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KBS 창원총국 김소영 기자 파업참가기

▲ 김소영 KBS기자
KBS 새 노조의 파업이 3주째로 접어들었다. 파업 프로그램의 하나로, 지난주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에 다녀왔다. 오리를 이용한 친환경농법과 생태하천인 화포천을, 취재가 아니라 견학하기 위해서였다. 퇴임 뒤 고향으로 돌아온 첫 번째 대통령, 그가 못다 이룬 꿈을 보기 위해 서거 1년이 지났는데도 봉하마을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5월, 노 대통령 서거 소식이 전해진 날 밤도 그랬다. 수습기자였던 나는 광화문 앞에 차려진 시민분향소를 지켰다. 오락가락하는 빗속에도 애통해하는 사람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차마 돌아갈 수 없어 아예 길바닥에 주저앉아 밤을 새는 이도 많았다. 먼 길 찾아온 조문객들을 그냥 보낼
수 없다며 누군가는 큰 솥을 갖고 와 국수를 삶았다.

그러나 ‘공영방송 KBS’는 그 역사적 현장에서 취재를 거부당했다. “KBS라면 인터뷰 안 합니다. 왜인지는 기자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 처음에는 호의적으로 대하던 사람들도 막상 신분을 밝히고 나면 입을 열지 않았다. “좋은 말로 할 때, 제발 이곳에서 나가주세요.” KBS 로고가 찍힌 점퍼를 입었다는 이유로 험악한 말들을 수없이 들어야 했다. 그 말들을 반박할 수 없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당시 KBS는 모든 취재현장에서 ‘문전박대’를 받아야 했다. 얼마나 꿈꿔온 기자였던가? 기록하는 사람, 곧 기자라는 신분으로 역사적 현장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들떠있던 나와 동기들에겐 큰 충격이었다. 술자리에서 한 동기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KBS에 들어온 것이 요즘처럼 부끄러울 때가 없어요.” 

파업중이던 지난주에는 4대강공사 함안보 현장에 다녀왔다. 친환경 수변공간으로 멋지게 그려진 조감도를 보면서도 농민들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보도도 못할 거면서 질문을 던져보는 나. 수박농사를 짓는다는 50대 농민은 함안보로 지하수위가 올라가면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을 거라며 울상이었다.

낙동강 하류, 경남이 취재권역인 기자가, 목격한 사실을 얘기해줘도 사람들은 반신반의한다. 막무가내 준설로 강이 얼마나 병들어가고 있는지, 4대강사업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있는지. ‘공영방송 KBS’는 이 거대 국책사업에 대한 면밀한 검증 대신, 착공식 중계방송을 주도면밀하게 했다. 4대강뿐인가? 내부 구성원들마저 납득할 수 없는 편성안이 프로그램들을 지배하고 낯 뜨거운 아이템들이 ‘9시뉴스’를 메운다.

우리에게 싸울 힘이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시작한 파업이 벌써 보름을 넘어섰다. 오후에는 주로 거리 선전전을 하며 시민들을 만난다. 유인물을 나눠주며, 우리가 파업중이라는 사실을 알린다. “안녕하세요, KBS입니다.” “저 KBS 안 좋아하는데요.” 어차피 예상했던 반응이다. “맞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파업을 하고 있습니다. KBS를 다시 살리기 위해서요.” 여전히 냉담한 사람들도 많지만, 빙긋 웃으며 힘내라고 말해주는 이들이 더 많다. 어쩌면 우리들 자신보다 파업을 더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에야 그 열망에 부응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 KBS에 입사했을 때, 선배들은 “참 좋은 회사 들어왔다”고 했다. ‘주인 없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 눈치도 볼 필요가 없는 거라고, 선배들은 설명했다. 수신료를 내주는 시청자들 눈치만 보면 된다고.

어쩌면 이번 파업이 ‘공영방송 KBS’의 이름을 되찾기 위한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우리를 단결시키고 있다. 비록 물리적 힘에 연대의 고리가 산산이 부서질지라도 영혼마저 팔 수는 없는 일. 파업기간에 리포팅을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KBS의 실상은 국민에게 좀 더 알릴 수 있으리라.

* 우리는 당당하게 맞서겠습니다, ‘공영방송 KBS'의 ‘정명'(正名)을 위해, 아니 조금은 덜 부끄럽게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시청자 여러분, ‘부끄러움’을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이 KBS의 주인입니다.

김소영/ KBS기자 (1기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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