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 성장주의자 일색...노동전문가는 한명도 없어
[두런두런경제] 김광진 제정임의 경제카페

김광진(KBS2라디오 ‘김광진의 경제포커스’ 진행자): 박근혜 당선인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인선이 완료되면서 인수위가 마련할 차기 정부의 정책방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진 않았습니다만, 인수위 구성으로 미루어 경제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가닥이 잡힐 것으로 볼 수 있을까요.

제정임(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박 당선인이 대선운동기간 동안 경제공약으로 가장 강조했던 것은 경제민주화, 복지, 일자리입니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유권자들이 가장 높은 관심과 요구를 보인 것도 역시 일자리, 복지, 경제민주화였어요. 재벌 중심의 경제력집중과 소득양극화를 완화하고 복지를 확대하고 일자리를 만들어서 서민과 중산층의 삶을 개선해달라는 요구가 강력했고, 박 당선인의 공약도 이에 부응했죠. 문제는 이런 공약이 과연 차기정부에서 차질 없이 실행될 것인가 하는 부분인데요, 최근 발표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구성을 보면 회의적입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확대를 강도 높게 추진하는 대신 경기회복과 성장 쪽에 더 강조점을 두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 인수위가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들로 구성됐기에 그런 전망이 나올까요. 

제: 선거를 앞두고 경제민주화를 강도 높게 주창했던 인물들이 다 빠지고 대신 전형적인 성장론자들이 인수위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우선 ‘박근혜 경제민주화’의 상징적 인물인 김종인 전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실천모임 소속 의원들이 거의 배제됐습니다. 대신 성장과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는 관료출신 정치인과 비슷한 성향의 대학교수 출신들이 경제1분과와 2분과, 고용복지분과 등에 포진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특히 김종인 전 위원장과 대립각을 세운 성장론자인 김광두 전 힘찬경제추진단장이 이끌었던 국가미래연구원 출신 인사들이 인수위원 24명 중 7명을 차지했습니다. 그래서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도 “인수위원 구성만 본다면 경제민주화론자는 없고 성장론자만 남았다”며 “경제민주화를 선거용으로만 써먹고 대선 후 용도폐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고 합니다. 

박근혜의 경제민주화는 증세 없는 공정거래질서 확립

김: 대선기간 동안에도 박근혜 후보 캠프 내에서 경제민주화를 둘러싼 논란이 있었는데요, 그렇다면 앞으로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들은 어떻게 될까요. 
 
제: 경제민주화는 재벌 등 대기업에 지나치게 경제력이 집중된 것을 완화하고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노동자 등 경제적 약자들에게도 공정한 기회를 주자는 취지죠. 그래서 한편으로는 재벌개혁, 다른 한편은 중소기업 등 상대적 약자를 지원하는 정책이 동전의 양면처럼 병행돼야 합니다. 그런데 박근혜 캠프의 경우 대선 당시에도 경제민주화 노선을 둘러싼 내부논란을 겪었지만 인수위에선 더욱 뚜렷하게 재벌개혁보다는 중소기업 지원을 강조하는 분위기입니다. 출자제도 등 소유지배구조를 개혁하고 금산분리를 강화하는 것 등 재벌들을 불편하게 하는 정공법 대신 중소기업들을 지원하는 쪽에 비중을 두겠다는 움직임이 뚜렷합니다.  공정거래제도를 통해서 대기업 중소기업의 불공정거래를 개선하는 정책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단가후려치기 등 하도급비리에 대해 징벌적손해배상제를 적용하는 것 등이 대표적입니다. 사실 공정거래질서를 확립하면 중소기업의 애로를 상당히 덜 수 있으므로 이 부분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런 미시적 정책 만으로 재벌의 경제력집중과 재벌에 의한 정치 경제 언론 장악 등 구조적 문제가 해소되기를 기대하긴 어렵죠. 박 당선인이 최근 들어 경제민주화를 거의 거론하지 않고 있고, 인수위 내에서도 ‘경제위기’를 우려하면서 추경편성 등 경기부양 필요성을 논의하는 것은 ‘재벌개혁을 할 때가 아니라 경제를 살릴 때’라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김: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복지인데요, 인수위 구성으로 보아 복지 공약은 차질 없이 추진되겠습니까.

