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에 든 한반도 물] ② 환경부 쌈지돈 ‘물이용부담금’

넓은 벌 동쪽 끝으로 휘돌아나가던 실개천도, 농부가 삽을 씻던 저문 강도 이제 옛 시구로만 남게 되는 건가? 청계천에서 시작된 삽질은 4대강을 온통 파헤쳐놓더니 ‘지천(支川)정비’라는 미명으로 전국의 개천들을 콘크리트로 싸바르고 있다. 굽이굽이 흘러가며 온갖 생명을 키우는 게 하천의 역할이고 본모습이건만 ‘직강(直江)공사’라는 이름 아래 여울과 둔치를 없애는가 하면, 보를 건설해 물길을 막고 물과 친해질 것 같지 않은 ‘친수시설’을 마구 건설해 하천을 괴롭힌다. 녹조 현상은 하천을 못살게 구는 무지막지한 개발주의에 대한 마지막 경고인지도 모른다. <단비뉴스>가 단군 이래 최대 시련에 처한 물길의 현장들을 찾아 나섰다. (편집자)

“이모! 이모네 수도요금 고지서에 ‘물이용부담금’이라는 항목 있어요? 그게 강 하류 사람들이 우리 쪽(상류) 사람들 지원해주는 거라 대. 위쪽에서 물 맑게 내려 보내느라 고생한다고 주는 거.”

“그런 거 따로 안 나와 있다. 이번 달 물 얼마나 썼나, 그거랑 얼마 내라고 물값만 쓰여 있는데.”

일명 ‘녹조라떼’로 불리는 녹조현상이 심해지자 관련 뉴스를 찾아보던 박민주(33•여•제천시 금성면 적덕리)씨는 경남지역 일부 주민이 물이용부담금(이하 물부담금) 납부거부운동을 시작한 것에 관심이 갔다. 남한강 지류지역에 사는 박씨는 기사를 통해 처음 알게 된 물부담금이 뭔지 궁금해 경기도에 사는 친척 권명희(51•남양주 도농동)씨에게 물었지만, 권씨도 금시초문이었다. 아파트관리비 고지서에 세부항목이 표시되지 않고 수도요금으로만 나오니, 정작 물부담금 납부자인 권씨는 그 존재조차 몰랐던 것이다.

▲ 물이용부담금이 명기된 수도요금 고지서. ⓒ 박경현 

눈 뜨고 코 베일 수 있는 물값 ‘한강수계기금’

고지서에 물부담금이 명기돼 있어도 용도를 모르는 건 서울시민인 정아무개(53•여•강남구 삼성동)씨도 마찬가지다. 상•하수도요금과 함께 물부담금 5,370원이 부과됐지만, 정씨는 2~3년 전 처음 보고 어디에 쓰일지 잠시 궁금해 하다가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알든 모르든 안내면 방법이 없으니까 내는 거죠.”

다 같은 물이고 또 다 같이 쓰는 물인데 강 하류 주민들만 내는 이 물부담금의 정체는 뭘까? ‘한강수계기금’으로도 불리는 물부담금은 98년 3월 팔당호 수질이 심하게 나빠지자, 이를 개선하기 위해 99년부터 징수하기 시작한 목적세 형태의 특별기금이다. 수도권 시민의 식수인 팔당 상수원 수질개선에 필요한 자금이다 보니 전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충당할 수 없었고, 한강수계 내 수도 이용자들에게만 따로 기금을 물리게 된 것이다.

당시 환경부가 2005년까지 팔당 상수원을 1급수로 만들겠다는 특별대책을 발표하면서 ‘한강수계 상수원 수질개선 및 주민지원 등에 관한 법률(한강수계법)’을 제정했고, 이것이 현재까지 물부담금을 징수하는 법적 근거가 되고 있다. 현재 한강은 팔당호를 중심으로 한강수계기금을 내는 쪽과 수혜대상 지역이 나뉘며, 그 밖에 낙동강 금강 영산강에서도 2002년부터 각각 수계 내 이용자에게 물부담금을 걷고 있다.

