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기자포럼] ⑦ 글로벌 식량위기, 애그플레이션

지구촌에 닥친 ‘춘궁기’

예전에는 춘궁기에 굶는 사람이 있으면 마을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함께 어려움을 넘겼다. 그런데 ‘지구촌’(global village)이라며 지구 전체를 한 동네처럼 여기는 말까지 생겨났지만 10억이 넘는 인구가 영양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통계가 말해주는 지구촌의 실상이다.

엄청나게 자본이 축적되고 농업기술과 유통산업이 획기적으로 발전했는데도 영양부족 인구가 이렇게 많은 이유는 뭘까? 한 가지는 ‘지구적 분업’ 때문이다. 영양부족 인구 대부분은 아시아태평양(64%)과 아프리카(26%)에 산다. 이들 지역에서는 당장 먹을 곡식이 부족하지만, 농토 대부분을 커피나 사탕수수, 카카오 등 선진국에서 주로 소비하는 기호식품 생산에 쓰고 있다.

1일 서울성모병원에서 열린 제7회 ‘한국식품기자포럼’(회장 박태균)에는 식품 관련 기자, 교수, 의사, 업계종사자 등 50여명이 참석해 강연을 듣고 토론을 했다.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일식 요리사로 유명한 이병환 대표(일식점 ‘에도긴’)의 일본음식 강연을 시작으로 하림그룹 김홍국 회장의 한국 식품산업 전반에 대한 발제를 들었다. 또 한국독성학회 이병무 회장(성균관대 약학과 교수)은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벤조피렌에 대해, 농림수산식품부 나승렬 소비안전정책관은 소비안전정책에 대해 설명했다.

▲ 한국식량안보재단 이철호 이사장이 세계적 식량위기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 김윤정

세계 기아인구 증가 초래한 WTO체제

포럼에서 한국식량안보재단 이철호 이사장(고려대 식품공학부 명예교수)은 글로벌 식량위기가 가속화한 요인 중 하나가 세계화라고 지목했다. ‘비교우위경제이론’을 근거로 세계가 분업을 하자며 국제통화기금(IMF)와 세계은행(World Bank)이 식량난에 시달리는 아프리카나 남미지역에 곡물 대신 부가가치가 높은 카카오나 커피를 재배할 것을 조언한 것도 한 원인이 됐다. 이들 나라는 국제기구들의 조언을 따랐지만 2008년 국제 곡물가격이 두세 배 급등하면서 식량난이 더욱 심해졌다.

한 해에 지구에서 생산되는 식량은 약 25억톤. 70억 인구로 나누면 1인당 하루에 1kg을 먹을 수 있다. 쌀 1kg으로 밥 열 공기쯤이 나오니, 이미 세계 식량생산량은 전세계인이 나눠먹고도 엄청나게 남아야 할 분량이다. 하지만 많은 국가에서 기아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 이사장은 “세계무역기구(WTO) 경제체제 아래 무역자유화 과정에서 가난한 나라의 농토가 부유한 나라 국민의 무절제한 식욕을 채우는 데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미국 호주 등 대규모 영농을 하는 국가에서 생산된 곡물들이 싼 가격으로 세계 각국으로 유입되며 약소국에서는 농업인프라 자체가 붕괴되는 경우가 속출했다. 이들 나라는 세계 곡물 값이 요동칠 때마다 기아의 공포에 맞닥뜨려야 한다. 유엔이 발표한 ‘세계 영양실조 인구분포’를 보면 세계무역기구 체제가 시작된 1995년 이후 오히려 영양부족 인구가 급증했음을 알 수 있다.

▲ 세계 영양부족 인구변화 그래프(단위 백만명). 영양부족 인구가 1995년부터 꾸준히 상승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FAO

100g의 단백질을 5g으로 축소하는 축산업

이철호 이사장은 또 다른 원인으로 동물성식품 증가를 지적했다. 그는 육류섭취가 굉장히 비효율적이라고 말한다. 1kg의 소고기를 생산하려면 6~8kg의 곡물을 가축에게 먹여야하는데, 운동과 배설하는 데 써버리는 영양을 제외하면 소가 100g의 단백질을 섭취하고 고기로 축적하는 단백질은 채 5g이 안 된다. 즉 쇠고기 1인분으로 식사를 한다면 20인분의 식량을 한 번에 먹어치우게 되는 셈이다.

세계인구의 1/3을 차지하는 중국(12억)과 인도(10억)의 인구가 동물성 식품 섭취를 시작한 것도 세계 식량난과 깊은 관계가 있다. 만약 이들 나라가 전체 식품섭취량의 20%를 동물성 식품으로 섭취하는 한국인 수준으로 육류 섭취를 한다면 세계에는 인간이 먹을 곡물이 남아나질 않게 된다.

▲ 쇠고기로 한 끼 식사를 하면 20인분 식량을 한 번에 먹는 것과 같다. ⓒ 아카리아 트위터

이 밖에도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로 식량생산이 감소하고, 유가상승으로 바이오 연료 생산에 곡물이 많이 이용되는 등 세계 식량위기를 부추기는 요인들이 여럿 있다.

한국도 식량위기 직면 우려

먹을 것이 넘치는 한국에서 기아나 식량위기는 아프리카나 남미 등지에나 있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도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나라는 칠팔십년대에 경제발전을 이유로 농업보다는 중화학공업에 치중해왔다. 사실상 농업을 포기한 셈이다.

우리나라 식량공급 구조를 보면 전체 곡물수요의 7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식량에너지로 볼 때 전체 수요의 반 이상을 외국에 의존하고 있다. 이처럼 낮은 식량자립도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수준으로, 한국은 일본,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자급도가 낮은 나라다.

최근 미국이 50년 만의 가뭄으로 곡물생산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에 대해 CNN은 지난 6월에서 8월 사이 옥수수 값이 50%, 콩 값이 20% 상승했다고 밝혔다. 이를 바탕으로 작성된 골드만삭스의 보고서는 미국의 가뭄으로 내년 초 한국의 인플레이션이 0.2-0.4% 정도 증가할 것으로 예견한다. 미국의 가뭄이 우리의 밥상은 물론 한국 경제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낮은 식량자립도가 지렛대 효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1994년까지 진행된 우루과이협상 때 유럽과 일본은 앞으로 전개될 농산물 무역자유화에 대비하여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데 힘써왔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가 출범했을 때, 영국 독일 등 곡물수입국들은 식량자급률 100%를 달성했으며, 일본은 당시 자급률이었던 30%를 지금까지 필사적으로 지켜내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자급률은 당시 50%대에서 29.1%대로 대책 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국가도 국민도 식량안보에 대해 제대로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이에 대비하는 정책이나 법안이 등장할 리도 만무하다. 만약 세계시장에서 원하는 식량을 마음대로 수입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식량위기는 우리에게 절박한 문제가 된다. 농업문제를 단순히 경제논리로 따져 등한시할 것이 아니라, 식량안보 측면에서 접근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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