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이주민문화예술센터 ‘프리포트’ 대표 마붑 알엄

“이주민을 위한 공간은 많지만, 이주민이 직접 만든 공간은 별로 없어요. 누가 (시혜의) 대상자이고 아니고 구분할 필요 없이 이주민이 중심이 되는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했죠. ‘프리포트(Free Port)’는 그 시작입니다.”

▲ 지난 5월 22일, 이주민문화예술센터 ‘프리포트’에서 만난 마붑 알엄 대표. ⓒ 경진주

영화 <반두비>의 주연으로 잘 알려진 마붑 알엄(34)씨가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부근에 이주민을 위한 대안문화공간 프리포트(www.freeport.or.kr)를 열었다. 이곳은 국적·종교·성을 따지지 않고 ‘모든 지구인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자유항’을 표방한다. 또 이주민 문화예술 활동가를 키우고 축제를 통해 교류를 이끌어내는 ‘접속포트’가 되고자 한다.

“누구나 다 하고 싶은 얘기들이 있는데 음악이나 영상, 연극으로 표현하면 더 쉬운 것 같아요. 특히 언어에 제약이 있는 이주민들의 경우는 더 그렇죠. 5월부터 ‘발리우드 영화 만들기’ 워크숍을 운영하고 있고, 6월부터는 ‘서남아시아 악기 따블라 배우기’, 7월에는 ‘이주민 연극단’ 워크숍, 10월에는 ‘이주민예술페스티벌’을 열거에요.” 

음식 음악 영상을 매개로 이주민과 한국인이 하나 되게
 
마붑씨는 프리포트가 음식, 음악, 영상 등을 매개로 이주민과 한국인 친구들이 함께 어울리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곳 행사와 워크숍에는 ‘지구인’이라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발리우드 영화 만들기’나 ‘서남아시아 악기 따블라 배우기’와 같은 워크숍은 5만 원의 참가비만 내면 일주일에 3시간씩 총 15주 강습을 받을 수 있다고.

▲ 파티 등 모임 시 ‘대관’도 가능한 약 30인석가량의 카페 공간. ⓒ 경진주

그는 1999년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왔다가 13년째 살고 있다. 방글라데시의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했지만 한국에서 염색, 플라스틱, 가구 등 근로여건이 열악한 공장들을 전전하다 노동착취에 분노하고 투쟁하게 됐다. 2001년부터 경기도 남양주에서 방글라데시 공동체 활동을 시작했는데, 동료 중 누군가 다치면 함께 치료비를 모아주고, 이주노동자 관련 시민단체(NGO)와 협력해 밀린 임금을 받아주었다. 

지난 2003년 11월부터 약 1년간은 서울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이주노동자가 임금체납이나 폭력 등 사업주의 잘못이나 허가 없이는 사업장을 옮길 수 없고, 5년 이상 국내에 체류할 수도 없게 한 고용허가제(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를 폐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고용허가제는 2004년 8월부터 결국 시행됐다. 이 투쟁은 그에게 좌절과 실망을 안겼지만, 그는 카메라를 빌려 농성장 곳곳 동료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강경 투쟁 대신 카메라를 들다

“계속 비판만 할 게 아니라 바꿔야 하는데, 어디서도 들어주지 않았고 바뀌는 것도 없었어요. 농성하면서도 다들 자기 관점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그 얘기는 단지 농성장 안에만 머물렀죠. 그래서 농성장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지치고 슬프고…. 밖으로 얘기가 나가지 못하니까 답답했어요. 그러다가 카메라를 들게 됐죠.”

그는 ‘강경 투쟁에 별 희망이 없다’고 느끼면서 농성하며 느꼈던 생각, 반성들을 토대로 자신의 시선이 담긴 영상을 만들었다. 당시 이주노동자는 ‘사장님 나빠요’란 유행어로 희화화되거나, ‘10년 넘게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으로 대상화한 게 대부분이었다. 사람들은 이주민을 보며 웃거나 동정하지만 정작 ‘이들이 왜 고향에 갈 수 없었는가?’ ‘왜 사장님 나쁘다는 말을 하게 됐는가?’에는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제대로, 끈질기게 이주민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2004년부터 <시민방송 RTV>, <이주노동자방송 MWTV(Migrant Workers TV)> 등에서 이주민의 인권개선을 요구하는 내용의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그 후 영화배우로, 다큐멘터리와 독립영화의 감독으로, 이주민 관련 문화행사의 기획자 등으로 활동 폭을 넓혔다.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며 만난 한국인 여성과 2004년 결혼해 2011년 귀화한 그는 그렇게 ‘미디어활동가’로 이 땅에서 자리를 잡았다. 

