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든 책]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⑤ 4장: 사실 확인의 저널리즘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① 서문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② 1장: 저널리즘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③ 2장: 진실; 첫 번째 그리고 가장 혼란스러운 원칙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④ 3장: 기자는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저널리즘의 본질은 사실 확인의 규율이다.’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저자들이 제시한 저널리즘의 세 번째 원칙이다. 이를 다룬 4장 ‘사실 확인의 규율’의 분량은 이 책의 여러 챕터 가운데 가장 많다. 저자들은 일관된 사실 확인의 규율만이 저널리즘의 전문성을 높일 수 있다고 역설한다.

저널리즘의 객관성은 어떻게 달성될 수 있는가

저널리즘의 본질이 사실 확인이라면, 그 과정이 어떻게 이뤄지느냐에 따라 저널리즘의 품질이 좌우될 것이다. 고품질의 저널리즘은 ‘객관성’을 담보해야 한다. 기자가 자신의 편견에 치우치지 않고, 사실을 정확하게 쓰며 올바른 진실을 전해야 한다. 그러나 적지 않은 이들은 저널리즘의 객관성은 달성될 수 없는 허구라고 비판해왔다. “아무도 한순간도 객관적일 수 없다”는 점에서 기자가 객관적 보도를 구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댄 길모어가 2004년에 출판한 '우리가 미디어다'(We the media)는 인터넷의 발달로 풀뿌리 저널리즘이 생긴 현상에 관한 책이다. 댄 길모어는 저널리즘에서 객관성을 부정한 대표적인 칼럼니스트다. '우리가 미디어다' 책 표지 갈무리.
댄 길모어가 2004년에 출판한 '우리가 미디어다'(We the media)는 인터넷의 발달로 풀뿌리 저널리즘이 생긴 현상에 관한 책이다. 댄 길모어는 저널리즘에서 객관성을 부정한 대표적인 칼럼니스트다. '우리가 미디어다' 책 표지 갈무리.

특히 뉴미디어 환경에서 객관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대표적인 것으로 미국의 ‘우리 미디어 문화’(we-media culture)가 있다. ‘우리 미디어 문화’는 누구나, 어디서든 참여할 수 있는 인터넷 공론장을 바탕으로 각자의 의견이 모여 진실을 만들어낸다는 흐름이다.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저자들은 이러한 ‘우리 미디어 문화’의 환상을 짚었다. 자유로운 인터넷 공론장에 실제로는 “공중을 설득하거나 여론 방향을 조작하려는 강력한 기관들이 개입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객관적인 저널리즘은 존재할 수 없는가. 저자들은 일관된 방법과 실천으로써 객관적인 저널리즘이 달성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저널리즘에 과학적 방법을 도입하자는 주장의 뿌리는 19세기 미국의 언론인이자 언론학자인 월터 리프먼에서 출발한다. 월터 리프먼은 “(기자들이) 과학의 정신을 학습하는 것”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과학은 여러 차례 검증을 통해 진실을 발견한다. 그 방법과 절차에 대한 과학계의 윤리와 규율은 오랜 시간에 걸쳐 다듬어졌다. 저널리즘의 객관성이 흔들리고 있는 것은 과학 분야와 달리 ‘사실 확인을 위한 저널리즘적 규율’이 허술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취재·보도 방법의 정교화를 통해 기자들은 전문화될 수 있다. 전문적 직업은 훈련과 교육을 통해 공유하는 원칙과 윤리를 갖고 있다. 퓰리처가 콜럼비아 저널리즘 스쿨을 세워 전문화된 취재·보도 방법을 훈련하려 했던 이유도, 월터 리프먼이 ‘방법의 통일성’을 강조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경험적 증거를 교차 검증하는 취재 방법을 통해, 저널리즘은 객관성을 얻을 수 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왜 객관성을 추구해야 하는가

인터넷에선 뉴스가 24시간 생산된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24년 2월 기준 등록된 한국의 인터넷 신문사는 총 1만 1777개다. 10년 사이 약 두 배 가까이 폭증했다. 언론사가 많아졌으니 언론 산업이 발전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오히려 언론사의 폭증은 저품질의 정보 생산으로 이어졌다. 한 언론사가 오보를 내면, 다른 언론사가 인용하며 다시 오보를 낸다. 현장 취재 없이 보도를 남발하기 쉬운 인터넷 환경에선 오보가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사실을 관점에 끼워 맞추는 보도를 하기도 한다. 통일된 저널리즘의 사실 확인 규율이 없어 발생하는 문제다.

이런 환경에서 한 매체만 소비하는 독자도 사라졌다. 독자들이 한 언론만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소비하는 환경이 아니라면, 언론사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저자들은 ‘정직한 보도’가 좋은 언론의 핵심 요소라고 강조한다. 언론사가 “나를 믿어 주세요”(Trust me)라고 독자에게 요구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나에게 보여주세요”(Show me)라고 말하는 독자의 기대에 언론이 부응해야 하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에 더 중요해진 사실 확인의 원칙

저자들은 정직하게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사실 확인과 관련한 다섯 개의 세부 원칙도 제시했다. 어떤 사람과 상황이든 아래의 세부 원칙 또는 절차를 지킨다면 저널리즘의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절대로 애초에 없었던 것을 추가하지 말라’, ‘절대로 수용자를 속이지 말라’, ‘당신의 방법과 동기에 대해 최대한 투명하게 공개하라’, ‘당신 스스로가 한 취재에 의지하라’, ‘겸허하게 접근하라’ 등이다.

