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빠른 편성 불구 기존영상 짜깁기 수준 그친 'KBS스페셜'
[TV를 보니 : 11.5~11]

영국엔 비비씨(BBC), 일본엔 엔에이치케이(NHK), 그렇다면 한국엔 한국방송(KBS)인가?  KBS가 과연 한국을 대표하는 공영방송으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문을 품고 있는 시청자들이라면 지난 11일 저녁 8시 <KBS 스페셜>을 보고 한 번 더 쓴 입맛을 다셨을지도 모르겠다. 지투(G2)로 꼽히는 양대 강국, 미국과 중국의 리더십이 교체되는 시점에서 그 의미를 짚어본 다큐멘터리가 ‘함량 미달’이었기 때문이다. 

밋밋한 구성에 상식적인 내용 나열

“미국에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걸 우리는 가슴으로 알고 있다.”

현지시간으로 6일 실시된 미국의 대통령선거에서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최초의 흑인 재선대통령’ 타이틀까지 갖게 됐다. 지속되는 경제난과 높은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은 부유층 증세와 중산층 회복을 내건 오바마의 ‘공평하고 통합된 미래’에 더 많은 표를 던졌다. 그 오바마 정부가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를 외교의 원칙으로 내 건 가운데 8일 중국의 제18차 전국인민대표회의가 시진핑 국가부주석을 최고지도자로 선출했다. 대한민국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양대 강국이 새로운 지도체제를 갖춘 것이다.

▲ KBS는 G2 리더십 교체가 맞물린 주에 발빠르게 다큐멘터리를 편성했다. ⓒ KBS1 화면 갈무리
이같이 중요한 시점에 KBS 1TV가 ‘G2의 리더십, 오바마와 시진핑’ 편을 준비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했다고 할 수 있다. 시청자들은 양국의 차세대 정치리더십이 어떤 성격인지, 이후 전개될 외교 전략은 어떤 것일지, 그것이 한반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등을 짚어주길 기대하며 TV앞에 앉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다큐 기획의 기본조차 지키지 않은 듯 허술한 구성에 새로울 것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미․중 양강의 리더십 교체라는 소재에 편승해 그냥 과거 영상을 짜깁기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원론적 문제제기와 상식적인 결론을 지켜보면서 ‘전파 낭비’라는 단어가 떠오를 정도였다.

우선 전반부에 오바마, 후반부에 시진핑을 배치한 ‘일괄 비교’는 단순함의 극치를 보여준 구성이었다. 프로그램 내내 두 지도자와 양국의 정책 등을 구체적 사안별로 비교하는 시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바마와 시진핑에 할애한 3대7의 시간 불균형도 문제였다. 많이 알려진 오바마 보다 아직 덜 알려진 시진핑을 충분히 다루고 싶었다면 차라리 ‘시진핑 특집’을 제작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 (위 사진) 오바마 분량은 집권 1기와 재선 선거운동 소개에 그쳤으나, 시진핑 분량은 개인 연애사까지 세세하게 소개했다. ⓒ KBS1 화면 갈무리

프로그램의 내용 또한 오바마와 시진핑의 개인사를 나열하는 수준에서 끝났다. 중국과 미국의 향후 대내외 정책방향에 대한 비교와 전망을 기대했던 시청자는 실망했을 게 분명하다. ‘G2’, ‘미국과 중국’, ‘리더십’, ‘오바마와 시진핑’ 등 제목에 들어간 단어들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KBS 스페셜> 홈페이지에 소개된 ‘집권 2기 오바마의 전략은 무엇인지 살펴보겠다’는 기획의도는 공허한 약속에 그친 셈이다. 소재를 어떻게 소화할 것인지, 초점을 어디에 맞출 것인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 ‘부실 방송’이었다. 시진핑과 오바마의 개인사 속에서 그들의 리더십 특징을 도출하는 노력도 보기 어려웠다. 시진핑이 수호지에 나오는 송강(宋江)을 닮았다거나 ‘후덕재물(厚德載物 : 덕을 두텁게 하여 만물을 포용하다)’이 리더십의 원천이 되리라는 막연한 전망이 나왔을 뿐이다. 새롭고 심도 있는 분석 대신 ‘부패청산과 정치개혁 등의 과제를 안고 있다’는 상식적 결론이 끝이었다.

▲ 프로그램 내용은 G2의 정책방향 등 구체적 사안보다 개인사 나열에 그쳤다. ⓒ KBS1 화면 갈무리
편성 늦추더라도 심층성 보강했어야

문자로 사실을 전달하는 활자매체에 비해 영상매체는 영상과 음악, 컴퓨터그래픽(CG) 등 보다 다양하고 복잡한 작업을 거쳐야 한다. 이번처럼 G2, 리더십, 외교정책 등 관념적이고 복잡한 거대담론을 다룰 경우 영상매체는 더욱 난관에 빠지기 쉽다. 하나의 소재를 풀어나가기도 어려운데 광범위한 문제를 한꺼번에 다루겠다고 덤볐으니 어쩌면 실패는 예견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인물과 현상에 대한 심층적 분석, 쟁점사안에 대한 설명과 예측을 시도하기에 60분이라는 시간은 결코 길지 않다. ‘미· 중의 리더십 교체와 한반도’, ‘시진핑 시대의 중국’등으로 주제를 좁혔다면 상대적으로 제작도 수월하고 내용도 훨씬 유익했을 것이다.

빠른 편성에 급급하기보다 1~2주 늦추더라도 내용을 제대로 갖춰서 방송했으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활자매체들이 이미 다각도로 기사를 쏟아낸 마당에 굳이 새로울 것 없는 내용으로 시의성만 갖춘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기획 단계에서 방향 설정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고, 취재와 편집 기간이 턱없이 짧았던 흔적이 방송에 여실히 드러났다. 

방송 후 프로그램 게시판에는 시청자 의견이 단 한 줄도 없었다. ‘악플 보다 슬픈 게 무플’이란 우스갯소리가 있다. 악성 댓글보다 시청자의 무관심이 더 서럽다는 얘기다. 수용자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만큼 큰 실패의 증거도 없을 것이다. BBC나 NHK에서도 이런 수준의 프로그램이 방영될 수 있을까. 제작진이 겸허히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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