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전의 비밀 다룬 EBS다큐프라임 3부작
[TV를 보니 : 10.29~11.4]

“선거에서 이기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특히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면 해결되지 못할 문제는 없다.”

1988년 미국 대선. 지지율 고공행진에 취해있던 마이클 듀카키스 민주당 후보가 어쩌다 ‘무능한’ 조지 허버트 부시에게 고꾸라졌을까. 그것은 부시의 선거 참모 리 에트워터가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치열한 ‘네거티브 전략’을 수행했기 때문이었다. ‘제3자를 통한 루머 퍼뜨리기’, ‘가짜 여론조사로 이미지 깎기’, ‘공포 조장하기’ 등의 반칙으로 부시는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정책검증 없이 대통령을 뽑았던 미국 국민은 ‘경제 파탄’이라는 대가를 치러야했고, 부시는 4년 후 재선에 실패했다.  

 

지난달 29일부터 3일간 연속 방송된 교육방송(EBS)의 <다큐프라임> ‘킹메이커’는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내 유권자의 선택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다룬 것이어서 기대를 모았다. 특히 약 3년 전 문화방송(MBC)의 <100분토론>에서 하차한 뒤 TV에서 보기 어려웠던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가 오랜만에 브라운관에 등장하는 것이어서 관심이 더욱 증폭됐다.

감각적인 영상 불구 2,3부로 갈수록 흡인력 떨어져

그러나 제1부 ‘네거티브 전쟁’ 편에 이어 2부와 3부에서 ‘중도파에 대한 분석’과 ‘오바마 캠프의 대선 전략’을 소개한 3부작은 전체적으로 그리 높은 점수를 주기가 어려웠다. 역사적 사례를 재미있게 재구성한 1부는 귀담을 만한 내용에 구성도 좋았지만 2,3부는 소재도 신선하지 않고 구성마저 평면적이었다. 2부에서 중도파가 중간에 있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보여준 실험은 시청자가 이해하기 어려웠다. 제작진도 그걸 우려해서인지 두 번씩이나 실험에 대해 설명하고 손석희 교수의 간추린 해설을 덧붙였지만 역부족이라는 느낌이었다.

 

 ‘당신들의 선거는 석기시대의 것’이라며 최신 선거 전략을 보여준 3부는 ‘마이크로 타겟팅’ ‘일각고래 프로젝트’ 등 새로운 개념들을 들고 나왔으나 크게 흥미롭진 않았다. 선거에 동원되었던 수많은 전략과 개념 가운데 하필 ‘중도’와 ‘마이크로 타겟팅’ 같은 밋밋한 소재를 선택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과거 국내외 선거에서 승패를 가른 크고 작은 비밀들, 예컨대 고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승리에 동원된 ‘경영 컨설팅 기법’이나 ‘언어를 통한 지지율 상승 전략’ 등 거론할 만한 사례가 꽤 많은데 말이다. 킹메이커 3부작은 선거전의 본질과 핵심에 충분히 다가가진 못했다는 평가를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해 추상적인 내용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 EBS

그에 비해 영상과 편집은 눈길을 끌 만 했다. 추상적인 내용을 효과적으로 시각화하고 컴퓨터그래픽(CG)을 적절히 활용한 점이 돋보였다. 딱딱하고 낯선 내용들을 이해하기 쉽게 감각적인 영상으로 전달했다. 자료화면과 전문가 인터뷰 등도 알맞게 배치돼 내용 이해를 도왔다. 그러나 단조로운 구성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따분해 지는 걸 피할 수 없었다. 리듬감 있는 구성이 아쉬웠다. 60분 동안 화면을 지켜봐야 하는 시청자를 위해 강약을 조절하는 지혜가 필요했다.

역시 손석희, 그러나 새로운 모습 끌어내지 못해

“이 시대에 가장 존경받고 신뢰받는 언론인인 손석희 교수님을 오랜만에 TV로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nadakmy)


킹메이커의 시청자 게시판에는 손 교수의 등장에 반갑고 설렜다는 의견들이 잇달아 올라왔다. 시청자들은 <100분토론> 등에서 차분하고 카리스마 있는 진행을 보여주었던 그가 어떤 스타일로 킹메이커를 끌어갈지 기대를 갖고 TV앞에 모여 앉았다. 이런 시청자 반응은 한국 방송계에서 ‘손석희’가 갖는 스타성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고, 프로그램 흥행에 스타 방송인이 필요함을 새삼 절감케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손 교수는 킹메이커에서 내용 전달자로서 훌륭하게 소임을 다했다. 전체적인 밑그림을 그려주고 내용을 요약하고 정리해주었는데, 차분한 말투와 정확한 발음 덕에 이해하기가 수월했다. 정치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을 맡기기에 더 적합한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이제까지 봐 왔던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점은 조금 아쉬웠다. 다른 방송사 프로그램에 처음 출연하는 만큼 그에 따른 변신이 어느 정도는 필요했던 게 아닐까? 

 

프로그램의 형식과 내용에 맞춰 캐릭터를 분석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단지 연기자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연출자와 진행자가 좀 더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면 ‘손석희’라는 거물을 출연시킨 효과를 제대로 얻지 않았을까. 킹메이커는 대선이 비방과 비난의 난타전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하면서 ‘네거티브 보다 참여와 소통을 중시하고 진정성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잘 전달했지만 손석희라는 스타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연출과 구성 등엔 아쉬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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