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막돼먹은 영애씨’ 열 번째 시즌 맞은 배우 김현숙

“다른 여배우들은 살찌면 난린데, 전 살 빠지면 난리예요.” 

날씬하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고, 성격도 까칠한 그녀. 티브이엔(tvN)의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의 주인공을 맡아 10번째 시즌을 끌어가고 있는 배우 김현숙(35)은 지난 5월 말 경기도 고양시의 촬영장으로 찾아간 <단비뉴스> 기자에게 이렇게 너스레를 떨었다. ‘너무나 현실적인 몸매’ 때문에 늘 다이어트 강박증에 시달리는 영애씨를 연기하느라 김현숙은 일반적인 ‘여배우다움’을 포기한 지 오래다. 그녀는 이날 찍어야 하는 36씬(장면) 중 2씬 밖에 쉬지 못하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호탕한 웃음을 잃지 않고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 시즌10까지 온 <막돼먹은 영애씨>(tvN). 극중 영애가 현실에 찌든 여성의 삶을 살고 있는 반면, 배우 김현숙은 현실을 즐길줄 아는 당찬 여성이다. ⓒ 허정윤

과장 승진에, 잘생긴 애인...그래서 불안한 영애씨

<막돼먹은 영애씨>는 지난 2007년 4월 첫 방송 이후 6년간 시청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으면서 ‘케이블계의 전원일기’로 불릴 만큼 장수하고 있다. 보통 케이블방송 시청률은 1%만 넘어도 ‘대박’이라고 하는데, <영애씨>의 시즌9는 최고 시청률 2.86%(AGB닐슨)을 기록했고 이번 시즌10 역시 평균 시청률 1.42%에 최고 시청률 1.89%를 기록하고 있다. 외모지상주의가 판치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 차별이 만만찮은 직장생활을 씩씩하게 헤쳐 나가는 ‘막돼먹은 노처녀’에게 직장여성들의 응원이 몰린 덕이다.

보통 시즌제 드라마는 전작의 중심 배우들이 교체 없이 출연해야하고 극의 배경이 바뀌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오래 끌고 가기 어려운 포맷(형식)으로 꼽힌다. 하지만 <영애씨>는 국내 처음으로 시즌10까지 이어지며 인물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줘 ‘드라마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즌4까지는 16부작으로 방송됐지만 시즌5부터는 20부작으로 확대 편성됐다.
 

▲ <막돼먹은 영애씨>는 매 시즌마다 '폭풍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인기를 끌고 있다. ⓒ tvN

시즌10에서 영애씨는 조금 달라졌다. 한동안 ‘구박덩어리’에 비정규직이던 그녀가 직장에서 과장으로 승진하고, 잘생긴 남자친구까지 얻었다. 술술 잘 풀리는 그녀의 모습은 이제 다수의 ‘찌질한’ 직장여성들이 공감하기 힘든 수준까지 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영애씨는 이런 지적을 곧바로 반박했다.

“잘나간다고 해봐야 작은 사무실 안에서일 뿐이에요. 이제는 부하직원과 상사 사이에 샌드위치 신세인걸 뭐! 차라리 후배였을 때가 편했어요. 그리고 산호(애인)도 슬슬 콩깍지가 벗겨지는 중이라 연애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구요.”

그녀의 예언대로 영애씨와 애인 산호는 최근 회에서 결별했다. 잘 나가는 듯 했던 영애씨의 삶은 또 꼬이고 있다. 이번 시즌에서 김현숙이 연기하는 영애씨는 외형적으로 직장에서의 형편이 나아졌지만 사실은 힘든 하루하루를 겨우 버티는 30대 중반의 여성이다. 사랑 앞에서 ‘쿨’하지 못하고, 집에서는 시집 못간 노처녀로 구박받고, 직장에서는 위아래로 치이는 신세다. 새로운 시즌이 시작될 때마다 영애씨는 진화하지만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는 그녀의 애환에 20~30대 직장여성들은 여전히 공감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 영애와 산호의 쿨하지 못한 사랑, 이대로 끝나고 말 것인가? ⓒ tvN

<영애씨>는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종영될 예정이었지만 시청률 잘 나오는 드라마에 회사 측이 미련을 갖고 있어 시즌11이 제작될 가능성도 없진 않다고 한다. 어쨌거나 조만간 김현숙은 <영애씨>를 떠나보내야 할 것이다. 그녀는 그 후 어떤 도전을 할까.

“케이블, 공중파를 떠나서 ‘휴먼 코미디’를 하고 싶어요. 영화 쪽으로는 스릴러(공포물)도 좋고요. (출연하는) 분량을 떠나서 제가 연구할 거리가 있는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도전하고 싶은 장르와 연기에 대한 구상이 확실했다. 그녀는 지난 2006년까지 한국방송(KBS)의 <개그콘서트> 무대에서 외모지상주의와 저출산 세태를 비판하는 ‘출산드라’로 각광받았던 개그우먼 출신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는 개그보다 드라마 연기가 주전공이다. <영애씨>는 지난해 뮤지컬로도 제작됐는데 그녀는 이 뮤지컬의 주연배우로서 2012년 제 6회 대한민국 뮤지컬 어워즈의 신인여우상을 받기도 했다.

▲ 배우 김현숙은 빡빡한 촬영 스케쥴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촬영장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한다. ⓒ 허정윤

힘들게 헤쳐 온 20대, 후배들도 꿈을 갖길

<영애씨>를 통해 2030 직장여성을 대변하는 인물로 부상한 김현숙은 “요즘 20대는 자신의 꿈이 뭔지 모르는 경우가 많고, 그 꿈을 실현 시킬 힘조차 없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좀 더 폭 넓게 경험하고, 각자의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해야 할 나이인데 매스컴의 영향으로 외모지상주의에 물들거나 취업난과 생활고에 허덕이다 꿈을 포기하는 20대들이 많아 서글프다는 것이다. 

“저도 힘들었지만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죽어라 노력했죠. 그러다 보니 결국 잠재력을 발휘해서 꿈을 이룰 수 있었고요. 지금 20대들도 어렵겠지만 힘을 냈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빠듯한 스케줄 속에서도 국내외에서 봉사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에는 미얀마 난민촌에서, 올해는 국내 맹학교에서 청소년들을 도왔다. 그녀는 봉사활동을 통해 현재 자신이 얼마나 감사한 삶을 살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어, 주는 것보다 얻는 게 많다고 말했다.

앞으로 10년 후 쯤에는 부산에서 청소년복지관을 운영했던 어머니와 함께 청소년 수양관을 짓고 교육과 상담, 정신치료를 통해 어려움에 처한 청소년들에게 ‘터닝 포인트’를 마련해 주고 싶다는 또 다른 꿈을 가진 그녀. <막돼먹은 영애씨>가 극중에서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의리파 언니’이듯, 현실의 김현숙은 ‘된 사람’의 향기가 물씬한 연기파 배우였다.
 

▲ 그녀에게 연기는 삶의 원동력이다. 그리고 이제는 또 하나의 나눔이다. 등장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영애' 김현숙. ⓒ 허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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