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불패] 구제역 휩쓸고 간 충주 신청리, 그리고 한 달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때부터인가 농업에 ‘사양산업’이라는 딱지가 붙여졌고, 농촌은 노인들이 힘겹게 지키고 있습니다. 농업에 대한 그릇된 인식은 언론에 의해 확대재생산되는 측면이 강합니다. 농업/농촌 전문기자가 전무한 게 우리 언론의 현실입니다. 선진국 언론들이 농업/농촌전문기자를 두고 농경제학적, 농촌사회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수준 높은 기사를 내보내는 것과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미국 러시아 등 강대국과 북유럽 복지국가들은 모두 공업국인 동시에 농업국이고 농촌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나라들입니다. 이제 우리 농촌도 ‘떠나야 할 곳’이 아니라 ‘머물러야 할 곳’입니다. 교육받은 청년들이 ‘인간이 만든 도시’를 떠나 ‘신이 만든 농촌’으로 가야 할 때입니다. 대산농촌문화재단의 장학지원으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서 농촌전문기자/PD 양성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학생들은 아직 배우는 과정에 있지만, 농촌현실에 뛰어들어 농업과 농촌사회, 그리고 농촌환경 문제에 대한 의제를 활발히 던지겠다는 각오입니다. 때로는 기사로, 때로는 영상으로 독자나 시청자 여러분을 찾아갈 [농촌불패]에서 ‘오래된 미래’, 농촌을 만나 보십시오. <편집자>

이렇게 뒤늦게 찾아온 기자는 첨이네. 우르르 수십 명 몰려왔다가 떠나면 그뿐이지. 근데 당신들은 왜 왔어?”

“저희는 정식 기자가 아니고 농촌전문기자를 꿈꾸는 학생들입니다. 구제역이 휩쓸고 지나간 농촌, 그 전과 후를 취재하고 싶었습니다.” 

“언론이든 정부든 한때뿐이야. 살처분하고 돈 받으면 계산 끝난 줄 알아. 소에 들이는 농민들의 지극정성, 그렇게 길러온 소를 죽인 허탈감을 기자들이 어찌 알겠어.”

어딜 가나 언론에 대한 반응은 싸늘했다. 5월말부터 두 차례 찾아간 충주 신니면 신청리. 축산농민 정용근(59)씨는 두 번째 찾아갔을 때 말문을 열었다. 22년간 3세대 젖소까지 종축개량을 해왔는데 하루 아침에 모조리 죽여야 했다. 

“20년 세월 헛살았어. 장성한 자식을 죽인 심정이 이보다 더할까?”

헛헛한 웃음을 흘리며 한 달 전 일을 떠올린다. 흰 옷 입은 사람들 30여 명이 목장으로 몰려왔다. 그들은 가방에서 주사기를 꺼내 들었고, 마취제가 주사기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순식간에 4cc를 훌쩍 넘겼다. 4cc면 치사량이다. 주인은 고개를 돌리고 농장 밖으로 나갔다. 소들이 내달리는 소리, 울부짖는 소리가 점점 약해졌다. 

20년 지극정성 종축개량 헛수고

정씨는 88년에 젖소 4마리를 들였다. 7~8개월 된 새끼들이 뱃속에 든 어미소들이었다. 그 중 사료를 전혀 주지 않고 주인이 직접 좋은 풀만 베어다 먹인 ‘젖순이’가 있었다. 처음 키우는 소들이라 첫 아이처럼 돌보았다. 좋은 것만 먹이려 했고, 많이 먹이고 싶었다. 그랬더니 두 마리가 죽었다.

“단백질을 많이 주면 소들이 살쪄. 살찌면 분만하기 힘들어. 나트륨이 많으면 태가 안 나오고 속에서 썩어. 그러면 패혈증이 생겨 40도까지 열이 올라가. 소들이 한 20일 동안 안 먹고 죽는 거지. 처음엔 모르니까, 무조건 영양분만 많이 주면 된다고 생각했지.”

 ▲ 젖소를 살처분하려는 사람들이 정씨의 농장 앞에 모여 있다. ⓒ 블로거 시원

정씨의 아내 이명규(55)씨는 소가 죽자 한참 속앓이를 하더니 남은 어미소 두 마리에 더욱 정성을 쏟았다. 그 중 한 마리였던 ‘젖순이’는 15년간 새끼 12마리를 낳았는데, 임신시킬 때마다 발굽이 튼튼한 소의 정액을 구해 수정을 했다. 종축개량협회에 가입해 20여 년 공을 들였다. 벼농사조차 소들에게 좋은 먹이를 주기 위해 지었고, 겨울에는 호밀과 청보리도 재배했다. 그것도 모자라 해외에서 수입한 풀을 먹이기도 했다. 

“젖순이, 걔가 유량은 엄청 좋았어. 유방염에 걸려도 금방 나아. 새끼를 열 두 마리나 낳았으면 할머니들처럼 젖이 늘어지기 마련인데 걔는 착 달라붙어서 아주 좋았어.”

‘젖순이’는 좋은 유전자를 후손에 남겨주었다. 이씨는 벽에 걸린 사진을 가리켰다.

“가장 좋은 소는 저거지. 충북 젖소경진대회 때 최우수상 탄 거. 젖순이의 손녀야. 좀 카리스마가 있다고 할까, 성질이. 다른 놈들이 달려들면 냅다 치고. 20년간 개량해온 덕분이었지.”

 ▲정씨 부부와 ‘젖순이’의 손녀가 함께 찍은 사진이 집안 거실 벽에 걸려 있다. ⓒ 조형진

젖소가 늘어나면서 축사와 장비도 자연스레 늘어났다.

