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애플티비 더 라인(The Line)

※이 글은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 해군 소속 특수부대인 네이비실(Navy SEAL)이 수행한 작전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 넵튠 스피어 작전(Operation Neptune Spear)일 것이다. 이는 2011년 5월 1일에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세력 알카에다의 지도자이자 9.11 테러를 주도한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한 작전이다.

미 특수전사령부는 임무의 중요성이나 지출 예산 등을 기준으로 특수부대의 등급을 1급부터 3급까지로 나누며, 네이비실은 육군 특수부대인 그린베레와 함께 2급에 속한다. 실의 훈련은 혹독하기로 유명한데, 8개월간 진행되는 기초과정인 BUD/S(Basic Underwater Demolition/SEAL)는 평균 수료율이 25%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5일과 한나절 동안 잠을 자지 않고 교육을 받아야 하는 지옥 주(Hell Week)에 많은 훈련생이 퇴교하는 걸로 알려졌다.

BUD/S를 마친 뒤에도 실 자격검정 훈련(SQT, SEAL Qualification Training)을 통과해야 비로소 복무할 소대로 배치되며, 이 모든 과정을 합쳐 3년의 훈련을 거쳐야 실전에 투입된다. 훈련부터 파병까지 동고동락하는 동지 간 전우애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네이비실의 이런 특수성을 고려하면 다큐 '더 라인(The Line)'에서 다룬 실제 사건이 미국에서 파문을 일으킨 것은 당연했다.

'악마'이자 '영웅'에 대한 내부 고발, 그리고 엇갈린 최종 진술

네이비실 팀 7 중사 에디 갤러거. 출처: 더라인, 애플티비. 
네이비실 팀 7 중사 에디 갤러거. 출처: 더라인, 애플티비. 

2019년 6월, 네이비실 팀 7의 중사(파병 당시 보직은 일종의 특수전술지원전문가) 에디 갤러거에 대한 군법회의가 열렸다. 2017년 이라크 모술 파병 당시 의도적으로 민간인을 사살하고 ISIS 포로를 살해했으며, 규제 대상인 약물을 소지하고 복용했다는 등 여러 건의 혐의에 관해서였다. 그와 함께 파병됐던 팀 7의 소대원들이 증인석에 섰다. 갤러거는 훈장을 여러 차례 받은 '영웅'이었다. 신체적 능력이 곧 전사로서의 역량인 네이비실에서 그는 스타 같은 존재였다. 소대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야수처럼 강인한 신체 능력을 지녔으며”, “공격성이 강하고”, “모두에게 존경받는”, 그야말로 엘리트 중의 엘리트 특수요원이었다. 부하들은 그의 거친 성정에 빗대 그를 '엘 디아블로(El Diablo, 악마)'라는 별명으로 부르곤 했다.

전 미국 해군장관 리처드 스펜서. 출처: 더라인, 애플티비. 
전 미국 해군장관 리처드 스펜서. 출처: 더라인, 애플티비. 

군 내에서 갤러거의 위상을 생각하면 그에게 제기된 혐의들은 충격적이었다. '비 전술적 상황에서 12~14세가량의 민간인 여자아이에게 총격을 가한 것', '포로로 잡힌 10대 ISIS 전투원을 칼로 찔러 숨지게 한 것' 등 끔찍한 전쟁 범죄에 해당하는 것들이었다.

더 놀라운 점은 그와 함께 전투 임무를 함께 해온 부하들이 그의 혐의를 뒷받침하는 증인으로 나섰다는 점이다. 장장 3년간의 혹독한 훈련 과정을 함께 거치고, 소수 정예의 팀으로 전장에서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네이비실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내부 고발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당시 미 해군 장관이었던 리처드 스펜서는 네이비실이 '유대감이 강한 조직'이며 갤러거는 조직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사람이었기에 소대원들이 어려운 결심을 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에디 갤러거(가운데)가 죽은 ISIS 포로의 머리를 잡고 있다. 출처: 더라인, 애플티비.
에디 갤러거(가운데)가 죽은 ISIS 포로의 머리를 잡고 있다. 출처: 더라인, 애플티비.

