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 경제위기론 앞세워 재벌개혁 김 빼고 성장 강조
[두런두런경제] 김광진 제정임의 경제카페

김광진(KBS2라디오 ‘김광진의 경제포커스’ 진행자): 18대 대통령 선거가 35일 가량 앞으로 다가왔는데요, 대선 후보들이 앞 다투어 강조하던 경제민주화 공약이 후퇴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요.

제정임(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다른 당보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 진영이 보이고 있는 갈등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박근혜 후보는 지금까지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앞세워 경제민주화 공약을 개발해 왔는데, 최근 김 위원장의 핵심 재벌개혁 구상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하는 일도 있었고, 결국 캠프를 떠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박 후보는 김 위원장 대신 성장정책에 강조점을 둔 김광두 힘찬경제추진단장을 중용하는 행보를 보여서, 이제 경제민주화보다 성장을 강조하는 노선으로 돌아서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낳고 있습니다. 새누리당에서는 또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행대로 유지하고 집권과 동시에 10조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시행하는 방안, 규제 완화로 기업의 투자여건을 개선하는 방안 등 재벌들이 환영할 만한 발언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부유층의 투자수단인 고가미술품에 대한 양도소득세 비과세조를 4년 연장하는 법안도 제출하는 등 경제민주화와 거리가 있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김: 박근혜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 가운데 기존 주장보다 후퇴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인가요.

제: 재벌개혁과 관련해서 재벌기업들의 기존 순환출자를 문제 삼지 않겠다는 발언이 대표적입니다. 박 후보는 지난 8일 경제5단체장과의 간담회에서 "신규 순환출자는 금지하되 기존 순환출자에 대한 의결권 제한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기존 순환출자분의 의결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김종인 안과 배치되는 내용이죠. 박 후보는 또 김종인 위원장이 제시한 방안 중 ‘대기업집단법을 제정해서 재벌의 경제력집중을 효율적으로 견제해야 한다’, ‘대기업총수가 중대 경제범죄를 저질렀을 때 국민 참여재판을 의무화해야 한다’ , ‘재벌총수 등 임원진의 급여를 공개하자’ 등도 거부하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종인, “박근혜가 재벌 입김에 흔들리고 있다”

김: 박근혜 후보는 지난 4.11총선 때부터 경제민주화를 누구보다 강조했고, 이런 행보가 호소력을 발휘했다는 평가도 받았는데요, 막상 대선을 앞두고  노선을 바꾸는 이유는 뭘까요.

제: 최근 재계 등 보수층을 중심으로 경제위기론이 부각되면서, 새누리당 내에서 재벌개혁과 증세, 복지강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경제민주화 주장이 흔들리고, 성장논리가 득세하고 있다는 관측입니다. 지금까지는 새누리당 내에서도 경제민주화실천의원모임 등을 중심으로 강도 높은 재벌개혁과 중소기업 보호정책 등이 제시됐지만, 최근에는 경기부양과 경제민주화 속도조절론이 부상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하네요. 특히 문재인, 안철수 두 야권 후보가 앞 다투어 경제민주화를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보수층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박 후보는 ‘집토끼’인 보수층의 지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성장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는 내부 진단이 나왔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김종인 위원장측은 ‘박 후보가 재벌의 입김, 로비에 노출된 측근들에게 흔들리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김: 그렇다면 야권의 유력 주자인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경제민주화 관련 공약도 후퇴하는 조짐이 있습니까. 

제: 두 사람은 지난달과 이달 재벌개혁과 골목상권보호 등을 포함한 경제민주화 공약을 잇달아 발표했는데요, 여전히 강력한 개혁의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경제민주화 공약은 상당부분 비슷합니다. 경제민주화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재벌개혁만 살펴보더라도 재벌의 소유지배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신규순환출자를 금지하고, 지주회사에 대한 규제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재벌 총수일가가 부당한 방법으로 사익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감시하기 위해 소액주주가 자신들을 대변하는 이사를 뽑을 수 있는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자, 모기업 주주들이 자회사와 손자회사를 감시할 수 있도록 다중대표소송제도를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같습니다. 또 재벌이 일감 몰아주기와 같은 부당지원행위로 이득을 얻을 경우 부당이익을 얻은 지배주주(총수일가)에게 과세를 강화한다는 안도 공통적이고요. 이와 함께 공정거래위원회가 불공정행위에 대한 감시감독을 게을리 할 수 없도록 중요 법위반행위에 대해서는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고,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통해 재벌의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과 배상책임을 강화하겠다는 구상도 공통적으로 나왔습니다.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소유한도를 9%에서 4%로 축소하는 등 금융과 산업의 분리를 확실히 하기 위한 방안에도 두 사람은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기존 순환출자 두고 문, ‘3년 안에 단계적 해소’, 안, ‘일단은 자율에 맡겨야’

김: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이 상당히 비슷하다는 얘긴데요, 그러면 두 후보가 차이점을 보여주는 부분은 어떤 것들인가요.

