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4년 만에 2배 이상 늘어…미국은 유해수종 지정

칡이 우리 숲을 병들게 하고 있다. 하루에 줄기가 30cm 이상 자랄 정도로 생장력이 강한 칡덩굴이 산림이나 도로 주변 등에서 퍼지면서 나무를 고사시키거나 시설물에 손상을 가하는 것이다. 뿌리로 차를 만들어 마시거나 한약재로 유용하게 쓰이는 칡이 산림의 파괴자가 되고 있다.

칡 점령 면적 4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어

칡이 점령한 면적은 해마다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9월 산림청 자료를 보면 칡이 점령한 면적은 지난 2017년 2만 1000헥타르(ha)에서 2018년 3만 4000ha로 1년 만에 50% 이상 늘었고, 2021년에는 4만 5000ha로 늘었다. 2017년부터 불과 4년 만에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도로 주변의 칡덩굴 분포 면적도 2017년 5000ha에서 2022년에는 1만 2000ha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백두대간 소백산국립공원 부근에 거대한 칡덩굴 군락이 수십 년 된 소나무와 참나무를 휘감으며 숲과 나무들을 고사시키고 있다.  최영길 기자
백두대간 소백산국립공원 부근에 거대한 칡덩굴 군락이 수십 년 된 소나무와 참나무를 휘감으며 숲과 나무들을 고사시키고 있다. 최영길 기자

지난달 25일 기자가 찾은 충청북도 단양군 단양읍 금곡리 소백산국립공원 부근의 산기슭은 온통 칡이 점령하고 있었다. 경작지와 숲 사이의 언덕을 점령한 칡은 점차 나무가 있는 쪽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거대한 군락을 이룬 칡이 수십 년 된 소나무와 참나무를 휘감으며 조금씩 나무들을 고사시키는 것이다.

강원특별자치도의 정선·평창·영월과 충북 제천·단양 일부 지역은 칡덩굴이 위치를 가리지 않고 대규모로 번지고 있다. 강한 번식력을 가진 칡덩굴은 소나무, 참나무 등 수목의 줄기를 휘감고 올라가며 나무에 수분 공급을 방해하고, 무성한 잎은 음지를 만들어 주변의 많은 수풀을 고사시키고 있다.

31번 국도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덕포리 부근의 터널. 터널 입구 주변으로 칡덩굴이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다.  최영길 기자
31번 국도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덕포리 부근의 터널. 터널 입구 주변으로 칡덩굴이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다. 최영길 기자

도로 주변은 특히 칡이 번성하기 쉬운 곳이다. 지난달 25일 둘러본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덕포리 국도에 있는 터널 주변도 온통 칡이 뒤덮고 있다. 31번 국도가 지나가는 영월군에 있는 터널은 대부분 이런 모습이었다. 칡은 넓게 퍼질 뿐만 아니라 빛을 좋아해 무엇이든 높은 곳으로 타고 올라가는 습성이 있다. 큰 나무라도 한번 칡 덩굴이 줄기를 휘감고 올라가면 더 이상 성장할 수조차 없다.

나무를 끝까지 타고 올라가 완전히 뒤덮어 버리면 소나무처럼 양지에서만 자라는 나무는 고사하게 된다. 특히 칡은 추위에 강해 뿌리뿐만 아니라 덩굴까지 상당 부분 월동하기 때문에 한번 칡의 공격을 받은 나무는 사람이 칡덩굴을 제거해주지 않는 한 회복이 불가능하다.

