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임칼럼] 매혹적인 지리산, 감동 깬 불량 서비스

지난달 25일 추적추적 장맛비를 뚫고 도착한 지리산 자락 천은사 입구. 고즈넉하고 소박한 분위기의 마을에 황토로 지은 여섯 채의 한옥이 깔끔하게 서 있었다. 전남 구례군이 농림수산식품부의 지원을 받아 지난 연말 문을 연 농촌체험시설 ‘참새미골 한옥 펜션’이었다. 색깔 고운 황토로 솜씨 좋게 발라 붙인 외벽에 날렵한 기와지붕과 통나무 기둥, 앞뒤로 툭 트인 잔디 마당이 ‘자연’과 ‘한옥’의 멋진 조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전통문양에 따라 나무 격자로 짜인 창과 문에는 창호지 대신 반투명 유리가 덮였고, 서구식 주방과 욕실, 에어컨이 있어 ‘고전’과 ‘현대’의 공존도 그럴 듯 했다.   

▲ 황토로 지은 참새미골의 한옥 펜션. 마루문과 창을 열면 에어컨보다 더 시원한 바람이 들어 온다.  ⓒ 제정임

“와~, 여기 며칠 있다 가면 완전 건강해지겠는데?”

마루로 들어오는 시원한 밤바람과 풀 향내 속에 다리를 쭉 뻗으며 아이들이 환호성을 올렸다. 거실의 TV 화면도 아주 깔끔하게 나와, 드라마 ‘동이’를 놓치지 않게 된 남편 역시 흡족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부엌을 쓰윽 훑어본 순간, 내 기분은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멋진 한옥, 그러나 냉장고와 침구를 보니.......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휴지통에 축 걸쳐 있는 걸레. 흰 수건을 걸레 대신 쓴 모양인데, 얼룩이 덜 빠지고 눅눅한 채로 널려 있었다. 다음은 주방 개수대. 분홍색 행주가 삐쩍 마른 상태로 수도꼭지를 덮고 있고, 플라스틱 소쿠리에는 그릇과 수저, 쟁반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방금 누군가 여기서 밥 해 먹고 나갔어요’하고 일러주는 것처럼.

▲ 휴지통을 반쯤 덮고 있는 축축한 걸레(좌) 행주와 그릇이 아무렇게나 놓인 주방(우) ⓒ 제정임

냉장고를 열어봤다. 성에가 잔뜩 낀 냉동실 바닥에 정체 모를 먼지와 머리카락 몇 올이 얼어붙어 있었다. 불안한 맘을 안고 침실로 들어갔다. 구석에 이불과 베개가 쌓여 있는데, 맨 위에 놓인 분홍색 베갯잇에 때인지, 땀인지, 얼룩이 꼬질꼬질했다. 그 아래에 있는 베개와 이불들은 외관상 멀쩡했으나, 앞 손님이 쓴 후 깨끗한 홑청을 새로 입힌 것은 아닌 게 분명했다.


▲ 머리카락과 먼지가 얼어붙어 있는 냉동실(좌)   누런 얼룩이 진 베갯잇(우) ⓒ 제정임

이번엔 욕실. 휴지가 아주 조금밖에 남지 않은 두루마리가 매달려 있고, 세면대에는 머리카락 한 올이 붙어있는 세숫비누 조각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욕실 전등은 처음부터 깜빡깜빡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금방 나가버리고 말았다. 한밤중이라 전화를 하기도 뭐해서 대충 씻고 베개를 수건으로 덮어 싼 뒤 찜찜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관리인을 불러 베갯잇을 새 것으로 갈고, 휴지와 비누 등도 새로 받았지만 그 주방에서 뭔가를 해 먹는 것은 포기했다. 기껏 지리산까지 쉬러 와서 ‘냉장고 대청소’를 할 마음은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 인터넷을 통해 이 마을을 알게 됐을 때, ‘지리산’과 ‘황토’와 ‘한옥’이라는 단어들이 단박에 마음을 사로잡았다. 대학 졸업여행으로 2박 3일 종주를 해 본 뒤 20여 년간 못 가 본 지리산, 그리고 어릴 적 외할머니 댁의 기억이 솟아나는 황토 한옥에서의 휴가라니, 얼마나 근사한가. 방 하나, 거실 하나, 마루 하나라는 단출한 구조지만 휴가철인데 하룻밤 7만원이라는 이용료도 상당히 ‘착한’ 가격이었다. 농림부가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와 손잡고 다양하고도 이색적인 ‘체험 마을’을 1천여 곳이나 만들었다고 하더니, 정말 경제적이고 멋진 사업이 아닌가 하고 맘속으로 박수를 쳤다. 하지만 ‘체험’ 하루 만에 마음속의 환호성은 풀이 죽고 말았다. 체험 마을의 구상과 시설 등의 ‘하드웨어’는 훌륭하지만 거기에 걸 맞는 서비스라는 ‘소프트웨어’가 아직 제대로 갖춰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멋진 풍광과 좋은 시설을 갖추고도 불량 서비스로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 곳은 그 집뿐만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섬진강에서 1인당 3만원을 주고 래프팅을 했는데, 딸아이의 감상은 이랬다.

“래프팅은 진짜 재밌었는데, 샤워실이 더러워서 토 나올 뻔 했어.”     

최근 몇 차례 다녀온 일본 시골 마을들이 떠올랐다. 지은 지 백년이 넘어 삐걱거리는 목조건물에 작고 낡은 다다미방의 여관인데도, 침구의 홑청은 손을 벨 듯 빳빳하게 풀을 먹여 정갈했다. 욕실도 먼지 한 점, 물 한 방울 없이 깨끗했고, 비누와 샤워모자, 면봉 등 세면도구들은 잘 포장된 채 쓰기 좋게 정돈되어 있었다. 어떤 시설에 들러도 화장실이 더러운 경우는 보지 못했다. 볼거리나 시설은 생각보다 대단치 않고, 낡고 허름한 곳도 많았지만 ‘청결’ ‘정성’ ‘배려’로 똘똘 뭉친 서비스가 ‘꼭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더구나 비행기 값을 빼면 비용도 국내 여행에 비해 그리 비싸지 않았다.


