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대학생 신분으로 ‘테드엑스’ 꾸려가는 천영환 디렉터

지난달 13일 대전시 유성구 컨벤션센터 컨퍼런스홀에서는 ‘테드엑스 시티(TEDx city) 2.0’이라는 행사가 열렸다. 미국의 새크라멘토, 영국의 코벤트리, 케냐의 키수무 등 전 세계 67개 도시에서 같은 주제로 동시에 열린 테드엑스 중 유일한 국내 행사로, 조웅래 선양 회장 등 10명의 연사가 ‘시민참여 도시발전 프로젝트’라는 주제로 청중 150여 명 앞에서 생각을 풀어놓았다.

기술(Technology), 오락(Entertainment), 디자인(Design)의 약자인 테드(TED)는 ‘아이디어를 널리 퍼뜨린다’는 취지에서 열리는 공익적 강연회로, 1990년 처음 시작한 미국의 테드 조직위원회로부터 라이센스(허가권)를 따면 ‘독립적 테드’라는 의미의 테드엑스를 열 수 있다. 국내에선 테드엑스가 지난 2009년 서울에서 처음 열린 뒤 전국 70여개 도시로 확산됐는데, 대전 테드엑스는 조직이나 전문가가 아닌 대학 휴학생이 책임자(디렉터)를 맡아 특히 눈길을 모으고 있다. 

 

▲ '테드엑스 시티2.0' 연단에 선 천영환 디렉터. ⓒ 테드엑스대전 페이스북 페이지

“내가 해야 할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자는 생각으로 휴학까지 하고 뛰어들었죠.”

지난 2010년 당시 대전의 충남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생이었던 천영환(27) 디렉터는 교통사고를 당한 어머니를 간호하기 위해 병원에 머물다 인터넷 공개영상으로 테드를 처음 접했을 때 ‘이거다’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사회에 유익한 아이디어가 널리 확산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보람 있는 삶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테드엑스의 라이센스를 얻고 기획하는 일에 전념하기 위해 학업을 일시 중단하기로 했다. 국내 지방도시 중에서는 처음으로 열린 대전 테드엑스는 그의 이 같은 열의 덕에 이제 인정받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무모해 보이지만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재미   

‘최고(best one)보다는 유일한(only one)'

그는 얼마 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테드엑스를 추진하기 전에도 그는 이런 생각에서 남다른 시도를 꽤 했다. 지난 2009년 친구 두 명과 함께 대전시 궁동 대학가에 ‘노네임(Noname)’이란 카페를 연 것도 일종의 실험이었다. 모임과 강연, 공연 등을 열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는 이 카페가 대전에서 거의 유일했다. 테드엑스를 조직하는 과정에서도  비영리민간단체 ‘문화가치원’을 만들고 창작센터 ‘벌집’을 운영했다. 문화가치원은 ‘지역의 숨은 가치 발굴과 지식문화격차 해소’를 위해 만든 조직이고 벌집은 대전에서 유일한 공동작업실(Co-Working Space)로, 전문지식을 가진 이들이 한 공간에서 각자의 일을 하면서 지식과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는 곳이다.

천 디렉터는 또 지난 9월 ‘과학과 예술의 융복합’을 주제로 대전문화재단이 주최한 ‘아티언스 페스티벌(Artience Festival)’ 개막식에서 동료들과 함께 ‘인터렉티브 오브제(Interactive Object)’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인터렉티브 오브제는 들고 있는 사람의 체온과 심장박동수를 측정해 각각 다른 빛을 내다가 공연 시작과 함께 하나의 빛을 내는 기계인데, 그는 이를 활용해 빛과 음악이 결합한 이색적인 공연을 펼쳤다.  
 