한번 칡이 나무 휘감으면 자연 회복 어려워

이 때문에 지금 칡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수십 년 동안 애써 가꿔온 숲을 크게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림기술경영연구소 이상태 박사는 “산림이나 조림지에 칡이 관리가 안 되고 있으면 우리가 원하는 숲이나 나무들이 칡 때문에 다 고사하거나 망가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오랫동안 칡의 특성과 방제 방법을 연구해온 이 박사는 산림 훼손과 함께 도로 주변에 자리 잡은 칡이 전신주는 물론 신호등 같은 교통안전을 위한 시설물까지 감고 올라가 안전사고를 유발할 위험도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도 우리나라처럼 사방용으로 칡을 심었다가 관리가 안 돼 결국 2000년대 들어 유해 수종으로 지정해 제거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 박사는 “미국의 경우 칡덩굴을 계속해서 제거하지 않아 전깃줄을 감고 있는 칡덩굴의 무게로 인해 단전되거나 화재가 발생하는 사례도 자주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박사는 지난해 12월, 국립산림과학원 산림기술연구소가 발행한 산림과학속보에도 칡의 특성과 물리적 방제 방법을 사례와 함께 소개했다. 이 박사는 여기서 칡덩굴은 초기에 발견해서 빨리 대응해야만 급속한 확산을 막을 수 있다면서, 산림 주변이나 도로변을 관심을 갖고 살펴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충북 단양군 매포읍 KTX 중앙선 철도 선로 주변에 거대하게 자리 잡은 칡덩굴 군락. 최영길 기자
충북 단양군 매포읍 KTX 중앙선 철도 선로 주변에 거대하게 자리 잡은 칡덩굴 군락. 최영길 기자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도로 주변은 물론 철도 선로 주변에도 칡이 방치된 채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들이 있다. 드론을 이용해 하늘에서 내려다본 KTX 중앙선 철도 선로 주변은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사각지대였다. 진한 녹색의 칡덩굴이 넓게 자리를 잡고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칡덩굴이 철도 선로까지 들어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한국철도공사 대전충청본부 관계자에게 사진을 보여주자 이렇게까지 칡덩굴이 퍼진 줄은 몰랐다며 열차 운행에는 지장이 없도록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행정기관들도 칡덩굴 문제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충북 제천시청 산림공원과 관계자는 “산림의 경제적·공익적 가치를 증진하기 위한 ‘조림사업’을 할 때나, 수목의 성장에 방해가 될 경우 칡덩굴 제거 작업을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임야의 소유자가 신청할 경우에도 칡덩굴 제거 작업을 한다”면서 “도로변의 칡덩굴은 도로 관련 부서에서 제거 작업을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설명과는 달리 앞에서 본 것처럼 도로 주변의 칡은 계속 퍼지고 있다. 당국이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도로변 낙석 방지망까지 잠식하는 등 곳곳에서 무성하게 번지는 칡을 보면 관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가 생활하는 마을 주변까지 칡이 번지고 있다.

지난달 25일 드론으로 촬영한 충북 단양군의 생태체육공원. 도로 옆 경사면을 가득 채운 칡덩굴은 주변 화단까지 뻗어가고 있다. 최영길 기자
지난달 25일 드론으로 촬영한 충북 단양군의 생태체육공원. 도로 옆 경사면을 가득 채운 칡덩굴은 주변 화단까지 뻗어가고 있다. 최영길 기자

“단양 생태공원은 정말 잘 만들었어요. 파크골프를 즐기는 인구도 많이 늘었고,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도 많이 늘었어요. 그런데 저기 보이는 칡덩굴이 옆에 있는 화단까지 다 망칠 지경입니다.”

지난달 25일 충북 단양생태체육공원 파크골프장에서 만난 주민 전복태(71) 씨의 이야기다. 운동을 하기 위해 공원을 자주 찾는다는 그는 단양군에서 많은 돈을 투자해 꽃을 심고 화단도 조성했는데 칡덩굴이 훼손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특히 "급속도로 번식하는 칡덩굴로 인해 파크골프장 주변도 위험하다"고 전 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대응 시기 늦을수록 방제 어려워져…종합적 대응 시급

칡덩굴 제거를 위한 방제작업은 화학적·물리적 방제법이 있다. 칡뿌리에 구멍을 뚫고 약제를 주입하는 화학적 방제법의 경우 아무리 좋은 약제라도 환경적 문제로 지속적인 사용은 어렵다. 칡의 줄기 머리 부분을 자르거나 뿌리를 캐내는 물리적 방제에는 많은 인력이 투입되는 어려움이 있다.

이상태 박사는 “칡은 제거 작업 시기를 놓치면 강한 번식력으로 인해 다음 해에는 더 제거할 분량이 늘어나기 때문에 힘들더라도 지금 시작해야 작업 대상과 물량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가 칡덩굴이 확산된 지역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산림 전문가 등과 협력해 확산을 억제할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 산지 인근 주민들을 대상으로 칡덩굴 문제를 제대로 알리는 것도 필요하다. 지금도 중요한 약재로도 쓰이는 등 워낙 친숙한 식물이라 사람들이 칡의 위험성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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