갤러거의 재판 당시 가장 큰 쟁점은 'ISIS 포로를 칼로 찔러 살해했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다른 모든 혐의에 관해서 무죄 판결을 받더라도 이 혐의에 관해 유죄를 받는다면 종신형을 받는 것이 확실한 상황이었다. 포로로 잡힌 ISIS 전투원 소년을 치료하던 중에 그의 목을 칼로 찔러서 죽였다는 것이 그 혐의의 내용이었다.

정황 증거는 여럿이었으나 결정적인 증거가 없었다. 근처에 있었던 의무 부사관의 헬멧 캠에 그 장면이 찍혔으나, 무슨 이유에선지 갤러거가 본격적인 처치를 하기 전에 촬영이 중단됐다. 갤러거가 포로 시체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찍은 단체 사진과 단독 사진이 있었고, “그를 내 사냥용 나이프로 잡았다”며 그가 친구에게 보낸 문자메시지가 있었지만, 이를 뒷받침할 확실한 증언이 필요했다.

 네이비실 팀 7 의무 부사관 코리 스콧 중사. 출처: 더라인, 애플티비. 
 네이비실 팀 7 의무 부사관 코리 스콧 중사. 출처: 더라인, 애플티비. 

군 검사가 부른 주요 증인은 두 사람으로, 크레이그 밀러 중사와 의무 부사관 코리 스콧 중사였다. 밀러의 증언은 실망스러웠다. 갤러거의 변호사 팀 팔라토레는 여러 가지 심리 조작 기법을 이용해 질문을 던졌고, 밀러 중사는 그의 질문에 명쾌하게 답하지 못했다. 밀러가 신문에서 죽을 쑨 탓에 검사들은 난처해졌다. 그래도 전문 의료인인 스콧의 말은 신빙성 있는 증거였기에 그가 제대로 증언해 준다면 승산이 있을 터였다.

그런데 신문 당일, 스콧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발언을 한다. 갤러거는 그 포로를 찔렀지만 죽이지는 않았으며, 자신이 그의 기도에 꽂혀있던 삽관을 막아 질식시켜서 죽였다고 말한 것이다. 이는 그가 해군범죄수사대(NCIS, Naval Criminal Investigative Service)의 수사 과정에서 진술한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군 검사가 법정에서 인용한 바에 따르면, 수사 과정에서 스콧은 “갤러거가 포로를 찌른 후에 나(스콧)의 판단으로는 의학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그의 숨이 멈출 때까지 옆에 있었다”라고 진술했다.

다큐멘터리 인터뷰에서 갤러거 측 변호인 팔라토레는 ‘포로가 질식해서 죽었다’는 말이 피에 질식해서 죽었다는 것인지 아니면 스콧이 삽관을 막아서 죽었다는 것인지를 군 수사대가 정확히 확인하지 않았다고 비웃는다. 하지만 군 측의 포렌식 범죄학자인 론 마티넬리에 따르면, 스콧이 삽관을 막아서 포로를 죽이지 않았다는 점은 수사 과정에서 여러 교차 질문을 통해 검증된 상태였다. 

포로를 질식시켰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코리 스콧. 출처: 더라인, 애플티비. 
포로를 질식시켰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코리 스콧. 출처: 더라인, 애플티비. 

죽은 포로는 당시 미군과 함께 모술을 점령했던 이라크군이 데려갈 예정이었다. 스콧은 이라크군이 포로들을 학대하고 고문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포로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동정심에서 그를 죽였다고 말했다. 가족이 있는 갤러거가 감옥에 가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스콧의 증언 덕택에 갤러거는 종신형을 면했다. 그의 여러 혐의 중에서 '죽은 포로와 사진을 찍은 것'에 관해서만 유죄 판결이 났으며, 4개월의 구금과 1계급 강등이라는 처분을 받았다.

