농민은 열심히 농사를 지어 호구를 해결하고 남는 것을 시장에 내다팔면 끝이었다. 그러나 자유무역 시대의 농민은 생각하는 농민이라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이양일 소장은 강조했다.

“시대가 변하고 복잡해짐에 따라 농민들도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가를 생각하며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친환경농업, 녹색관광농업이 어우러져야 농촌과 농민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지역의 농업기술센터 같은 곳에서 일하는 공무원도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 우리 농업의 혁신을 선도하는 사람들과 대산농촌문화재단 장학생들은 '농업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소신을 펴기 위해 노력한다. ⓒ 대산농촌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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