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토크] 획일적 교육에 경종 울리는 인도영화 <지상의 별처럼>

한 아이가 있다. 늘 교실 뒤 구석진 자리에 앉아 칠판 대신 창밖을 멍하니 응시한다. 수학 시험지를 받아들고는 자기만의 ‘안드로메다’ 우주 속을 헤매다 겨우 한 문제, 그것도 터무니없는 답을 적어내곤 승리의 브이(V)를 그린다. 국어시간에는 더 가관이다. 채 한 문장을 읽어내지 못하고 “글이 춤을 춘다”며 선생님에게 '기권'을 선언한다. 어떤 수업에도 집중하지 못한 탓에 전 과목은 줄줄이 낙제, 초등학교 3학년 과정을 2년째 유급중이다. 친구들에게는 멍청이, 학교 선생님과 주변 어른들에게는 문제아 취급을 받는다.

집에 오면 아이는 달라진다. 도랑에 머리를 박고 물고기의 움직임을 뚫어져라 관찰한다. 두 마리 강아지들과 천진하게, 행복하게 뛰논다. 화장실에 쭈그리고 앉아 몇 시간이고 생각에 잠긴다. 눈을 감으면 상상의 세계가 펼쳐지고, 이내 온 집안의 벽과 바닥은 아이의 도화지가 된다. 소년은 예리한 관찰력과 풍부한 상상력으로 비범한 ‘작품’을 그려낸다. 하지만 아무도 그걸 알아보지 못한다.   

▲공상에 잠긴 이샨. ⓒ 화면캡쳐

문제아와 영재 사이, 간격은 무엇일까

지난 6일 국내 개봉한 인도영화 <지상의 별처럼>에 나오는 여덟 살 소년 이샨 이와스티(다쉴 사페리 분)의 이야기다. 이샨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도록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 그러니 다른 과목들도 잘 할 리 없다. 어른들은 이샨의 학습부진이 ‘도통 집중하지 않는 게으름 탓’이라고 다그칠 뿐 아이에게 진짜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아보려 하지 않는다. 전교 1등을 도맡아 하는 영특한 형과 비교되면서 이샨은 딱한 ‘부진아’로 손가락질을 당할 뿐이다.

▲아버지한테 혼나는 이샨. ⓒ 화면캡쳐

공부 못하고 반항을 일삼는 이샨은 ‘어떤 학생도 길들이는’ 기숙학교로 보내진다. 이전 학교에서보다 더 혼나고 구박받는 일상 속에서 이샨은 눈물도 말라 버린 절망의 하루하루를 보낸다. 특유의 천진함이나 반항심도 이젠 찾아볼 수 없다. 물고기와 새의 움직임을 쫓던 이샨의 반짝이던 눈동자는 이제 맥없이 텅 빈 허공을 헤맬 뿐이다. 바보, 멍청이, 저능아 등 이샨에 대한 놀림과 손가락질은 더 심해졌다. 

그런 이샨에게 어느 날 한 줄기 빛이 나타났다. 장애인학교 미술교사 니쿰브(아미르 칸 분)가 기숙학교에 부임한 것이다. 니쿰브는 이샨이 문제아가 아니라 비범한 재능을 가진 영재임을 알아본다. 난독증 때문에 읽고 쓰기에 어려움을 겪지만, 특별한 예술적 재능을 가진 아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니쿰브는 이샨에게 ‘너는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며 빛나는 태양’이라고 말해준다. 주변의 냉대에 움츠리고 꺾였던 어린 새의 날개가 조금씩 펴지기 시작한다.

이샨은 니쿰브 선생의 가르침을 통해 천천히, 조금씩 치유의 과정을 밟는다. ‘아이들의 능력과 배우는 속도는 다 다르다’는 게 니쿰브의 신념이다. 아이의 난독증을 고치기 위해 흙으로 글자 형태를 만들고 만지며 ‘오감교육’을 해나간다. 책만 펼쳤다 하면 글자들이 춤을 추는 것처럼 느꼈던 이샨이 더듬더듬, 그러나 분명하게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나가는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든다. 니쿰브는 학교 측을 설득해 사생대회를 연다. 거기서 이샨은 그림 솜씨를 인정받고 전교생 앞에서 박수를 받는다. 구박만 받던 ‘미운 오리새끼’가 ‘백조’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니쿰브 선생과 함께, 그림활동을 통한 난독증을 치료중인 이샨 . ⓒ 화면캡쳐

니쿰브 스타일, 한국 교육계에도 절실하다
 
지난 2007년 제작된 이 영화는 국내에서도 인기를 모았던 <세 얼간이>의 천재 공대생 란초 역을 맡았던 아미르 칸이 주연과 제작, 감독을 담당했다. <세 얼간이>의 란초가 그랬듯 <지상의 별처럼>에서 니쿰브는 경쟁적 입시에 목을 매는 인도 교육에 경종을 울린다. 난독증을 앓고 있지만 탁월한 재능을 가진 이샨을 통해 획일적 인도교육이 놓치고 있는 것을 날카롭게 고발한다. 모든 아이들이 다 같을 수는 없으며, 각자의 꿈과 재능에 맞게 다양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영화는 인도 사회를 움직였다. 인도 교육부는 시각장애인, 지체장애아, 그리고 난독증 등을 앓는 아이들이 시험을 볼 때 특별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영화가 개봉한 뒤 단 10일 만에 일어난 변화였다. 또 뭄바이 시에서는 시민단체가 자폐증 아이들을 위한 12개의 특별교실을 열었고, 찬디가르 주의 교육행정부는 학습 장애아를 특별 지도할 교사들을 양성하는 교육과정을 개설하는 등 개혁조치가 이어졌다. 영화 한 편이 엘리트 교육, 성적 지상주의 교육으로 치닫던 인도에 변화의 씨앗을 뿌린 것이다.

▲ 환하게 웃고 있는 니쿰브 선생과 이샨. ⓒ 포스터

‘세상 모든 아이들은 다 특별하다’는 니쿰브의 메시지는 인도 뿐 아니라 한국에도 큰 울림을 준다. 예나 지금이나 국어 영어 수학 등 입시 위주의 주입식 교육에 너나없이 모든 것을 쏟아 붓는 풍토에서 ‘진짜로 하고 싶은 것’을 억누르며 신음하고 있는 게 우리나라 아이들의 현실이다. 걸음마를 떼는 순간부터 ‘다른 아이들과의 경쟁’을 의식하며 뭔가를 가르치기 시작하는 풍토에서 아인슈타인, 에디슨, 피카소 같은 인물이 태어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정신 산만’에 ‘주의력 결핍’ 딱지가 붙은 학습 부진아가 되어 평생 고생했을 지도 모른다. 아이들 하나하나가 반짝이는 별처럼 특별한 존재이며 저마다 배우는 속도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니쿰브 스타일’이 한국 교육계를 일깨울 수 있는 날은 언제쯤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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