스콧이 수사 과정과 법정에서 상반된 진술을 한 진짜 이유는 알 수 없다. 확실한 점은, 그는 면책 특권(증인이 자유롭게 진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증인석에서 한 발언은 거짓이 아니라면 기소할 수 없도록 하는 권리로, 미국에서는 검사나 법원이 발부)을 받은 상태였기에 어떤 말을 해도 법적인 책임을 질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위증한다면 기소될 수 있었지만 그것을 입증하는 것도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의 증언은 갤러거를 감옥으로 보낼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였기에 재판의 결과는 뻔했다. 군 검사들은 스콧의 번복에 법정에서 그를 다그치며 화를 냈지만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갤러거가 감옥에 가는 걸 막기 위해 면책 특권을 악용하는 것이냐는 검사들의 질책에 스콧은 자신이 위증죄로 기소당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으며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답했다. 

팀 7 소대원 여럿의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 브라이언 퍼거슨. 출처: 더라인, 애플티비. 
팀 7 소대원 여럿의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 브라이언 퍼거슨. 출처: 더라인, 애플티비. 

이 재판이 특이했던 점은 일반적인 사건에서보다 면책 특권이 훨씬 많이 발부됐다는 점이다. 수사를 지휘했던 선임 군 검사 크리스 챠플라크에 따르면, 그가 10년간 군 법무관 생활을 하며 봤던 사건 중 갤러거 건에서 가장 많은 면책 특권이 발부됐다.

증언한 소대원 여럿을 대변했던 브라이언 퍼거슨이라는 변호사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2018년에 소대원들이 갤러거를 고발하자 그들에게 차례로 연락해 변호사가 필요하면 도와주겠다고 했다. 재판을 보도했던 뉴욕타임스 기자 데이브 필립스에 따르면, 퍼거슨은 일반적인 변호사가 아니다. 그는 돈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며 주로 네이비실 군인들을 무료로 대변하는데, 재판을 ‘스포츠 경기’나 ‘게임’ 쯤으로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갤러거 사건에서 그가 신경 쓴 것은 자신이 변호한 소대원들의 면책 특권을 얻어내는 것이었다.

당시 팀 7의 소대원들은 퍼거슨이 변호를 맡은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으로 나뉘었는데, 재판에서 두 그룹의 증언이 크게 엇갈린다. 퍼거슨이 대변한 소대원들은 갤러거에게 유리한 증언을 했다. 갤러거를 기소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저격수 딜런 딜은 퍼거슨과 갤러거 측 간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개입, 훼손된 사건, 파문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의 트윗. 출처: 더라인, 애플티비.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의 트윗. 출처: 더라인, 애플티비. 

갤러거의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중요한 역할을 한 또 다른 사람이 있다. 바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다. 갤러거의 아내와 동생은 폭스 뉴스와 SNS 등을 통해 활발한 여론전을 펼쳤고, 이를 통해 직접 트럼프에게 호소하려던 그들의 전략은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진다. 트럼프는 재판 초기에 당시 해군 장관이던 리처드 스펜서에게 전화해서 갤러거를 '독방에서 풀어주라'는 지시를 했으며, 자신의 트위터에서도 이에 관해 언급한다.

“국가에 헌신한 그의 과거 군 복무(경력)에 대한 경의의 표현으로, 네이비실 에디 갤러거는 덜 제한적인 구금 시설로 옮겨져 법정에 서기 전까지 그곳에서 지낼 것이다.”

대통령의 비호를 등에 업은 갤러거는 재판에서 여러모로 유리한 위치를 점한다. 2019년 4월에 마크 무카시(Marc Mucasey)가 갤러거의 변호인단에 합류하는데, 그는 트럼프 소유 대기업인 ‘트럼프 그룹(Trump Organization)’의 변호사였다. 트럼프가 그에게 갤러거 사건에 합류하라고 권유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정황상 갤러거에 대한 대통령의 공개적인 지지와 대통령 개인 변호사의 재판 합류를 완전히 분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에디 갤러거와 그 아내를 만난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 출처: 더라인, 애플티비. 
에디 갤러거와 그 아내를 만난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 출처: 더라인, 애플티비. 

