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인디밴드 ‘브로콜리 너마저’키보드주자 김잔디

“'이른 열대야' 공연의 특징 1. 다섯시 반부터 열두시 반까지 진행. 2. 간편한 옷차림과 신발을 추천. 3. 멘트에 많은 노력을 기울임. 4. 앵콜은 요청 금지.”(@iamJANDI)

청중의 환호와 박수를 먹고 사는 음악밴드가 감히 팬들에게 트위터로 ‘앵콜 금지’를 요구한다. 분위기가 범상치 않다. 이력을 살펴보니 더욱 그렇다. 2집 앨범의 타이틀곡 ‘졸업’이 한국방송(KBS)로부터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다. ‘청년들이 쫓기듯 어학연수를 떠나고’, '짝짓기에나 몰두하는', ‘미친 세상’을 노래했다는 이유다. 인디밴드 ‘브로콜리 너마저’ 얘기다.

“공연을 보러 온 손님이라고 해서 당연히 앵콜을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앵콜은 밴드의 의무가 아닙니다. 밴드의 의무는 항상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공연하는 것이죠.”

▲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키보드주자 김잔디 씨는 밴드와 직장을 겸하는 자칭 '투잡 뮤지션'이다. ⓒ강태영

지난 10일과 지난해 7월 두 차례 <단비뉴스>와 인터뷰한 키보드주자 김잔디(29)씨의 소신은 노래가사 만큼이나 거침이 없었다. 김씨는 밴드 구성원 넷 중 유일한 직장인이다. 자신을 ‘투잡(tow job)’ 뮤지션이라고 불러달란다. 밴드도 하나의 직장이라고 생각한다는 얘기다. ‘투잡 뮤지션’의 애환이나 고뇌가 없냐고 했더니 정색을 한다. 

“좋아서 선택한 일인데 뭐가요?”

밴드를 직장이라 부르고 노동자를 위해 노래

브로콜리 너마저는 삼성반도체 노동자의 죽음을 위로하는 트윗을 날리고, 문화방송(MBC) 파업현장에 찾아가 공연했다. 기타 제조업체인 콜트콜텍 노동자의 정리해고를 다룬 영화 <꿈의 공장>에 출연도 했다. 이른바 ‘개념’ 밴드다. 그러나 자신들이 ‘투사’는 절대 아니라고 말한다.

▲ 브로콜리 너마저는 쫄지않고 소신껏 노래한다. 해당 사진은 강제철거로 논란을 빚었던 홍대 두리반 2011년 3월18일 공연. ⓒ트위터 @drdramc_jack

“대학생활 내내 노래패에서 활동했지만 ‘운동권’은 아니고요, 중고교 스쿨밴드 이후 지금까지 음악이 좋아 노래 부르는 천생 음악인일 뿐입니다.”

민주화 투쟁이 한창이던 시절 앞장서서 민중가요를 부르던 서울대 노래패 ‘메아리’가 운동권 노래를 넘어 자유로운 음악을 추구하던 2002년 이후가 그녀의 주 활동기였다고 한다. 그즈음 서울 홍대를 중심으로 델리스파이스, 크라잉넛 등 1세대 인디밴드 문화가 시작된 참이었다.

“꼭 엄숙해야 할 이유가 있나. 우리가 즐겁고, 그래서 남에게도 즐거운 노래를 하자는 거죠.”

김씨는 동아리 내에 ‘축만사(축제 만드는 사람들)’를 조직해 패러디 노래 공연으로 학교 축제에 활기를 불어 넣기도 했고 로또 복권이 유행할 때는 ‘복 권하는 사회, 복권하는 사회’라는 이름의 연극과 음악공연으로 사회를 풍자하기도 했다. 당시 메아리는 ‘복합문화예술공연단’이었다. 연극, 뮤지컬, 영상 제작, 자작곡 공연 등 안하는 게 없었다. 거기서 쌓은 경험이 밴드의 공연을 기획하고 현장에서 풀어내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전공은 간호학이었지만) ‘메아리과’에 들어간 셈이었죠. 노래패 내에서 선후배간 대화와 논쟁도 많았고요. ‘월경 페스티벌’ 같은 페미니즘(여성주의) 운동에도 참여하고. 좋은 과에서 공부했다고 생각해요.”

그 때의 공부가 여간한 압력에도 ‘쫄지’ 않고 당당히 소신을 밝히는 오늘의 그녀를 만든 셈이다. 당시 함께 활동하던 노래패 사람들은 지금 우리나라 인디음악계를 주름잡는 주역들이 됐다. 눈뜨고코베인(깜악귀), 술탄 오브 더 디스코(윤덕원), 아마도이자람밴드(이자람, 이민기), 청년실업(장기하, 이기타, 목말라), 그리고 장기하와 얼굴들.

▲ 브로콜리 너마저의 데뷔 EP 앨범 [브로콜리 너마저]. ⓒ브로콜리 너마저 공식 홈페이지

음악도, 건강연구도 나 좋아서 한다

음악을 사랑해서 생업으로 선택한 그들처럼 김씨도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표현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간호대를 졸업한 김씨는 3년 전까지 간호사일과 밴드활동을 병행했다. 밴드의 수입이 조금 나아진 후에는 간호사일을 그만 두었고 지난해 8월 석사과정을 마친 뒤 한양대 예방의학교실에서 보건정책 연구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박사과정을 겸하는 연구원이다.

“음악도, 공부도 재미있어서 해요. 제가 하는 공부가 궁극적으로 사회에 도움이 되는 학문이라는 점도 있고요.”

▲ 음악과 연구, 실천의 기쁨을 모두 즐기겠다는 김잔디씨. 그녀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이 기대된다. ⓒ김잔디 페이스북 페이지

그는 얼마 전 ‘비판과 대안을 위한 건강정책학회’ 주최 포럼에서 건강불평등 개선에 대한 연구발표를 했는데, 사회구성원들의 건강권을 고루 보장하는 것이 도덕적 요구일 뿐 아니라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필수조건이라는 주장을 폈다. 투사는 아니라고 하지만 끊임없이 공동체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발을 담그는 자세다.

김씨는 앞으로도 인디음악을 계속할 작정이지만 인디가 대중음악에서 하지 않는 특이한 것을 해야 한다거나 가난을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인디는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인디펜던트)을 통해 자유로운 음악을 추구한다는 뜻이지, 대중적인 것과 함께 가지 못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또 2년 전 가난 속에서 세상을 떠난  뮤지션 ‘달빛요정만루홈런’이나 극작가 최고은씨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기본생계는 보장하는 복지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음악을 통해 즐거움을 공유하면서 건강불평등 개선을 위한 연구와 실천도 열심히 하겠다는  ‘투 잡 뮤지션’ 김잔디씨. 그녀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은 계속 진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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