보석처럼 빛나는 자연과 문화, ‘정갈한 서비스’만 더한다면

한옥 마을의 ‘불량 서비스’는 지리산의 아름다움과 대조가 되어 더욱 안타까웠다. 이번 여행에서는 노고단까지만 올라가고, 등반 대신 지리산 자락의 계곡과 마을 장터, 사찰, 유적지 등을 돌아봤는데, 한 곳 한 곳이 모두 매혹적이었다. 노고단으로 가는 길은 흙길, 돌길, 나무 계단 등으로 잘 정돈되어 남녀노소 누구나 가볍게 오를 수 있게 돼 있었다. 그 길에서 내려다 본 산의 풍광은 때로는 운무에 잠겨, 때로는 소나기에 젖어 절경을 이루었다. 구례의 천은사와 그리로 올라가는 구불구불한 길, 피아골 등 계곡의 맑고 시린 물,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인 하동의 최참판댁과 그 주변 마을, 산 아래 식당에서 맛 본 수 십 가지 산채와 동동주도 감동이었다. 이렇게 자연과 문화, 역사가 보석처럼 반짝이는 곳에 ‘정갈한 서비스’만 갖춰 준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주, 즐겁게 오가겠는가 말이다.

▲ 돌길, 흙길, 나무계단 등으로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도록 잘 정비된 지리산의 노고단 가는 길 ⓒ 제정임

 

▲ 대하소설 ‘토지’의 장면들을 되살려주는 하동의 최참판댁 ⓒ 제정임

떠나오는 날, 관리인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했다. 다시 지리산에 놀러와 이 한옥에 머물고 싶은데, 이런 부분은 좀 달라졌으면 한다고. 주방이 있는 다른 숙박시설의 예를 들어 냉장고는 성에를 녹인 뒤 깨끗이 청소해 두고, 주방의 행주나 걸레는 미리 잘 빨아 말린 것을 반듯하게 접어 비치하며, 그릇들은 찬장 속에 가지런히 배열해 두면 좋겠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베갯잇 같은 침구는 꼭 새 홑청으로 갈고, 욕실의 비품 역시 새 것을 놓거나 깔끔하게 정돈해 두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검게 탄 얼굴에 후덕한 인상의 관리인은 “일당을 받고 청소해주는 아주머니가 요즘 일이 많아 허술하게 했나 보다”며 더러운 베갯잇에 대해 제일 미안해했다. 또 냉장고나 주방 정돈 같은 것은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미처 못했다며 “앞으로는 잘 챙기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다. 아주머니는 텃밭에서 길렀다는 싱싱한 풋고추를 챙겨주며 “맛있다고 소문난 우리 집 청국장을 대접할 테니 꼭 다시 오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그렇다. 특별히 태만하거나 불성실해서가 아니라 ‘어느 만큼 어떻게 해야 한다’는 개념이 부족한 탓이었을 것이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 부업으로 청소를 하는 아주머니 입장에서는 엄격한 기준을 세워놓고 관리하는 전문 숙박시설과 달리 ‘이 정도면 괜찮겠지’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일을 처음해 보는 관리인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을 테다. 한옥 6채에 12개 객실이라는 작은 시설이니, 아무래도 주먹구구식 관리가 되기 쉬웠을 것이다.  

시설 확장뿐 아니라 체계적인 교육 기회를
 
“농림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체험 마을 관리인들을 일본 시골 같은 데로 연수를 좀 보내야 하는 것 아닐까?”

남편도 많이 아쉬운 듯 이렇게 말했다. 관광산업은 굴뚝 없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며, 특히 시골의 자연과 문화를 잘 가꾸면 농촌도 살리고 우리 경제의 활력도 높일 수 있다는 얘기, 많은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해왔다. 구례의 한옥 펜션은 그런 노력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농어촌 마다 특색을 잘 살려 아름답게, 혹은 흥미롭게 만들어 놓은 체험 마을들은 우리 국토의 가치를 높이는 소중한 자산들이 될 것이다. 지난해만 해도 3백만 명이 전국의 농어촌 마을을 다녀갔다니, 이미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꼭 있어야 할 ‘2%’, 즉 ‘서비스 정신’이 제대로 자리 잡았는지 점검이 시급하다.  

전국의 다른 체험 마을들은 어떨까? 해외 나들이가 보편화된 시대에 한껏 기대수준이 높아진 여행객들의 마음을 붙잡을 만큼 ‘고객 감동 서비스’를 하고 있을까? 기대를 하고 온 가족들에게 실망을 안겨 보내는 마을은 없을까? 전국 곳곳에 멋진 체험 마을을 늘려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꼭 다시 오고 싶다’는 감동을 주도록 ‘소프트웨어’를 정비하는 일도 절실하다.  정부가 ‘서비스 아카데미’ 같은 것을 만들어 체계적인 교육을 한다면 좋지 않을까?

초등학교 방학 때 외갓집에 가면, 할머니가 호롱불 아래서 정성스럽게 입힌 이불 홑청과 베갯잇의 고슬고슬한 감촉이 좋아 일부러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했던 기억이 난다. 다음에 또 지리산을 찾을 때, 참새미골에 꼭 다시 가보려 한다. 그땐 흠 잡을 데 없는 깔끔한 서비스와 구수한 청국장 맛을 즐기며, 시원한 한옥 마루에서 뒹굴뒹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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