갤러거가 실제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혐의는 ISIS 포로의 시체와 함께 사진을 찍은 것뿐이었지만, 해군 내부에서 그를 어떻게 처분하는가는 다른 문제였다. 미군의 경우 일반적으로 군법회의에서 유죄 판결을 받으면 행정제대위원회에서 당사자를 제대시킬지 아니면 계속 복무하도록 할지를 결정한다. 하지만 갤러거 사건은 언론뿐만 아니라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의 관심을 받고 있어 일반적인 절차를 따르기가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따라서 해군에서는 갤러거의 사직을 논의하는 대신 그의 네이비실 자격을 먼저 검토하기로 결정한다. 네이비실의 상징인 삼지창 휘장(Trident)을 유지할지에 관해 결정하는 휘장 검토 위원회(Trident Review Board)를 개최하고, 동료 평가를 통해 그를 네이비실 대원으로 남겨둘지 판단하려고 했던 것이다. 

전 미 해군장관 리처드 스펜서의 해임 소식. 출처: 더라인, 애플티비.
전 미 해군장관 리처드 스펜서의 해임 소식. 출처: 더라인, 애플티비.

갤러거는 자신의 아내, 남동생과 함께 폭스 뉴스에 출연해 이 위원회가 개최되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자신은 이미 재판에서 여러 혐의에 관해 무죄 판결을 받았으니 더 이상의 처분은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그의 전략은 이번에도 효과적이었다. 트럼프는 자신의 트위터에 "해군은 에디 갤러거의 삼지창 핀을 빼앗지 않을 것"이라는 게시글을 올려 군 통수권자로서 자신의 권한을 행사했다. 트럼프의 명령으로 휘장 검토 위원회는 취소된다. 이 과정에서 당시 해군 장관이었던 스펜서는 직을 내려놓게 된다. 갤러거 사건은 다른 사건에도 영향을 미쳤다. 여러 건의 전쟁 범죄 사건에 관한 수사가 취소된 것이다. 

채 상병과 박정훈 대령

박정훈 대령. 출처: 연합뉴스. 

군 내부에서 수사 중인 사건에 권력이 개입해서 수사가 왜곡됐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서도 에디 갤러거 재판과 기시감을 느끼게 한 사건이 벌어졌다. 일명 '채 상병 사건'이 그것이다. 지난해 7월 20일에 경북 예천에서 해병대가 폭우 피해 실종자를 수색하던 중 1사단 소속 채 모 상병이 순직했다. 당시 해병대 사령부 군사경찰단장이던 박정훈 대령의 지휘로 군에서 사건 경위를 조사했다.

수사단이 작성한 보고서에서는 이 사건의 발생 원인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임성근 해병대 제1사단장이 실종자 수색 지원 요청을 받은 뒤 이틀이나 지나서야 예하 지휘관들에게 알린 탓에 부대에서는 구명조끼와 로프 등 안전 장비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채 수색에 나섰다. 또한, 사단장이 작전에 투입된 병사들의 복장 등 수색과 무관한 부분을 지적하자 부담을 느낀 현장 지휘관들이 장병들에게 무리하게 입수하라고 지시해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고 채 상병 익사 사고 수사한 결과, 각 제대별 지휘관들이 업무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로 익사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돼 사단장과 ㄱ여단장, ㄴ대대장, ㄷ대대장, ㄷ대대 ㄹ중대장 및 현장 통제간부 3명 등 총 8명을 군사법원법 제2조 제2항에 의거해 관할 경상북도 경찰청에 이첩 예정이며 향후 적극 협조토록 하겠다.”