한국에서 강제추방당한 이주민 노조활동가 세 사람이 고국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쫓겨난 사람들>, 10년 이상 한국에서 살다 추방된 이주노동자의 가족 상봉을 담은 <리터니> 등이 그가 만든 영화다. 2009년에 개봉한 영화 <반두비>에서는 주연을 맡아 이주노동자 남성과 한국 여고생의 사랑을 그렸다. 이 영화는 이주민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담은 작품으로 호평을 받았지만 한편으론 사람들의 편견 때문에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는가 하면 ‘더러운 영화’나 ‘쓰레기 영화’라는 악평에 시달리기도 했다.

▲ 영화 <반두비> 포스터. ⓒ 반두비 공식 사이트

방글라데시어로 ‘좋은 친구’라는 뜻인 <반두비>와의 인연은 신동일 영화감독으로부터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배우 캐스팅을 도와 달라’는 제안을 받은 게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주인공 ‘카림’ 역할에 매력을 느꼈고 결국 공식 오디션까지 본 끝에 카림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밥 대신 채소만 먹으며 체중을 12kg나 줄인 후 6개월간 영화에만 몰입했다. 비록 개봉 후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인터넷 댓글과 ‘죽이겠다’는 협박 전화에까지 시달리기도 했지만, 이 영화는 그의 미디어활동가 경력에 의미 있는 필모그래피(작품목록)가 돼 주었다. 

이주민이 만든, 지구인을 위한 상상의 공간

이런 활동들을 거치면서 그는 ‘이주민 문제에 이주민이 주체가 되지 못하는 현실’을 방치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다지게 됐다. 그래서 2009년 ‘아시아 미디어컬쳐 팩토리(AMC Factory)’를 만들어 한국인·이주민 활동가들과 함께 이주민 공동체 활성화와 문화기획자 발굴, 콘텐츠개발을 위한 사업을 추진했다. AMC는 지난해 12월 아름다운재단이 선정하는 ‘2012년 변화의 시나리오-단체 인큐베이팅’ 사업 대상자로 뽑혔고 3년간 2억 원의 창업보육 지원금을 받게 됐다. 바로 이 자금으로 이주민문화예술센터 ‘프리포트’를 열게 된 것이다.   
  
“이주민 문제는 국경에서 비롯됐다고 봐요. 국경이 없어지진 않겠지만, 국경이 없다는 상상을 해 보면 이주민 문제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죠. 프리포트가 그런 상상의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서로에 대한 편견도 없고 국경도 없는 공간, 모두가 연결되는 네트워크의 공간 말이에요.”  

마붑씨 자신도 사실 다른 문화에 대한 편견이 없지 않았다고 한다. 얼마 전 아프리카 커뮤니티의 결혼식 영상을 찍어 줬는데, 처음에는 지하 클럽에서 덩치 큰 사람들이 춤추고 느끼한 음식을 먹는 모습에 거부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함께 밥 먹고 춤추다 보니 불편한 마음이 사라지고 즐겁더란다. 그는 프리포트가 다른 이에 대한 경계의 시선을 걷어내고 모두가 하나 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 

▲ 간단한 요리를 할 수 있는 주방시설을 갖춘 아시안 티 카페(Asian Tea Cafe). ⓒ 경진주

프리포트는 아름다운재단에서 프로그램 운영을 지원받고 있지만, 임대료 등 공간 이용을 위한 경비는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자동이체(CMS) 회원 300명’을 목표로 후원자를 모집하고 있다. 아직 30명 정도밖에 모이지 않아 갈 길이 멀다. 프리포트는 비회원에게도 개방되지만 후원자가 되면 약 30석 가량의 카페 공간을 대관할 수 있고 이주민 관련 음반·서적·영상 자료를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다. 또 영상 편집실 ‘미디어 활주로’와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오픈 키친’ 이용 등에 혜택이 있다. 마붑 씨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길 희망했다. 

▲ ‘자동이체(CMS) 후원회원 300명 목표’ 앞에서 웃고 있는 마붑 알엄 대표. ⓒ 경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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