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양적완화, 일자리창출 대신 물가불안·환율전쟁 우려
[두런두런경제] 김광진 제정임의 경제카페

김광진(KBS2라디오 ‘김광진의 경제포커스’ 진행자): 미국 중앙은행이 최근 3차 양적완화, 즉 달러를 대규모로 풀어 주택저당채권을 사들이는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일부 경제전문가들은 지난해부터 3차 양적완화를 예상했는데요, 이 같은 조치가 나온 배경은 아무래도 1,2차 양적완화에도 불구하고 미국경제가 제대로 회복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하겠죠?

제정임(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맞습니다.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이미 2차례의 대규모 달러풀기, 즉 양적완화를 단행했는데요, 경제를 살리는 효과는 미미했습니다. 제일 큰 문제가 일자리입니다. 금융위기 직후 10%대까지 올라갔던 실업률이 아직 8%대로 낮아지는 수준에 그쳐 오바마 정부를 속 타게 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위기의 원인 중 하나였던 주택시장의 침체가 여전하다는 게 미국 경제의 고민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시중의 주택저당채권을 월 400억 달러씩, 우리 돈으로 44조원이 넘는 분량을 무기한으로 사들임으로써 주택경기를 살리고, 일자리도 늘린다는 카드를 내민 것입니다. 이렇게 돈을 뿌리면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가격이 올라가면서 ‘부의 효과(wealth effect)’로 소비심리가 살아나고, 투자가 늘면서 고용도 증가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죠.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즉 연준은 사실상 제로(0)나 마찬가지인 초저금리 정책의 적용기간을 연장하는 등 다른 조치도 병행하겠다고 발표해 ‘돈 풀어 경제살리기’를 본격화했습니다.

대규모 달러 풀기 조치…고용 창출 미미, 서민 생활비 부담 강화

김: 그런데 이번 3차 양적완화조치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하는 전문가도 꽤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얘기인가요.

제: 미국 경제전문가 중 늘 비관적인 얘기를 한다고 해서 ‘닥터 둠(Dr. Doom)’이라는 별명을 얻은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와 투자가 마크 파버 등이 대표적으로 비관론을 제기하고 있죠. 제프리 리커 미국 리치먼드 연방준비은행장 등 금융당국자들 사이에서도 비관론이 있고요. 이들은 이번 양적완화 조치가 고용개선에 미치는 효과는 미미하고 인플레이션, 즉 물가상승만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고 걱정합니다. 지난 1,2차 양적완화 때도 달러를 찍어 풀었지만 전 세계적으로 유동성 과잉을 낳아 인플레이션을 악화시켰을 뿐 진정한 경기회복은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죠. 이들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진단합니다. 이미 장기 금리가 상당히 낮아서 소비를 늘리는 효과를 얻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특히 유럽의 재정위기 국가들을 구제하기 위해 유럽중앙은행까지 스페인 등의 채권을 무제한으로 사주기로 한 상황이어서, 급격히 풀린 돈으로 각국의 금융시장에 버블(거품)이 생기고, 자국의 통화가치를 지키기 위한 환율전쟁 등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파버는 “이번 조치로 자산 가격이 상승하더라도 이는 부자들의 자산만 늘려줄 뿐 일반 서민에게 돌아가는 것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오히려 서민은 인플레이션 압박으로 생활비 부담만 늘어날 것이라는 얘깁니다. 비판적인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미국, 유럽 등 각국이 만성적인 소득불균형의 개선, 금융규제강화 등의 근본적 개혁조치를 하지 않고 돈만 푸는 것이 중병이 든 환자를 수술하지 않고 모르핀(마약) 주사만 계속 놔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김: 이와 관련해서 현재 국제금융시장 동향은 어떻습니까?

제: 달러를 대규모로 풀 예정이니 달러가격이 하락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에 따라 금, 석유, 원자재 등 실물가격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금값은 지난 몇 년 동안에도 각국 중앙은행들이 달러가치 하락에 대비해 보유량을 계속 늘리면서 상승세를 보였는데, 최근 양적완화조치 발표 후 상승세가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금 선물가격은 지난해 9월 1온스 당 1900달러까지 올랐다가 올해 5월엔 잠시 1500달러 선으로 내려갔는데, 3차 양적완화 기대감이 높아지던 8월 이후 1800달러대까지 상승했고 이제 2000달러 돌파는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석유가격도 상승세여서 곧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요. 각국의 작황부진으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곡물가격도 앞으로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입니다. 다만 양적완화 소식에 따라 각국의 증시는 ‘돈이 들어올 것’이라는 기대로 큰 폭의 상승세를 보였습니다.  
 

김: 비관론자들이 예상하는 양적완화의 부작용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어느 정도나 될까요.

제: 벌써 인플레이션 기대치가 훌쩍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미국의 기대인플레이션을 측정하는 10년물 BEI(break even inflation rate)가 지난 17일 장중 한 때 2.73%까지 올라갔는데요, 이는 2006년 5월 이후 최고치입니다. 그만큼 인플레이션 기대감이 높다는 의미죠. 또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현재 국제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금가격, 석유가격 등 현물가격 상승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지난 1,2차 양적완화 때도 달러약세와 금값, 원자재 가격의 상승, 각국의 인플레이션 등 부작용이 큰 폭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무기한으로 큰돈을 풀겠다는 이번 조치에도 같은 부작용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주요 국가들의 돈 찍어내기… 2차 ‘환율전쟁’ 가능성 커져

김: 그렇게 된다면 세계 경제에는 어떤 파장이 닥칠까요.

제: 미 연준이 달러를 풀면 투자수익이 높은 신흥국가로 달러가 대거 흘러가 이들 국가의 통화가치가 상승합니다. 그러면 이들 국가의 수출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지난 번 2차 양적완화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한 번 ‘환율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브라질 등 수출위주 국가들을 중심으로 수출경쟁력을 지키기 위한 환율방어 경쟁이 표면화할 수 있는 것이죠. 아까 거론했던 마크 파버는 “미국 뿐 아니라 유럽과 중국의 중앙은행들도 자국 통화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돈을 찍어내면서 세계 경제가 물가상승, 환율전쟁 등 새로운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김: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요.

제: 우리 입장에서는 가장 걱정스러운 것이 달러가 금융시장에 밀물처럼 들어왔다 썰물처럼 빠지게 되는 현상입니다. 우리나라는 금융시장 규모에 비해 대외개방도가 너무 높아요. 당장은 미국과 유럽에서 풀린 돈이 증시에 투자자금으로 들어와 주가가 올라가겠지만 현지 사정이 악화돼 갑자기 빠져나가면 금융시장, 나아가 경제전체가 흔들릴 위험성이 높습니다. 과거에 이미 경험한 일이죠. 따라서 우리는 무엇보다 투기성 외화자금의 급격한 유출입으로  우리 금융시장이 교란되고 경제가 충격에 빠지는 사태를 막기 위해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게 시급합니다. 예를 들면 브라질이 금융거래세를 도입해 외화유출입을 조절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단기투기성 외환거래에 대해 ‘토빈세’ 개념의 세금을 물리는 안전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안 그래도 민생을 어렵게 하는 물가불안이 더 심해지지 않도록 농산물, 원자재 등의 수급관리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조치를 미리미리 세밀하게 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 이 기사는 KBS2라디오 <김광진의 경제포커스>와 제휴로 작성했습니다. 방송 내용은 9월 19일 <김광진의 경제포커스> 다시 듣기를 통해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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