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눈물’ 아이들 눈높이로 학교폭력을 보다
[TV를 보니: 1.16~22]

"저 왕따예요. 초등학교 때도 막 컴퓨터실에 가둬놓고 종이나 지우개 먹으면 나오게 해준다고 그래 놓고 진짜 먹으니까 안 나오게 해주고.”(복순이/이예정)
“(애들이) 진짜 얼굴에 가래 뱉은 적도 있고 페이지마다 선크림을 발라주시고.”(남우)

아이들 입에서 험한 이야기가 쏟아졌다. 탄식이 절로 나왔다. 학교폭력 대책이 엉망이라는 증언도 생생하다.

“학교에 뭔가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나 봐요. 제 앞에서 그 애들(가해자들) 편을 들어주는 거예요. 그게 뭐예요. 제가 있는데. 너도 잘못했지 않았니? 이러면서 네가 잘못했으니까 그랬지 않았느냐? 이런 식으로”(꼬북이/채다혜)
“웃긴 게 겉으로만 ‘학교폭력, 학교폭력’ 이야기하지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어요……… 진짜 다들 학교가 은폐를 시키려고만 들어요.”(남우)

 ▲ '소나기학교' 숙소에서 아이들이 저마다 학교폭력 경험담을 털어놓고 있다. ⓒ SBS 화면 갈무리

온갖 진단과 해결책도 소용이 없다. 교육당국도 속수무책인 듯하다. 언론도 선정적 보도에만 그칠 뿐이다. 학교폭력은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것일까? 에스비에스(SBS) <SBS스페셜>이 이 복잡한 문제를 3부작으로 일요일마다 다루고 있다. 지난 1월13일 1부 ‘일진과 빵셔틀’에 이어 20일에는 2부 ‘소나기 학교’ 편이 방영되었다.

가해·피해학생 모두에게 필요한 치유

‘학교의 눈물’ 3부작은 일단 방송 일반의 행태를 따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신선했다. 종전에는 피해학생의 상처를 드러내 울분을 자극하거나 가해학생의 폭력을 선정적으로 묘사해 시청자들의 공분을 자아내는 방식이 통용됐다. 그게 만들기 쉽고 시청률도 높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어떤 사회문제도 해결 난망이다. 언론의 공론장 기능과도 거리가 멀다.

‘학교의 눈물’은 대신 아이들 눈높이에서 학교폭력에 접근하려 했다. 어른들 시각을 배제한 것이다. 피해학생이나 가해학생 모두 치유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도 주목할 만했다. 상투적 접근방식에서 벗어난 점은 문제 해결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얘기와 통한다.

 ▲ '소나기학교' 선생님 22명은 개인상담과 집단활동을 통해 아이들 14명의 마음 속 깊은 상처까지 치유한다. ⓒ SBS 화면 갈무리

20일 방영된 2부에서는 폐교를 리모델링한 ‘소나기 학교’에 가해자나 피해자로 학교폭력을 경험한 아이들 14명을 모아 함께 생활하도록 했다. 제작진은 아이들 숙소에 관찰카메라를 설치해 가해·피해 학생들이 나누는 대화를 여과 없이 들려주었다. 아이들은 ‘소나기 학교’ 선생님들과 개별상담이나 인터뷰를 하면서 속마음을 그대로 털어놓았다.

어른들 관점에서 문제를 파악하고 진단하기보다 아이들 입으로 실태를 말하게 했다. 아이들에게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 학교 폭력이 왜 일어나는지를 외부관찰자가 아닌 당사자가 되어 고민해 볼 수 있게 했다. 프로그램 속에 피해학생은 자존감을 회복하고, 가해학생은 가슴속 분노를 치유하게 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 아이들은 개인상담을 거치며 자신들의 행동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스스로 깨닫게 된다. ⓒ SBS 화면 갈무리

시청자는 그동안 보고 듣기 어려웠던 학교폭력의 실상에 제대로 접근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정서적으로 예민한 두 집단의 아이들을 함께 다루는 만만찮은 작업을 ‘학교의 눈물’ 제작진은 1년 가까이 공들여 해냈다. 꼼꼼하게 치유 프로그램을 짜고 치밀하게 준비한 흔적이 영상에 묻어났다.

당한 대로 배운 대로 실천하는 아이들

학교폭력처럼 복잡한 문제를 이것저것 두루 다루려고 하면 프로그램이 밋밋한 ‘종합판’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내용도 산만해지고 주제의식은 명확하지 않은 채 흐지부지 끝나는 수가 많다. ‘학교의 눈물’ 제작진은 초점을 제대로 찾아낸 듯했다. 아이들 눈높이에서 학교폭력의 원인을 찾아내려 했고, 가해학생도 피해자라는 쪽으로 시야를 확대했다. 이를 드러내기 위해 ‘소나기 학교’라는 실험 상황을 설정한 것도 좋은 아이디어였다.

“학교폭력 없는 학교의 작은 모델이 되고자 시작된 ‘소나기 학교’. 그 목표는 선생님의 관심으로부터 소외되는 아이가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누구나 훌륭한 학생이라서 보고 듣고 배운 것을 그대로 실천합니다. 아이들은 소외당하면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상처받으면 남에게 상처를 주고 사랑받으면 사랑을, 배려받으면 배려를 베풀려고 합니다. 그렇게 아이들은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것입니다.”

마지막 해설 부분에는 제작진의 따뜻한 마음이 드러난다. 프로그램의 주제에 대한 제작진의 진정성이 프로그램의 진가를 높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손쉽게 시청률 얻는 법을 버리고 학교폭력의 본질에 충실하고자 하는 게 옳았다고 본다. 학교폭력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보겠다는 제작진의 진지한 열정이 충실한 다큐멘터리의 탄생을 가능하게 한 듯하다. 공영방송도 아닌 SBS가 3부작 사회 다큐멘터리에 10개월여 제작기간을 허용한 것도 박수를 받을 만했다.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많은 선생님들께서 이 방송을 보고 마음의 변화를 가져올지... 벌써부터 설렙니다.”(김윤상)

시청자 게시판에 올라온 의견 중 하나다. ‘학교의 눈물’ 3부작이 일선 학교에 좋은 교재가 될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잘 만든 다큐멘터리는 사회문제 해결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시청자 의견 중에는 ‘모두가 피해자라는 입장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의견, ‘죄질이 나쁜 가해학생은 범죄자로 취급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학교폭력이 워낙 심각하다 보니 이를 일반범죄와 동격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강경론이 힘을 얻는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소나기학교' 를 통해 달라진 학생들이 예전 학교에서도 잘 지낼 수 있을까. ⓒ SBS 화면 갈무리

어쨌든 학교폭력은 우리 사회 전체의 병리와 관련되어 있고, 특히 미래의 한국사회를 위한 오늘의 문제라는 점에서 보다 진지하고 시급한 해결책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27일 방영되는 3부‘질풍노도를 넘어’ 편에서 어떤 구체적인 해결책이 소개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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