▲ 지도 왼쪽에 표시된 부분이 한강수계기금을 징수하는 지역들이며, 팔당 상수원을 포함한 오른쪽 표시 부분은 물이용부담금 수혜대상지역이다. (※ 이미지를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진희정 
한강수계위원회 이용수씨는 물부담금이 “상수원 물을 주로 사용하지만 수질관리를 위해선 따로 희생이 필요 없는 하류지역 수도 이용자들에게 수혜자부담 원칙을 적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원으로부터 이익을 얻은 자들이 자원손실비용과 함께 이와 관련한 서비스의 완전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사용자부담 원칙에 근거한 것이다.

“정부가 75년 팔당호를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하면서 집중관리에 들어갔고, 그때부터 인근 주민들은 축사도 마음대로 짓지 못하게 됐습니다. 이런 것처럼 물부담금은 직접적으로 수질을 개선하는 데 사용하는 비용이면서, 또 그 과정에서 재산상 피해를 보는 상수원 상류주민들을 지원하는 재원이기도 한 거죠.”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환경부 산하 한강유역환경청 발표 자료에 따르면, 팔당호 물을 사용한 수도권 주민들이 2011년까지 납부한 물부담금 총액은 3조9528억 원. 한강수계관리위원회가 정한 물부담금 부과율을 사용량에 따라 비례 적용해 계산하는데, 현재는 가구당 월 평균 5천 원 정도 징수된다.

여성환경연대 유해영씨는 “기금 내용은 불우이웃 돕기 성금처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거두는 건데 자발성은커녕 내는 사람들이 존재조차 모른다는 게 문제”라고 비판했다. 각 가정에 수도세와 함께 청구되지만, 조성된 목적과 용도를 엄밀히 따지면 물부담금은 수도요금이 아니다. 수돗물을 생산하고 공급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 또는 이를 사용한 데 따른 ‘요금’이라기보다, 정부의 상수원 수질관리를 위해 시민들이 마련하는 ‘기금’에 가깝기 때문이다.

“2005년까지 한강수계 주민들이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1급수(BOD 1㎎/ℓ 이내)로 만들겠다고 약속하고 사업비 일부를 시민들에게 부과한 건데, 99년 이후로도 팔당호 수질은 지속적으로 나빠지고 있습니다. 12년 넘게 강제징수당했는데 시민들은 도대체 그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 모르고, 제대로 쓰고 있는지도 의심스러운 거예요.”

▲ 왼쪽은 환경부 측정 자료를 바탕으로 팔당호 오염 정도를 표시한 그래프. 오른쪽 표는 팔당댐에 설치된 5개 수질관리측정소 가운데,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부근에서 조사된 수질 결과를 정리한 것. (※ 이미지를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단비뉴스 

환경부가 운영하는 물환경정보시스템 측정 자료에 따르면, 팔당호는 2005년부터 2010년까지 물 오염도를 나타내는 ‘화학적 산소요구량(BOD)’이 1.1~1.3㎎/ℓ을 넘나든다. BOD와 유사하지만 독성화학물질이나 중금속 등 미생물로 분해할 수 없는 난분해성 물질의 포함 정도를 나타내는 또 다른 수질지표 ‘COD’로 분석하면 같은 기간 팔당호는 계속 오염되고 있다.

