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에 시작한 ‘바이크인생’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만끽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 반, 충북 제천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의 201호 강의실은 유쾌한 활기로 가득 찬다. 

“What did you do last week?"(지난주에 뭐 했나요?)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질문을 던지는 매튜 위더스푼(Matthew Witherspoonㆍ46) 교수에게 학생들은 ‘재밌는 책을 읽었다’ ‘서울에 다녀왔다’ 등 가벼운 답으로 말문을 연다. 위더스푼 교수는 ‘영어인터뷰 실습’을 가르치는 이 시간을 좋아한다. ‘과묵한’ 학생들이 많은 학부 수업에 비해 활발한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옆집 아저씨’같은 13년 경력 원어민 교수 

▲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대화 중인 위더스푼 교수. ⓒ 임경호

‘싫어’ ‘좋아’ 등 간단한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그는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하고 격의 없이 수업을 이끈다. 자신이 잘 아는 한국인으로 ‘이명박’ ‘박정희’ 등을 꼽으며 거리감을 좁히고, 학생들이 영어로 말할 때 ‘이렇게’ ‘저렇게’ 등 우리말 추임새를 넣으며 긴장을 풀어준다. 

“어릴 때부터 재미있다는 얘길 들었어요. 고등학생 때도 곧잘 친구들을 웃기곤 했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해서 이 일이 잘 맞는 것 같아요."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에서 방송학을 전공한 그는 지난 1996년 한창 일자리를 찾던 중 영어강사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한국에 왔다. 영어를 가르칠 준비가 돼 있었던 건 아니지만 모험심이 발동했다고 한다. 서울 여의도의 한 학원에서 영어강사를 했는데, 가르치는 일에 흥미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미국으로 돌아가 애리조나 주 피닉스대학에서 교육학을 공부하고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 무렵 세명대에 먼저 와 일하던 친구의 소개로 교수 채용에 지원했다. 

“지난 2000년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영어학과는 지금보다 규모가 작았죠. 그 때 가르친 학생들 중 몇몇은 회사원이 됐는데 아직도 연락하며 지내요. 함께 스키를 타거나 산악마라톤을 한 학생들도 있고요. 그 친구들이 어른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보람을 느낍니다."

사실 미국에 있을 때 그는 한 가지 일을 오래 하지 못하는 편이었다. 방송국에서 기술직으로 일해 봤고 알래스카의 석유시추 작업장에서 엑스레이(x-ray) 기술자로도 일해 봤지만 한 가지 일을 진득하게 하기 어려웠다. 일에 비해 월급이 적거나 업무량이 지나치게 많아 지치는 경우가 잦았다. 하지만 13년째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지금 그는 행복하다고 말한다. 가르치는 일에서 보람을 느끼고, 여가 시간에 좋아하는 운동을 마음껏 할 수 있고,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있기 때문이란다.

“물론 과제를 안 하거나 수업 준비 없이 들어오는 저학년 학생들을 보면 (가끔은) 교육자로서 좌절감을 느끼죠. 이런 일이 반복되면 열정을 잃을 수도 있죠. 하지만 휴식시간도 없이 알래스카에서 일하거나 생방송 촬영을 했던 시절에 비하면 행복한 고민입니다.” 

산악마라톤 등 어지간한 지역대회는 다 참가 

▲ 결승선에 먼저 도착한 위더스푼 교수(왼쪽)가 친구와 함께 아내를 기다리고 있다. ⓒ 임경호

그는 스트레스를 운동으로 푼다. 아니, 운동이 생활의 일부다. 산악자전거(MTB)와 달리기, 등산, 낚시, 스키 등 종목도 다양하다. 주말이면 제천시 청풍면의 청풍호와 비봉산 등 아름다운 산과 호수를 찾고, 가끔은 자전거 동호회원들과 함께 강원도 등 먼 지역으로도 나간다. 

“운동을 하면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죠. 그래서 늦은 밤까지 걱정에 잠겨 있는 것보다 열심히 운동하는 게 스트레스 해소에 좋아요”

그는 지난 9월 제천에서 열린 ‘제 16회 금수산전국산악마라톤대회’에 참가했다. ‘클라이마톤(Climbathon)’으로도 불리는 산악마라톤은 등산과 마라톤을 합친 것으로 도시 주변의 야산을 달리는 경기다. 이번 대회 때는 비가 와서 땅이 질퍽거리는 바람에 몇몇 참가자들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경기를 마치고 ‘완주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해 경기 때 자신을 훨씬 앞선 선수를 이번에 거의 따라 잡았다는데 자부심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제천 의림지전국마라톤대회’나 ‘제천 박달재산악자전거대회’ 등 제천에서 열리는 경기는 어지간하면 다 참가한다고 말했다.

평소에 가장 즐기는 운동은 산악자전거인데, “점핑 등으로 바위를 뛰어 넘는 게 재미있다”고 할 만큼 모험을 즐기는 편이다. 그의 ‘두 바퀴 인생’은 다섯 살 때 어린이용 오토바이를 갖게 되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대학생 때까지는 레이싱(경주)을 할 정도로 오토바이를 즐겼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운동량이 더 많은 산악자전거를 선택했다. 결혼 전 혼자 시간을 보낼 때 산악자전거는 외로움을 달래주는 좋은 친구가 됐다.

한국인 아내와 단란한 가정...고향 미국이 외국처럼 느껴질 정도

아내 임화영(46)씨와는 11년 전 서울에 있는 캐나다인 친구의 소개로 만나 결혼했다. 아내의 영어실력이 상당해 소통엔 어려움이 없지만 각자 다른 문화에서 자란 탓에 처음엔 서로 불편한 부분도 없지 않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스파게티나 팟타이(태국식 볶음국수) 등 다양한 음식을 선호하는 그와 달리 아내는 한국음식을 고집하는 편. 하지만 여느 부부가 그렇듯 세월과 함께 서로 이해하고 적응하게 됐다. 외동딸(3) 키우는 재미에 푹 빠진 그는 이제 가끔씩 가족을 만나러 다녀오는 미국 워싱턴 주의 리치랜드가 오히려 외국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 가족과 함께 '산악자전거 페스티벌'을 찾은 위더스푼 교수. ⓒ Matthew Witherspoon 제공

“I like it."(좋아요.)

그는 경제적으로 그리 풍족한 것은 아니지만 멋진 풍광을 만끽하며 일과 운동을 즐길 수 있는 제천에서의 삶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다만 가끔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 은퇴를 앞둔 부모님에 대한 걱정, 딸의 미래를 위해 한국과 미국 중 어느 쪽이 나은지 하는 고민들이 마음을 어지럽힌다고 털어 놓았다.

“가장 중요한 건 아이를 잘 키우는 일이죠. 열심히 운동을 하는 것도 훗날 딸이 자랐을 때  같은 운동을 취미로 할 수 있을 만큼 건강을 유지하고 싶어서예요.” 

금쪽같은 딸의 장래를 위해 정착할 곳으로 그가 한국과 미국 중 어디를 최종적으로 선택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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