“여기 축사 어디 한 군데 내 손이 안 닿은 곳이 없어. 설계부터 용접까지 직접 했지. 착유기다, 트랙터다, 전부 다 들이니 설비값만도 10억이 넘어. 정책자금 나온 거 2~3% 이자로 빌려 쓰고, 그것도 모자라면 은행에서 7~8%짜리 끌어오고. 축산농가 웬만하면 2~3억 빚 있는 건 기본이지.”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하는 젖짜기는 하루도 뺄 수 없었다. 10여 년 전, 아버지 상을 치를 때도 저녁 7시가 되자 상복을 한 쪽에 벗어두고 젖을 짰다. 정 씨 부부는 젖소를 키우면서 5남매를 키웠다.

“내 살면서 대학을 여섯 보냈어. 막내 동생까지 여섯이지. 아직 막내아들놈은 대학교 2학년 다니고. 복지학과인데 이어받으려나 모르겠어.”

살처분 범위, 충주는 3Km, ‘정부 것’은 500m

구제역은 올 1월 포천에서 처음 발생했다. 그로부터 석 달 뒤 강화에서 다시 구제역이 발생했다. 열흘쯤 지났을 때, 휴대전화로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구제역에 민감한 사료회사 발신이었다. '충주시 신니면 용원리 돼지농가 구제역 의심신고.' 용원리는 정씨의 농장과 2Km 이상 떨어진 곳이었다.

다음날 판정은 구제역 확진으로 나왔다. 농식품부는 위기단계를 최고 수준으로 올렸다. 살처분 대상 범위도 늘어났다. 500m에서 3Km로 바뀌었다. 중부내륙이라는 지역성, 소보다 3000배 강한 돼지의 전파력이 위기감을 높였다. 정씨는 차례로 충주시장, 농식품부 하영제 2차관, 정우택 충북도지사를 만났다.

“우리 젖소 농가만큼은 열흘 정도만 기다렸다가 살처분을 하자고 했지. 열흘이면 구제역이 더 발생할지 안 할지를 알아.”

구제역 대책본부장인 하 차관은 반경 3km 원칙을 고수했다. 가축 1만2천여 마리가 일시에 살처분 됐다. 언론은 '살처분'이라 보도했지만, 정씨 부부에게는 ‘94명의 살붙이’가 처분된 것이었다. 텅 빈 축사가 옆에 있는 집에서는 잠도 잘 수 없었다. 주변 농가와 함께 단양의 펜션으로 가서 그날 밤을 보냈다.

“뒷모습만 봐도 어느 놈인지 알지. 사람도 여우 같은 사람 있고, 게으른 사람 있듯이 소도 똑 같애. 특징을 한 마리 한 마리 다 알지. 얼굴도 다 틀려. 엄마는 쌍둥이도 안다잖아. 젖 모양만 봐도 어느 놈인지 다 아는데......아침 저녁으로 매일 만지는 젖을 모르겠나.”

▲ 텅 빈 축사에서 연거푸 담배를 피며 살처분한 소들을 회상하고 있는 정씨. ⓒ 이재덕

5월 1일, 충남 청양에서도 구제역이 발생했다. 축산기술연구소의 모돈(어미 돼지)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농식품부는 주변 500m 지역의 가축을 살처분한다는 방침을 내렸다. 청양에서도 감염된 것은 돼지였지만 살처분 대상 지역이 3Km가 아닌 500m로 정해졌다. 충주 돼지농가와 청양 정부기관에서 발생한 구제역 혈청은 똑같이 O형이었다.

“하영제 차관, 뉴스에 나와서 청양은 500m만 살처분 한다고 말하더만. 정부 것이라 그랬겠지......”

무엇으로도 보상 받을 수 없는 ‘농심’

정부에서는 가축시세의 100%를 보상하겠다고 약속했다. 젖소 시세는 농협중앙회가 열흘에 한 번씩 전국 16개 지역에서 시장가격을 조사해 발표한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젖소들은 대개 품질이 나쁘다. 상대적으로 우유 생산량이 떨어지는 젖소들이 시장에 나온다. 질 낮은 젖소들이 시장가격을 형성한다. 종축개량협회에서 320만원으로 산정한 젖소가 정부기준으로는 49만원 값이다.

“그나마 좋은 소 사고 팔 때는 아는 사람들끼리 문전거래가 이루어지는데, 이런 소들은 부르는 게 값이여. 농협에서 시세 조사하는 걸로는 제대로 된 가격이 나올 수가 없어. 100두 보상금 받은 걸로 50두나 살 수 있으려나......”

중개수수료, 운송비까지 계산하며 정 씨는 연신 혀를 찬다.

“소 한 마리 사서 농장에 실어오려면 운송비 10만원은 줘야 하는데, 그런 건 전혀 보상에 반영 안 됐어. 보상금 받아서 길바닥에 깔고 나면 뭐가 남겠나. 그 무엇보다 갈갈이 찢긴 이 심정은 보상받을 수 있는 게 아니지.”

정씨 부부는 한 달이 넘도록 잠을 제대로 못 잔다. 소가 떠난 날부터 세 살짜리 외손주가 내려와 살고 있다. 큰 딸 부부가 수원에서 주말마다 내려 온다. 젖소를 다시 들이려면 제한기간인 6개월이 지나야 한다. 6개월 동안 손주 재롱 보는 것 말고 그들이 웃을 일이 또 있을까?

“우리는 죄인이여. 충주에서 왔다고 하면 다들 벌레 보듯 해. 어디 딴 데도 못 가.”


충주 / 조형진 이재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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