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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석 신작 ‘인간의 조건’ 성공적 출발
기존 포맷의 ‘비빔밥’ 아주 색다른 맛으로 바꾸는 게 과제
[TV를 보니:11.20 ~26]
2012년 12월 01일 (토) 14:49:49 박기석 기자 pkshaha@naver.com

한국방송(KBS) 2TV에서 <1박 2일>을 연출했던 나영석 피디(PD)가 새로운 프로그램을 들고 돌아왔다. 지난달 24일 첫 방송된 KBS 2TV의 <인간의 조건>이다. 이 프로그램은 현대인의 필수품인 휴대전화, 인터넷, TV 없이 살아가는 개그맨들의 ‘깨알 같은 반응’을 보여주는 파일럿(시험) 프로그램으로 총 4회가 예정되어 있다.

   
▲ 활짝 웃는 <인간의 조건> 멤버들. ⓒ KBS 화면 갈무리

‘세 가지 없는 생활’에 내몰린 여섯 개그맨

KBS <개그콘서트>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김준호, 김준현, 박성호, 양상국, 정태호, 허경환 등 여섯 개그맨은 1주일 동안 TV, 휴대폰, 인터넷을 빼앗긴 채 살아간다. 모두 한 공간에 모여 살기 때문에 '꼼수‘를 쓸 수도 없다. 제작진은 출연진의 휴대폰을 걷고 그들이 생활하는 집 곳곳에 무인카메라를 설치했다.

출연진이 우려했던 대로 처음부터 문제가 생긴다. 휴대폰이 없으니 촬영장 근처에 대기하고 있다는 매니저들과 연락할 방법이 없다. 멤버들은 발품을 팔아 매니저를 찾아다니고, 박성호는 근처 유치원에서 유선전화를 빌려 쓰기도 한다. 양상국은 도저히 불편해서 안 되겠다며 촬영장에 유선전화를 설치하러 전화국으로 달려간다. 허경환은 촬영이 한창일 때 체조선수 신수지와 사귄다는 스캔들이 터졌는데, 휴대전화 연락이 안 돼 신속히 해명을 못했다는 얘기를 나중에 언론인터뷰에서 털어놓기도 했다.

그런데 ‘세 가지 없는 생활’이 만 하루도 되기 전에 그들은 조금씩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휴대폰이 없으니 공중전화를 자주 이용한다. TV와 인터넷 없는 집안에서는 선후배인 출연자들끼리 대화를 많이 나누면서 무료함을 이긴다. 원래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는 양상국과 박성호, 정태호는 이렇게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게 놀랍다고 말하기도했다. 이들의 ‘발견’은 역설적으로 우리 생활에서 휴대전화와 인터넷, TV가 얼마나 많은 대화를 뺏고 있는지 보여준다.

   
▲ 마음 속에 있는 진솔한 이야기를 꺼낸 양상국. ⓒ KBS 화면 갈무리

<인간의 조건>은 2003년부터 5년간 인기를 모은 문화방송(MBC)의 예능 프로그램 <만원의 행복>을 떠올리게 한다. 단돈 1만원으로 일주일 생활비를 충당하되, 경쟁자보다 더 적게 쓴 연예인에게는 효도여행 등의 상품이 주어지는 형식이었다. <만원의 행복> 역시 덜 쓰고, 나누는 노력을 통해 인간성과 유대를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인간의 조건>과 닮았다.

종합편성채널 제이티비씨(JTBC)가 개국 프로그램으로 시작한 <상류사회> 역시 <인간의 조건>과 비슷하다. 곧 방송 1주년을 맞는 이 프로그램은 이수근과 김병만이 초대손님들과 함께 빈손으로 등장했다가 서로 경쟁을 거쳐 TV와 전자렌지 등 문명의 이기들을 획득하는 이야기다. <상류사회>가 보여주는 영상은 문명의 이기를 획득한 강자의 여유보다는 그것이 없는 빈곤한 생활에 집중한다. 반조리식품을 들고 전자렌지가 없어 먹지 못하는 등 패자의 곤궁한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러다 승자가 남는 생필품을 패자와 나누고 힘을 합쳐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에서 뭉클한 인간미와 웃음을 보여준다.

   
▲ 만원으로 1주일 동안 생활해야 하는 <만원의 행복>. ⓒ MBC 화면 갈무리

   
▲ <상류사회>의 엠씨 김병만이 택배로 온 선물을 받고 있다. ⓒ JTBC 화면 갈무리

과거의 포맷에서 아이디어를 얻되 재창조 필요

<인간의 조건>과 비슷한 기존 프로그램은 1999년 첫 방영된 후 오랫동안 화제를 모아온 네덜란드 엔데몰(Endemol) 사의 <빅브러더> 등 해외에도 꽤 있다. 세트 안에 무인카메라를 설치해 출연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여준다는 설정이 거의 같다. MBC의 <우리 결혼했어요>, 에스비에스(SBS)의 <짝>도 비슷한 포맷(형식)이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 우선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프로그램 포맷을 잘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 프로그램을 많이 보고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기존의 아이디어를 거꾸로 돌려보고, 변형하고 보완하면 새로운 형식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조건>은 이런 시도가 돋보이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기존 포맷의 변형이 베끼기, 짜깁기에서 그친다면 시청자에게 감동을 주기 어려울 것이다. 새로운 포맷은 여러 재료들을 한 데 섞어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는 비빔밥처럼 ‘재창조’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기준에서 <인간의 조건> 첫 회는 일단 긍정적이다. 인간미와 감동을 곳곳에 배치했던 <1박 2일>처럼 나영석 PD는 자신의 색깔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흡인력 있는 개그맨들을 대거 동원한 시도도 성공적이다. 같은 시간에 전파를 탔던 <탑밴드>의 2.0%보다 2배 이상 높은 시청률(5.0%, AGB닐슨미디어리서치 기준)이 이를 뒷받침한다.

MBC는 얼마 전 <무한도전>에서 인기를 끌었던 소재를 별다른 개선 없이 <일밤>에 <승부의 신>이란 이름으로 정규편성한 일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 8월 19일 첫 방송된 뒤 3~4%의 시청률로 고전하다 3개월 만에 간판을 내렸다. <인간의 조건>이 이런 전철을 밟는 대신 첫 회의 성공을 이어가려면 ‘닮은꼴 프로그램’에 머물지 않고 아주 새로운 웃음과 감동을 주는 프로그램으로 진화하려는 치열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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