수사단은 7월 31일에 이 문건을 토대로 언론브리핑을 할 예정이었다. 박 대령은 제1사단장 등 사건 관계자 8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관할 경찰에 이첩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했고, 30일에 이를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하고 결재받았다. 이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이 언론 브리핑 자료를 요구해서 넘겼는데, 다음날 브리핑이 돌연 취소되고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사건의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군사법원법상 군은 사망사건을 조사하여 범죄 혐의를 발견하면 바로 사건을 경찰에 이첩해야 한다. 박 대령은 보고서가 국가안보실에 넘어간 뒤, 즉 윤석열 대통령이 조사 결과를 보고받은 뒤부터 외압이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내가) 해병대 사령관에게 ‘도대체 왜 국방부에서 이러는 것이냐’라고 물었다. 사령관은 분명히 이렇게 말했다. ‘오늘(7월31일) 오전 11시께 대통령 주관 수석보좌관회의 시 국방비서관으로부터 사건을 보고받으면서 격노하여… 대통령은 국방부 장관에게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느냐고 질책했다’.” 

박 대령은 그 이후에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자신에게 연락해 죄명, 혐의자, 혐의 내용을 보고서에서 빼라고 말하는 등 수사 외압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박진희 장관 군사보좌관이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보낸 메시지에서는 “확실한 혐의자는 수사 의뢰, 지휘 책임 관련 인원은 징계하는 것도 검토해달라”며 수사 대상 일부를 경찰에 넘기지 말고 군 내부에서 처리하자고 부탁한 내용이 확인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수사단은 경북경찰청에 사건을 이첩했다. 박 대령은 조사 결과 축소를 우려해 “빨리 경찰에 이첩하는 길만이 정직한 해병대를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군검찰은 박 대령이 해병대 사령관의 ‘이첩 보류·중단’ 지시를 어겼다며 그를 수사단장에서 보직 해임하고 항명죄와 상관 명예훼손죄로 기소했다. 지난해 12월에 1차 공판이 열렸으며, 이번 달 1일에 2차 공판이 진행됐다.

직업 군인의 기준(standard)과 선(line)이란 무엇인가 

전 미 해군장관 리처드 스펜서의 해임 기자회견. 출처: 더라인, 애플티비.
전 미 해군장관 리처드 스펜서의 해임 기자회견. 출처: 더라인, 애플티비.

전 미 해군 장관인 스펜서는 에디 갤러거의 신병 처리를 둘러싼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마찰로 인해 사퇴하면서 기자회견에서 이런 말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투 요원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전투 요원은 직업 군인이다. 직업 군인은 자신에게 부여된, 그리고 자신만의 기준(standard)이 있어야 한다.” 

팀 7의 저격수 딜런 딜. 출처: 더라인, 애플티비. 
팀 7의 저격수 딜런 딜. 출처: 더라인, 애플티비. 

“보편적으로 명확하게 어느 지점이 '선(line)'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지만, 파병될 때 내가 정한 선은 명확했다. 에디는 반복적으로 그 선을 넘었다.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그걸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건 방아쇠를 당긴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아마 나는 영원히 그 짐을 이고 살 것이다.”

팀 7의 저격수로 에디 갤러거를 고발한 주요 증인 딜런 딜이 다큐멘터리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딜과 스펜서의 말을 종합해 보면, 그들이 말한 '기준(standard)'과 '선(line)'이란 타인의 목숨에 관련된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윤리적 가치인 듯하다.

지난해 ‘항명’ 혐의에 관한 1차 공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는 박정훈 대령에게 시사인 기자가 '무엇을 위해 싸우느냐'고 묻자, 그는 "진실이 규명되고 정의가 지켜지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답했다. 그는 또한,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결정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53세가 된다. 인생의 절반이 넘는 28년이라는 시간을 군에서 보냈다. 한창 활발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시기를 전부 군에서 보낸 셈이니, 군인이라는 신분과 박정훈이라는 사람을 떼어놓고 볼 순 없을 테다.

