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집 재밌는 곳] 제천 약초밥 전문점 대보명가

▲ 위 아래 각각 남자밥, 여자밥 ⓒ 김상윤

“여자분 세 분이세요?”

“아뇨, 네 명이에요. 남자 한 명 더 올 거예요.”

“그러면 여자 세 분에, 남자 한 분, 맞나요?”

일행의 남녀 숫자를 꼼꼼히 따진다. 도대체 왜? 충북 제천시 신월동의 약초밥 전문점 ‘대보명가’에 처음 왔다면 누구나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잠시 후 한 상 그득한 반찬과 함께 뜨끈뜨끈한 돌솥들이 들어오면 궁금증이 풀린다. 여자 손님 앞에 놓인 돌솥에는 명절에 먹는 약밥 색깔의 잡곡밥이 은은한 한약 향을 풍기고, 남자 손님 앞에는 허연 잡곡밥이 모락모락 김을 올린다. ‘여자 밥’은 혈액순환과 보혈작용에 좋은 당귀 천궁 등 8가지 재료를 달인 물을, ‘남자 밥’엔 기력 보강을 위해 인삼, 백출 등 8가지 재료가 들어간 물을 썼다고 한다.

약초의 고장 제천에서도 알아주는 한방 요리  
   
전국 약초 생산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제천은 ‘한방바이오엑스포’를 열 정도로 ‘약초의 고장’으로 명성이 높고, ‘한방음식’ ‘약선요리’ 등을 내세운 식당들이 유독 많다. 그 중에서도 대보명가는 국내 처음으로 남자와 여자의 체질에 따라 다른 한방재료로 지은 돌솥밥을 개발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밥뿐 아니라 각종 요리와 반찬류도 ‘몸에 좋은’ 재료와 조리법을 자랑한다. 대표 메뉴인 ‘약초밥상’의 경우 산뽕잎, 방풍, 참나물, 산야초 장아찌, 키다리국화로 만든 꽃나물 등 10여 가지 이색 나물 반찬과 숯불에 구운 제육볶음, 생선 조림 등으로 구성된다. 식전 음식으로 나오는 마 튀김과 백김치, 떡잡채 등도 모두 천연 재료와 양념을 쓴다고 한다. 가격은 1인당 1만원. 능이, 표고, 송이버섯 등과 각종 산야초, 그리고 한우 고기를 싸서 당귀, 황기 등 16가지 약재를 달인 육수와 곁들여 먹는 ‘제천약초쟁반’도 이 집의 인기 메뉴다. 가격은 4인 기준 5만5천원.

▲ 약초돌솥밥, 숯불고추장구이, 산야초장아찌, 생선 조림 등과 각종 나물반찬으로 이루어진 약초밥상 ⓒ 김상윤

가지와 아삭이 고추, 열무, 배추 등 대부분의 식재료는 식당 옆 텃밭에서 직접 재배한다. 싱싱한 상추와 직접 담근 된장으로 만든 찌개를 받은 손님들은 ‘시골 외갓집 밥상’처럼 푸근하다는 반응이다. 음식은 맵거나 짠 대신, 하나같이 고소하고 담백하다. 배추 샐러드는 콩가루를 넣은 고추장 소스가 버냉초 등 나물과 어우러져 아삭한 맛을 더해주고, 꽃나물과 방풍을 씹으면 청량한 향이 오래 입안에 감돈다.

성남에서 온 문선란(30)씨는 “몸에 좋은 음식은 맛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 음식은 맛있어서 반찬을 여러 번 더 달래서 먹었다”고 말했다. 맛뿐 아니라 음식의 모양에도 욕심을 낸다. 갖가지 약초의 꽃을 샐러드 고명으로 활용해 아기자기하고 예쁜 밥상을 만들고 있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꽃나물, 가지무침, 김 장아찌, 참나물, 떡잡채, 마튀김 ⓒ 김상윤

 

 

박근혜 전 대표도 산삼주 곁들여 평소 2배나 식사

'대보명가'를 찾는 사람들은 주로 30대 이상의 기혼자들로, 건강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 시장, 도지사 등 유력 인사들도 이 곳을 자주 찾는다고 한다. 지난 2008년 11월에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다녀갔다. 주인 권희상씨(42)는 “수행원 말이 평소보다 두 배 가까운 양의 식사를 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서비스로 나간 ‘산삼주’도 세 잔이나 마셨다고 한다.

▲ 대보명가 권희상 대표

대보명가는 영화에도 등장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제천에 사는 영화제 프로그래머 공현희(엄지원 役)가 “여기서 제일 나은 집”이라며 주인공 구경남(김태우 役)과 일행을 대보명가로 데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사 측이 제천시청에 ‘독특한 음식점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 연결이 됐다고 한다.

권사장은 제천 출신으로 서울에서 증권회사에 다녔다. 하지만 ‘어딘가에 갇힌 느낌’이 싫어 지난 2006년 15년간의 직장생활을 접고 고향에 내려와 아는 형님, 친누나와 함께 가게를 냈다.

동업자 안창호씨(52)는 원래 음식사진을 찍던 작가였다. 그런데 지금은 직접 음식점 일을 하면서 세명대학교 한방식품과학과 2학년에 다니고 있다. 한방음식을 체계적으로 연구해서 제대로 발전시키겠다는 의욕이 충만해, 늦은 나이에 자식 같은 학생들과 어울려 즐겁게 공부한다.  

쉰 넘은 나이에 대학서 한방식품 공부, 서울에도 직영점 내고파

대보명가의 남자 밥, 여자 밥이 인기를 끌자 이를 흉내 내는 한정식집도 제천에 더러 생겼다고 한다. 하지만 권사장은 ‘여기 음식을 먹고 혈당 수치가 내려갔다’는 손님 등 단골이 점점 늘어 느긋하단다.

안양에서 왔다는 이정환(57)씨는 “친구가 제천에 오면 의림지 구경하고 대보명가에 밥 먹으러 가는 게 코스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주말 손님 중 30%정도는 제천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온다. 권사장은 “여건이 되면 서울에도 직영점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 권사장에게도 고민이 있다. 좋은 한약 재료를 구하는 게 중요한데, 현실적으로 100% 국산을 쓰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감초의 경우 국산은 한 근(600g)에 1만5천원인데, 단가를 맞추려면 3천5백원 하는 우크라이나산을 쓸 수밖에 없다. 아직까진 한방 재료의 70~80%를 국산으로 쓰고 있지만, 믿고 쓸 수 있는 국산 약초를 싼 값에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져 안타깝다고 한다. 우리 땅에서 나는 무공해 약초로 좋은 음식을 마음껏 만들 수 있도록, 관련 농업 분야가 잘 육성됐으면 하는 바람이 그의 표정에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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