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화 과정으로 본 연애 이야기

이제 곧 대선이다. '대한민국' 학급을 이끌어갈 반장을 뽑는 날. 이 반장선거에서 유권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단연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다. 단일화가 되면 '누가' 될지, '어떻게' 될 것인지, 이후 '어떤' 결과가 나올지 유권자뿐만 아니라 정치권, 언론의 핫이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매일 보도되는 단일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보면, 정치 이외의 것이 떠오를 때가 있다. 바로 사랑을 시작하려는 사람의 얼굴이다. 망설이고, 기뻐하고, 실망하고, 또 웃으며 한 발자국 서로를 향해 다가가는 사람들의 얼굴. 요상하게도 연애와 매우 닮았다.

 

#1. 애인(愛人)후보 1번 아무개입니다

여기, 사랑에 빠진 한 사람이 있다. 안철수 후보에게 대선출마 전 있나, 없나로 수많이 거론된 '권력의지'와 비슷한 개념으로 '연애의지'를 갖게 된 사람이다.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고, 해야만 하고, 할 것이라는 의지. 그 순수한 의도를 갖는 것만으로 애인후보 등록 준비는 끝이다. 그러나 앞으로 걸어야 할 길은 길고 험하다. 거쳐야 할 관문이 여럿 있음도 물론이다.

가장 어려운 관문은 '검증'. 애인의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를 묻는 과정이다. 수많은 동성 '라이벌'의 틈바구니 속에서 빛을 보느냐, 잃느냐는 이 과정에 달렸다. 많은 예비 애인이 탈락해 아픔을 곱씹는 곳도 바로 이곳에서다. 검증에 통과하는 조건은 특별히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집 뒷장에 붙어있는 답안지처럼 답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마치 청문회나 면접처럼 그저 자신 그대로를 내보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A: 만약 애인이 된다면, 이것만은 지키겠다, 라는 공약이 있습니까?
B: 저는 하루에 7번 전화를 하고 7일마다 이벤트를 열어줄 것이며 매달 7%의 사랑성장율을 약속합니다.
A: 그게 가능합니까? 제가 보기에 포퓰리즘인데. 그럼 제 점수는요, 7점 드리겠습니다.

검증은 문서 프린트 전의 '미리보기'와 같다. 애인이 된 후의 모양을 미리 살펴보는 것이다. 잘못 쓴 글씨는 없는지, 여백은 적당한지.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 진실한 사람인지. 무엇보다 끝까지 자신을 사랑해 줄 사람인지 샅샅이 살펴봐야 한다. 사랑에 무슨 검증이냐, 라는 비판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대통령도 자신의 순수한 권력에의 의지로만 뽑는다면 이미 허경영이 레임덕 중일 것이다. 사랑은 연애의 필요조건이지만 연애는 사랑 이외에도 많은 것들을 필요로 한다.

이 단계가 지나면 친구와 애인 사이의 어정쩡한 관계인 '썸남썸녀'가 된다. 친구보다 더 친하지만 그렇다고 애인은 아닌, 다른 말로 충분히 애인이 될 수도 있는 관계다. 수많은 후보를 물리치고 유력 애인후보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자, 보라. 이 단계에서 무릎을 꿇은 연애주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실패 후 "난 그(그녀)에게 어장관리만 당한거야!"라며 자책하는 사람들이 많다. 유력 대권주자로 대권을 목전에 뒀다가 주저앉은 정치인처럼 '연예계 은퇴'를 선언하기도 한다. 그 마지막 한 단계가 사람을 안달 나게 하는 것이다. 그 조급함 때문에 이제껏 잘해오다가 엉뚱한 실책을 저지르기도 하고, 검증 때도 드러나지 않은 치부를 스스로 드러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기억해야 할 키워드는 하나다. 바로 단일화다.

 

#2. 너에게 주고 싶은 꽃, 단일화(花)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행보는 마치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 사랑하기까지의 여정을 보는 듯하다. 단일화는 두 후보가 대선출마 선언을 하기 전부터 이슈였다. 정권교체라는 최종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단일화'가 행해져야 하는 것은 당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두르지 않았다. 마지막 한 단계를 앞에 두고 더욱 신중해지는 듯하다.

단일화란, 하나가 되는 것이다. 통일이다. 이미 '썸남썸녀'였던, 쉽게 단일화를 이룰 수 있었던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서로 진중하게 자신의 진의를 내보이며 화합의 길을 향해 서서히 걸어가는 것은, 큰 시사점을 준다. 연애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연애의 시작이라는 문턱을 넘지 못하고 넘어지는 것은, 이 단일화가 실패한 이유가 크다. 서로 교감한 내용이 없고, 엇갈리기만 한다면 아무리 썸남썸녀라도 연인이 될 수 없기 마련이다.

단일화의 시작은 러브콜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구애의 메시지. 그 메시지는 “자, 우리 썸남썸녀인데 단계를 업그레이드해야 되지 않겠니, 어떻게 생각하니”라는 주제의 장으로의 초대장과 같다. 자신의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공개적인 장이다. 상대가 응한다면 반쯤은 성공한 것이다.

흔히 썸남썸녀의 특징은 확정되지 않은 자신의 감정이다. 불확실하며 불특정하다. "너 걔 정말 좋아하는 거야?"라고 물으면 "나도 잘 모르겠어..."라고 대답한다. 이런 불확실성이 불안의 요소가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감정의 경계선을 바로 그어 줄 자리가 바로 단일화 회동이다.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회동이 그렇듯 그것은 서로가 서로의 진심을 깊이 확인하는 자리며, 동시에 자신의 결심을 더욱 확고히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물론 이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실제로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과정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단일화 파행'이라며 비판한다. 그러나 이 부분은 전혀 비판할 문제가 아니다. 통일과 화합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당연하게 겪어야 할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때는 많은 출혈을 동반한다. 나의 살점을 떼어내는 과정이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 나의 것을 ‘양보’해야 한다. 동시에 상대의 것을 받아들일 '관용'도 필요하다.

연애의 단일화도 마찬가지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가 서로 다른 언어로 교감하려고 애쓴다면 당연히 답답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 자체가 서로에게 신중하게 다가가고 있다는 증거다. 알아듣지 못하는 화성어(금성어)를 해석하려는 시도를 보라. '나는 당신을 알고 싶어요'라는 신호다. 갸륵하지 않은가.

'단일화'라는 마지막 계단을 올라선다면 비로소 '하나'가 된다. 그때가 되면, 얼마나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지 당신도 실감할 수 있을 것이고, 당신이 내 곁에 없을 때의 나의 외로움을 당신도 알게 되고, 당신의 심장 한 켠에 내가 항상 있을 것임을 당신도 알게 될 것이다. 나의 것만큼 그 사람의 것을 나눠가졌기에 이제껏 둘로 존재해왔던 삶이 하나가 된다. 온전한 단일화가 이뤄진다면 그만큼 단단한 연인도 없다.

 

#나가며

tvN의 개그프로그램 'SNL 코리아' 중 '여의도 텔레토비'라는 코너가 있다. 각 유력 대선후보들이 텔레토비로 희화화돼 현 정치상황을 신랄하게 풍자하며 재미를 주고 있다. 그 중 한 에피소드에서 문제니(문재인 텔레토비)가 안쳤어(안철수 텔레토비)에게 꽃을 내밀며 프러포즈를 하는 장면이 있다.

"자, 받아. 내 마음의 단일화(花)"

문제니와 안쳤어의 로맨스를 닮자. 어서 빨리 단일화 대상부터 물색하는 것이 좋겠다. 포퓰리즘 공약은 내세우지 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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