저자들은 객관적인 사실 확인의 원칙을 네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시민들도 이 원칙을 준수하는 기사를 기대한다는 게 저자들의 생각이다. 그래픽 이선재.
저자들은 객관적인 사실 확인의 원칙을 네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시민들도 이 원칙을 준수하는 기사를 기대한다는 게 저자들의 생각이다. 그래픽 이선재.

이들 원칙에서 특별히 중요한 것은 투명성과 겸허함이다.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사실에 뒷받침되는 근거를 찾아, 수용자를 위해 그 맥락을 설명하는 것은 가장 기초적인 사실 취재의 방법이다. 다만, 그 과정과 방법을 최대한 수용자에게 설명하는 것이 투명성이고, 확인한 사실에 대해서도 오류와 한계를 인정하는 태도가 겸허함이다.

와글와글 토론합시다

이은별 기자 객관적 방법을 실제로 이용하는 법을 안내하는 대목을 보면, ‘진실의 샌드위치’라는 내용이 있다. ‘진실-거짓-진실’의 구조로 기사를 작성해 거짓 주장에 대처하라고 저자들이 제시했는데, 거짓을 진실로 반박하라는 것인가?

조승연 기자 그 대목은 상당히 테크니컬한 제안인 것 같다. 사람이 어떤 기사를 읽으면 첫 부분에 집중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최대한 진실에 가까운 사실을 보여주고, 그다음에 거짓을 보여주고, 마지막으로 그것이 거짓임을 드러내는 진실을 보여줘야, 사실관계를 더 잘 전달할 수 있다는 기술을 알려준 것 같다.

전예나 기자 책 168쪽에 ‘공정성은 다른 말로 하면 방법이 아니라 목적이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정확히 무슨 뜻인지 궁금하다.

이선재 기자 공정성이라는 것 자체가 주관적이기 때문에 방법으로 사용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조승연 기자 도덕적 명료성(moral clarity)이라는 개념도 잘 이해가 안 갔다. <저널리즘의 원칙> 저자들은 이 도덕적 명료성이 극단으로 가면 나치와 같은 집단의 근건 논리로 쓰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도덕적 명료성이란 개념 자체가 궁금하다.

콕 찍어 곱씹어 봅시다

안수찬 교수 우선, 도덕적 명료성에 대해 설명하겠다. 도덕(moral)과 윤리(ethic)는 다르다. 도덕과 윤리 모두 일종의 기준이자 원칙이지만, 그 쓰임새는 조금 다르다. 윤리는 구체적 상황에 따라 최종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수용한다. 반면 도덕은 절대적 원칙에 가깝다.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윤리가 아니라 도덕이다.

그래서 저자들은 저널리즘에 도덕을 개입하려는 시도를 비판하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무엇인가를 추구하면 결국 이념과 이데올로기에 가닿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 역사를 보면, 나치 등 극단주의자들이 중시했던 것이 도덕의 문제였다. 이 책의 저자들은 어떤 것에도 흔들림 없는 원칙은 위험하다고 설명한다.

공정성에 대해서도 설명하겠다. 원래 이 개념도 객관성만큼이나 상당히 난해하다. 저자들은 객관성보다 공정성이 더 모호한 원칙이라고 썼다. 객관성은 과학의 방법이지만, 공정성은 과학의 방법에 해당하는 원칙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공정성 개념에는 ‘정의’ 관념이 포함되는데, 이를 저널리즘의 방법에 끌어들이면, 앞서 설명한 도덕과 마찬가지로, 주관적이고 극단적인 편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저자들은 우려한 것 같다.

이번에 읽은 4장은 취재 방법론에 대한 설명이다. 우선, 정보 원천을 직접 취재하되, 이를 교차확인하여 검증하고, 마지막 단계에서는 취재 과정을 드러내는 정직성과 투명성을 기사에 담고, 그 기사의 내용이 진실의 총체 가운데 일부를 담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겸손하고 겸허하게 보도하라는 것이다.

살짝 예습합시다

다음 기사에서는 저널리즘의 네 번째 의무인 기자의 독립성을 다룬다. 어떻게 기자들이 정파성과 상업성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며 유사 저널리즘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저널리즘 책을 읽는 이들의 모임(이하 저책이책)’은 세명대 저널리즘 대학원생들이 참여하는 독서 동아리다. 저널리스트가 쓴 책, 저널리즘에 관한 책 등을 다양하게 읽는다. 그동안 매달 한 권을 함께 읽어 왔는데, 2023년 가을에는 평소와 다른 공부를 했다. 2023년 7월부터 12월까지 7차례에 걸쳐, <저널리즘 기본원칙> 개정 4판을 강독했다. 회원들은 매달 한 번 모여, 2~3개 장을 발제하고 토론했다. 각 장이 마무리될 때마다 동아리를 지도하는 안수찬 교수가 보완 설명했다.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이 쓴 이 책은 2001년 초판 발행 이후, 2007년 2판, 2014년 3판, 2021년 4판을 거치면서 줄곧 보완됐다. 책을 옮긴 이재경 전 이화여대 교수는 ‘미국 언론계에서 100여 년에 걸쳐 실천을 통해 만들어진 저널리즘의 원칙을 정리했다’고 이 책을 소개했다. 함께 공부하자는 마음으로 그 내용을 <단비뉴스> 독자에게 전한다. 각 장의 핵심 내용을 요약하고, 토론과 보완 설명 가운데 중요한 대목을 발췌하여 소개한다. 서문을 포함해 본문 11장을 모두 12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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