환경부 쌈지로 들어간 눈 먼 물값

환경운동연합 이철재씨는 “한강수계기금을 포함해 팔당호 수질 개선을 위해 지금까지 10조 원 이상 투자됐지만 수질이 전혀 개선되고 있지 않다”며 정부가 물부담금 사용 내역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99년 톤당 80원으로 시작해 2008년 160원 하던 물부담금이 2011년 국회예산안 통과 때 170원으로 인상됐지만, 당시 인상 이유나 향후 계획에 대한 설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강수계위원회는 물부담금이 각 수계별로 수질개선을 위한 환경기초시설 설치와 운영, 토지매수 및 수변구역 관리, 규제를 받는 상수원 관리지역 주민지원사업 등에 쓰인다고 밝히고 있다. 각종 개발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강 인근 땅을 사들이는 등 물부담금을 활용하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친수구역특별법이 통과되고 자연보전권역이 완화하는 등 팔당호 인근에서 대규모 난개발이 가능해지면서 수질 보전을 위한 정부 부처 간 엇박자 행보가 계속되고 있다.

▲ 서울과 경기도 일대 주민들의 식수를 제공하고 있는 한강수계 상수원 팔당댐. ⓒ 환경운동연합
최근 하수처리용량을 넘는 오수를 그대로 방출해 온 사실이 드러난 남양주시에 4년째 살고 있는 최미영(29•여•호평동)씨는 “며칠 전 폭우가 내려서 빗물이 넘칠 때 (오수 방출을) 환경부가 적발했다기에 ‘잘했다’ 생각했더니 97년부터 무단 방류됐다”면서 “환경부는 물부담금을 포함해 연간 수십억원 재원을 확보하면서 15년 이상 계속된 지자체의 불법 행위 하나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물 살릴 돈’으로 ‘물 죽일 사업’ 뒤처리?

그동안 정부가 물부담금을 통해 상수원 수질개선이라는 책임과 부담을 국민에게 전가한 게 아니냐는 비판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그럼에도 지금까지는 기금 조성의 선의와 사용처의 명분으로 보아 그런대로 묵과되는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2010년 국정감사에서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홍희덕 국회의원이 ‘4대강 사업에 물부담금이 전용되고 있다’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른바 ‘4대강 설거지기금’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당시 홍 의원은 한강수계 물부담금 중 119억 원이 4대강사업 가운데 하나인 ‘하•폐수 처리장 총인(TP)처리 시설 설치사업’에 투입됐다고 밝혔다. 서울환경운동연합 한강팀 활동가 신재은씨는 “물부담금이 직접적으로 댐과 보 건설에 쓰이지 않더라도, 4대강사업으로 인한 수질 악화를 뒷감당하는 데 쓰인다면 본래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기금이 아니지 않느냐”라고 반문했다.

지난해 ‘한강물이용부담금보이콧시민행동(이하 물보시)’은 정부가 수질 개선을 위해 한강수계 물부담금으로 산 땅을 4대강사업 용도로 무상으로 넘겨줬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물부담금 납부거부운동을 펼쳤다. 시민 부담으로 조성된 물부담금이 4대강사업 뒤처리비용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물부담금 사용처를 제대로 알고 납부자에게 기금운영 권한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이에 지난 6월 19일 열린 한강수계관리위원회에서 지금까지 환경부가 단독으로 처리했던 물부담금 사업 심의•의결과정에 서울 인천 경기 강원 충북 5개 시도가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염형철 물보시 사무처장은 “한강특별대책의 핵심인 ‘오염총량제 의무도입’과 ‘고도처리 같은 환경시설 확충’ 없이는 물부담금이 앞으로도 환경부의 쌈짓돈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위원회와 감시기구의 적극적인 수질 개선 노력을 촉구했다.

▲ 상수원 수질개선을 위해 강 하류 주민들이 물이용부담금을 내고 있지만, 대부분 서울시민들은 징수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 플리커 
헌법에는 환경권이 있다. 부담금과 상관없이 국민들은 깨끗한 물을 먹을 권리가 있고, 환경부 장관은 물을 깨끗하게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기금 운영과 4대강 개발을 하나의 주체인 정부가 주도하는 상황에서 수질을 개선하라고 낸 돈을 정부가 개발사업 뒷설거지에 쓴다면, 누가 물값 덤터기를 쓰려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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