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수천 억짜리 불꽃놀이 잘 봤다.”

▲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과학기술위성 2호를 실은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I)’는 이번에도 ‘하늘의 문’을 열지 못했다. 3박 4일간 전남 고흥에 있는 나로우주센터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한 지인은 내게 그렇게 말했다. ‘불꽃놀이’란 단어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지난해 1차 발사 실패 이후 온갖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했던, 발사성공이란 외길만 바라보고 달려온 연구원 수십 명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난 6월 11일 나로우주센터 안에 있는 발사지휘센터. 교육과학기술부 소속 중앙기자단을 대표해 지휘센터를 취재했다. 이곳 상황을 스케치해 중앙기자단 선배들에게 ‘풀’하기 위해서였다. 나로호 발사 관련 일을 총괄하는 민감한 곳인 만큼 중앙지와 지역지에서 각 한 명씩 들어갈 수 있었다. 오후 4시를 넘어서자 내빈들이 하나둘 자리를 메웠다. 유리벽 너머에서는 연구원 25명이 분주히 움직였다.

오후 5시 1분.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5. 4. 3. 2. 1. 발사!” 지휘센터 옥상에서 나로호가 떠오르는 모습을 본 정운찬 국무총리, 안병만 교과부 장관, 서남표 KAIST 총장 등 내빈 수십 명은 환호성을 질렀으나, 연구원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중앙 모니터를 응시했다. 조광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발사체본부장은 입술을 깨물었다.

나로호가 발사된 지 4분여가 지나자 조 본부장이 마이크가 달린 헤드셋을 벗고 옆에 있던 수화기를 들어 통화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차, 싶었다. 1차 발사 때 지휘센터를 취재한 선배의 말이 생각났다. “조광래 본부장이 전화통화하면 어딘가 잘못된 거니까 잘 살펴라.” 아니나 다를까, 나로호와 통신이 끊겼다는 방송이 나왔다. 나로호가 발사된 지 8분 24초 되던 순간이었다. 고개를 떨어뜨리는 연구원 모습이 보였다. 환호와 기대는 탄식으로 바뀌었다. 

정운찬 국무총리는 “무소식이 희소식 아니겠느냐”며 격려했으나 분위기는 나아지지 않았다. 지금 심정을 말해달라는 내 질문에 안병만 교과부 장관은 “할 일이 있다”며 지휘센터를 벗어났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눈시울을 붉히던 백홍열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의 말이었다.

“우주산업이란 게 실패를 딛고 일어서야 발전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이번에 무조건 성공해야 했다.”

 
“무조건 성공해야 했다”는 말에는 그간 받았던 중압감이 그대로 실려 있었다. 그 말에 느낀 숙연함도 잠시였다. 프레스센터로 내려온 나는 정신없이 전화를 걸었다. 발사성공을 전제로 준비해둔 기사들을 모두 다시 써야하는 상황이었다. 백 명도 넘는 기자들이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방송기자들은 그 자리에서 바로 리포팅을 했다. 프레스센터는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그리고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에서 선배들은 이번 실패로 우주발사체 연구가 부실해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국민들은 나로호 발사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수천억 원이 들어간 ‘돈 잔치’라고 봤을까, 아니면 다음번 발사성공을 위한 밑거름이라 여겼을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우주 선진국이라 불리는 미국·일본·영국도 자국의 우주발사체로 위성을 발사하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다. 실제 우주발사체를 개발해 처음 발사할 때 성공률은 27.2%에 그친다.

더 확실한 사실은 발사 실패를 ‘불꽃놀이’라 폄훼하기엔 연구원들이 쏟아 부은 열정과 경험 자체가 너무나 값진 성과로 남았다는 점이다. 지금 필요한 건 비아냥거림이 아니라 격려를 보내면서 다시 묵묵히 기다리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도 일부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은 나로호 발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으리라. 정치사회적 이슈를 덮고 여론을 돌리는 데는 나로호 발사나 월드컵 축구만한 국가적 이벤트가 없다.

▲ 변태섭  기자
어쩌면 국민적 학습효과 때문인지도 모른다. 과거 집권자들 중에는 돈 넣으면 물건 나오는 자판기처럼 과학자들에게 연구성과를 재촉하는 이도 있었다. 혹시 획기적인 성과가 나오면 집권자가 자신의 공로인양 나서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들은 물론 실패에 대해서는 책임지는 경우가 없었다. 성공도 실패도 과학은 과학자의 몫으로 돌려져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경구도 맞아떨어지는 날이 올 것이다.

변태섭/ <동아사이언스> 기자(1기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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