그에게 진실과 정의란 어떤 의미일까. 그는 채 상병의 주검 앞에서 "너의 죽음에 억울함이 남지 않도록 철저히 조사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가 진실과 정의를 좇는 이유는 아들 둔 아비로의 책임감 때문일 수도, '정직'이라는 해병대 정신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건 그의 태도는 전쟁터에 나선 군인을 연상시킨다. 권력이 그가 정한 선을 넘었고, 그는 자신의 기준에 따라 후퇴하지 않고 전진하는 것을 택했다. 

에디 갤러거. 출처: 더라인, 애플티비.

에디 갤러거도 군인이었으니 전쟁터에 나갈 때 자신이 정한 기준과 선이 있었을 것이다. 그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전쟁에 임했을까. 그가 자신의 전쟁관을 설명하는 마지막 장면은 매우 충격적이다. 재판이 끝난 뒤 약 2년이 흐른 시점. 갤러거는 이제 민간인이다. 그가 공식 석상에서 어떤 말을 하더라도 다시 법정에 설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큐멘터리의 감독은 그에게 묻는다. '정말로 어떤 일이 있었냐'고.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설명한다. ISIS 포로를 잡은 날, 자신은 그저 이미 죽어가는 포로에게 마무리를 해준 것뿐이라고. 치료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살리려던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커대버(의료 실습용 시체)처럼 활용해 평소에 해보기 어려운 의료적 처치를 실험해 봤을 뿐이라고. 그 포로는 ISIS였기에 죽어야 했으며, ISIS를 죽인다고 해서 법정에 서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승리를 위해서는 조금 더러워져야 한다고. "그런 치료 실험으로 그를 죽이려고 의도했냐"는 감독의 마지막 질문에, 갤러거는 답한다. "네, 그런 셈이었죠."

미국의 군 통수권자이자 총사령관은 군인이 아니라 민간인인 대통령이다. 대통령에게 임명돼 군을 관리하는 고위 관료인 국방부 장관 역시 민간인이다. 미 국가안전보장법(National Security Act)에 따라, 군인 출신이 해당 보직을 맡더라도 임명될 당시에는 민간인 신분이어야 하며 전역한 지 7년이 지난 상태여야 한다. 이런 엄격한 조항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따른 것이다. 국가의 주인은 시민이므로 군에 대한 문민통제가 이뤄져야 하며, 견제와 균형을 통해 군에 의한 권력의 집중과 남용을 방지해야 한다. 군이 아니라 시민을 대표하는 의회에 전쟁을 선포할 권한이 부여된 것도 그런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막강한 힘을 가진 미국의 대통령도 군의 사법제도에 관해서는 간섭을 최소화하는 것이 관례였다. 정치가 군의 사법 체계에 개입하는 순간 행정부로부터 사법의 독립이라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은 무너지고 말기 때문이다. 그것이 상명하복을 원칙으로 하는 군조직일지라도 말이다.

갤러거 사건과 채 상병 사건은 세부적인 요소들이 다를 뿐 그 본질은 동일하다. 정치가 군의 사법제도를 침범했고, 권력 간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이 무너졌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다큐의 제목인 <더 라인(The Line)>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스펜서와 딜이 암시했듯이 군인들이 전장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윤리적 가치일 수도 있고, 민간인이자 민주주의 국가의 대표로서 대통령이 군의 사법 체계에 대해 지켜야 하는 선이 될 수도 있다.

군은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명령에 복종할 의무를 지닌다. 그러나 그것은 정당한 명령이라는 전제, 즉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선(line)’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에디 갤러거는 전쟁터에서 스스로 넘어서는 안 될 선에 관해서 혼동했고, 트럼프는 민주주의 사회의 선출 권력으로 자신이 지켜야 하는 선에 관해 혼동했다. 채 상병 사건이 갤러거 사건의 전철을 밟을지 아니면 다시 선 안으로 돌아와 균형을 회복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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