제: 새누리당 안에서 복지정책의 우선순위 조정과 완급조절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무상보육, 노인복지, 대학생 등록금 인하 등 대선 때 많은 공약을 했지만 모두 추진하려면 엄청난 재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옥석을 가리겠다는 얘기로 보입니다. 박 당선인은 세율을 올리거나 새로운 세목을 신설하는 등 직접증세는 하지 않고 각종 비과세나 세금감면을 줄이는 간접증세와 재정지출구조 개혁, 지하경제양성화를 통해 복지에 필요한 재정을 조달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이 때문에 금융정보분석원(FIU)자료를 국세청이 활용해서 지하경제를 포착할 수 있도록 FIU법안을 입법할 계획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정도로는 이미 약속한 복지공약을 이행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입니다. 그러다 보면 공약을 이행하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고요. 우리나라 복지예산이 100조원을 넘었다고 하지만 국내총생산(GDP)대비 복지재정투자는 10%미만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평균의 절반수준에 불과합니다. 의미 있는 복지 확충을 위해서는 증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국민에게 설명하고 담세능력이 있는 부유층부터 증세를 추진하는 정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노동전문가 없는 고용복지위원회에 원전 정책 확대까지

김: 이번 인수위에는 고용복지위원회가 별도로 구성됐습니다. 그런데 복지전문가만 있고 노동전문가가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더군요. 

제: 네, 지금 쌍용차와 한진중공업, 현대자동차의 해고자 등 노동자들이 해고철회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을 요구하며 고공철탑에 올라 수십 일째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엄동설한에 당사자도, 지켜보는 사람들도 참담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박 당선인과 인수위 측이 이런 급박한 현실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일자리’를 강조하면서도 고용복지위원회에는 노동전문가가 한 사람도 없고요. 고용복지를 강조하지만 해당 위원회에 복지와 재정전문가만 있어 과연 일자리 창출과 노동자의 처우개선에 관심과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노동단체들은 인수위원 인선 발표 직후 성명을 통해 노동전문가가 단 한명도 없는 것을 비판하면서 비정규직의 고용안정, 노동시간 단축, 청년실업 해결, 쌍용차 등 노동현안 해결에 당선인이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했습니다. 이명박 정권 하에서 공정방송과 언론자유 등을 요구하다 해고당한 신문방송사 기자 피디들도 많죠. 기업주의 노조탄압, 산재책임회피 등 노동현안이 산적해 있고요. 박 당선인은 대통합, 경제민주화, 민생을 강조했는데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보다 진지하게 배려하지 않는다면 빈말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각국이 에너지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원전증설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이 문제에 대한 차기정부의 정책방향은 어떻게 전망할 수 있을까요.

제: 후쿠시마 사고 후 전세계적으로 ‘탈원전’이 대세입니다. 독일 등 많은 나라들이 원전 가동을 중단하고 신재생에너지 투자를 가속화하고 있죠. 반면 우리나라, 중국, 아랍권 일부 국가 등 권위주의 체제의 개발도상국들은 원전체제를 고수하는 특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박근혜 당선인은 대선캠페인 당시에도 원전의 안전성 제고를 강조할 뿐 원전탈출과 신재생에너지체제로의 전환에 대한 뚜렷한 의지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인수위 인선에서 대표적 원전옹호론자인 장순흥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핵공학과 교수를 인수위원으로 위촉했습니다. 인수위원 중 유일한 과학자 출신이죠. 이로써 차기정부도 싼 전기의 대량 공급을 위해 원전증설을 추진하는 현 정부의 기조를 유지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원전이 싸고 안전한 에너지라는 신화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깨진 상황입니다.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은 날로 높아지고 있고요. 차기정부가 에너지정책을 일방적으로 결정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안전과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을 위해 어떤 에너지체제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 국민적 토론과 합의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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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KBS2라디오 <김광진의 경제포커스>와 제휴로 작성했습니다. 방송 내용은 1월 9일 <김광진의 경제포커스> 다시 듣기를 통해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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