“키넥트(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만든 동작인식 컨트롤러), 프로젝션 맵핑(빔을 통해 2차원 이미지를 3차원 무대에 옮겨 표현하는 기술)같은 과학적 요소를 넣고, 일렉트로니카 밴드를 섭외해 함께 공연하니 젊은 층의 반응이 특히 좋았어요. 준비시간이 3주밖에 안 되고, 돈이 부족해 준비가 미진한 부분도 있었지만 의미 있는 행사였습니다. 저도 디제이로 무대에 올랐는데 정말 재미있었어요.”

 

▲ 아티언스 페스티벌 개막식에 디제이로 무대에 오른 천 디렉터. ⓒ 아티언스 페스티벌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일을 시도하고 척척 해내는 그를 사람들은 ‘트렌드를 앞서가는 능력이 있는 인재’로 평가한다. 하지만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소통의 확대, 학문간의 융합 등 변화하는 패러다임에 자연스럽게 몸을 싣다 보니 어느새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더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답 없는 수업’에 매력 느껴 철학 강의에 심취

그는 고등학생 시절 일본에 잠깐 머무는 동안 ‘세상엔 똑똑한 인재들이 많으니 이들을 모아  재미있는 기계 같은 걸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인적자원관리(HRM)와 관련이 있는 경영학과로 진학했다. 하지만 대학 1학년 때 전공기초과목을 들으면서 자신이 원한 것과 실제 수업의 괴리가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전공수업 보다 철학 강의를 더 열심히 들었다. 수 십 년 동안 철학을 가르친 노교수를 찾아가 대화를 나누고 다양한 철학책을 읽으면서 ‘답 자체가 없는 문제들’에 대해 열심히 고민했다.

“전공수업만 들으며 대학생활을 이어나갔다면 저만의 기호란 게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다양한 강의를 듣고 책을 보면서 기호가 생겨났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떻게 해야 더 트렌디하게(시류에 맞게) 사람들에게 잘 다가갈 수 있을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전공수업을 워낙 안 들어서 졸업은 늦어졌지만요.”(웃음)

 

▲ 천 디렉터가 영상을 보며 자신이 진행한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있다. ⓒ 임종헌

그는 카페 노네임에서 아이폰 사용자 모임, 트위터리안 모임 등 각종 세미나와 공연을 기획했고 문화가치원을 통해 벼룩시장, 캘리그라피(손글씨)강연, 책나눔 같은 활동을 펼쳤다. 이런 활동에 대한 아이디어는 다양한 공부를 통해 ‘이해와 소통’의 폭을 넓혔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또 SNS를 통해 참가자들의 반응을 적극적으로 파악함으로써 활동을 개선하고 조직을 강화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출받아 시작했던 카페를 최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문화가치원 일에 주력하고 있다. 이곳에서 활동가로 자원해 뛰고 있는 동료 대학생들과 함께 ‘스펙(조건)’을 위한 활동이 아닌,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고 한다. 

회사원 부러울 때도 있지만 스스로 주도하는 삶 만족

올해 테드엑스 대전은 끝났지만 천 디렉터는 영화 시사회와 미디어아트 프로젝트 등 이런저런 행사를 진행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수입이 많은 것은 아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가끔은 취업해서 안정적인 삶을 꾸려가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하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서 열심히 일하는 친구들은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하고 있는 일을 비관하면서 끌려가는 친구들을 볼 때는 안타까워요. 경제적으로 조금 어렵더라도 제 의지에 따라 선택하고, 업무량과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스스로 지는 지금의 삶이 좋습니다.”

그는 일을 하면서 알게 된 기업 관계자들의 입사 제의, 혹은 사업 제안이 더러 있었지만 모두 거절했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곧 대학 졸업장을 받을 계획이다. 그러나 졸업하더라도 사회가 요구하는 틀에 맞춰 살진 않겠다고 말한다. 더 많은 고민과 공부, 노력을 통해 ‘스스로 주도하는 삶’을 꾸준히 개척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 천영환 디렉터(오른쪽 두번째 흰색 와이셔츠)와 테드엑스대전 조직위원 및 자원봉사자들. ⓒ 테드엑스대전 페이스북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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