제: 큰 골격은 비슷하지만 세부적인 방안에서 일부 차이는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계열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로 출자해서 가공자본으로 총수의 지배력을 확대하는 순환출자 문제의 경우, 문 후보는 기존 순환출자도 3년 내에 단계적으로 해소하도록 명문화하고 있지만 안 후보는 일단 자율 해소를 지켜본 뒤 조치한다는 입장입니다. 재벌의 문어발확장을 막기 위해서 순자산의 일정한도 이상을 다른 회사에 출자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출자총액제한제의 경우 문 후보는 부활한다는 방침이지만 안 후보는 실효성이 없어 부활시키지 않는다는 입장이고요. 또 안 후보는 재벌의 금융계열사를 그룹으로부터 분리하도록 명령할 수 있는 ‘계열분리명령제’라는 강력한 수단을 도입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문 후보는 이를 도입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따져보면 다소간의 정책 차이가 보이지만 기본 철학과 정책 방향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단일화 과정에서 조율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김: 누가 대통령이 되던 내년은 국내외 경제가 무척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데요, 대통령 당선자가 경제난을 이유로 후보 시절 약속한 경제민주화 공약을 실행하지 않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제: 최근 드러난 당내 갈등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박근혜 후보의 경제민주화 의지는 상당히 뿌리가 약한 게 사실입니다. 박 후보는 지난 2008년 당내 대선 후보 경선 당시부터 ‘줄푸세 공약’을 내세웠던 인물이죠. 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는 의미인데, 이는 대기업의 세금을 줄이고 재벌을 감시견제하는 규제를 풀고 노동자를 대상으로 강력한 공권력을 동원한 이명박 정부의 정책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입니다. 지난 4.11 총선을 앞두고 표를 의식하면서 일시적으로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강조했지만 대선을 앞두고 보수표 결집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상당부분 원래의 노선으로 되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박 후보는 오는 16일 경제민주화 공약을 종합 발표할 예정인데, 이날 발표할 공약의 강도도 주목되지만 어떤 공약을 내세웠는가와 별도로 그나마 집권 후에 시행의지가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큰 게 사실입니다. 문재인 안철수 후보는 경제민주화를 핵심 공약으로 삼고 있고, 현재로서는 실행 의지가 강력해 보입니다. 그러나 민주통합당의 기성정치인들 역시 노무현 정부에서 재벌개혁을 좌초시켰던 인물들이 많습니다. 정권 출범 시점에서 경제상황이 어려워진다면 과연 강력한 개혁의지가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또 여소야대 상황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을 어떻게 설득해 필요한 입법을 해낼 것인가가 엄청난 과제가 될 것입니다. 

김: 다음 정부에서 경제민주화 정책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는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제: 새누리당의 한 인사가 경제민주화 속도조절론을 얘기하면서 “땔감도 마련해 가면서 구들장을 수리해야 한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여기서 땔감은 성장동력을 말하는 것이고, 구들장 수리는 경제민주화를 통해서 양극화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뜻이죠. 이 얘기를 뒤집어 생각하면 아무리 땔감을 많이 써도 구들장이 잘못돼 있을 경우 아랫목의 온기가 윗목으로 가지 않는다는 원리를 확인하게 되죠. 지금 우리 경제는 재벌기업들이 돈을 잘 벌어 성장률이 올라가도 그 과실이 중소기업, 자영업자, 노동자들에 나눠지지 않아 갈수록 양극화가 심화되는 구조입니다. 말하자면 구들장이 망가진 상태죠. 경제민주화를 통해 경제력집중을 해소하고 공정한 거래풍토를 세우는 일이 선행되지 않으면 아무리 외형상 성장을 해봐야 국민 다수의 살림살이는 여전히 피폐하고 사회는 불안하고, 경제의 성장잠재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권이 더 이상 공허한 성장논리에 매달리지 말고, 이번에는 확실히 구들장을 고쳐서 경제의 온기가 전 국민에게 고루 전달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지속적인 성장도 가능하다는 것을 꼭 유념했으면 합니다. 


 * 이 기사는 KBS2라디오 <김광진의 경제포커스>와 제휴로 작성했습니다. 방송 내용은 11월 14일 <김광진의 경제포커스> 다시 듣기를 통해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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