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Fan] 부천영화제 자원활동가 인기몰이 이유

너무 더워 공부하기도 힘들다. ‘공부를 놓는 기간’인 방학(放學)이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대학생들은 학기중보다 더 바쁘다. 좁은 취업문을 뚫기 위해 여름방학은 계절학기, 토익, 인턴, 속성 다이어트 등 단기간에 ‘스펙 벼락치기’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 기업들이 학점이나 토익 점수가 몇 점 높은 학생들보다 지원 분야의 실무 경험이나 도전정신, 열정, 창의력을 보이는 지원자들을 뽑는 경향을 보이면서 대학생들 사이에서 ‘스펙’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누구나 가진 스펙으로 눈에 띄는 자기소개서를 만들 수 없고 특별한 경험 없이 서류심사를 통과하기 어려워지면서, 강의실 바깥으로 나가 경험을 쌓는 것이 입사준비 관행이 됐다. 올해로 16번째 열리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PiFan)는 특히 수도권에서 여름방학 때 열리는 영화제여서 자원활동가(일명 ‘피파니언(PiFanian)’)가 되는 것만도 행운이다.

피파니언 선정 '하늘의 별따기'

 

▲ 부천 어울마당에 모인 제16회 피파니언들이 발대식을 마친 뒤 열정적인 활동을 다짐했다. ⓒ PiFan

이번 피파니언 모집은 326명을 뽑는데 2,390명이 몰려 7.3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작년 경쟁률 6 대 1에서 올해 660여 명이 더 지원해 역대 최다지원 기록을 바꿔 치웠다. 지원 분야는 기술, 마케팅, 운영, 총무회계, 홍보 등 총 9팀 42개 영역으로 관심 분야에 따라 지원하도록 했다. 지원자 대다수는 대학생이지만, 국내 거주 외국인과 열흘 동안 휴가를 내고 참여한 40대 회사원도 있다. 부천영화제 운영팀 자원활동가 담당 한만영 씨는 “올해부터 만 18세 이상으로 지원자격을 상향조정했는데도 지원자가 늘었다”며 “영화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높아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평가했다. 

국내 3대 국제영화제 중에서 부산이나 전주와 달리 수도권인 부천에서 열린다는 점이 수도권에 몰려있는 대학생들의 많은 참여를 이끌었다. 영화제 기간도 방학인 7월이어서 학기중에 열리는 전주(4~5월), 부산(10월) 영화제보다 참여 부담이 덜한 이유도 있다.

피파니언 선발은 1차 서류전형과 2차 면접전형 등 치열한 경쟁을 통해 이루어진다. 선발된 뒤에도 전체•팀별 세부교육을 이수하고 발대식에 참여해야 비로소 '피파니언'이라는 이름을 달 수 있다. 지난 22일, 높은 경쟁률에 맞서 당당히 피파니언으로 선정돼 축제 현장을 누비고 있는 자원활동가들을 만났다. 햇볕이 내리쬐는 무더운 날씨에도 피파니언들은 저마다 배치된 공간에서 뜨거운 열정을 쏟고 있었다.

지원동기 저마다 다르지만 "피판은 매력적"

올해는 특히 외국어, 마케팅 등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경험을 쌓으려는 대학생 지원자들이 많았다. 경영에 관심이 있어 마케팅팀에 지원했다는 대학생 연지혜(24․여․서울)씨는 기념품 지원 분야에 배치돼 관객들에게 티셔츠, 우산, USB, 머그컵 등 영화제 기념품을 판매한다. 그는 “가격, 상품 배치, 마케팅 전략 등 회의를 할 때 자원활동가들의 의견이 반영되기 때문에 공부가 된다”고 말했다. 에어컨이 고장 나 열기가 후끈한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일하는 그에게 힘들지 않냐고 묻자, “어떤 일을 하더라도 어려운 점은 있기 마련이니 괜찮다”며, “힘들수록 팀원끼리 친해져 좋다”고 말했다. 

 

▲ 마케팅팀 소속 피파니언 연지혜(왼쪽)씨는 컨테이너 박스에 마련된 기념품 샵에서 상품 배치와 판매 업무를 한다. ⓒ 양승희

미술경영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김혜인(22․여․인천)씨도 전시행정 관련 실무 경험을 배우려고 전시행사팀에 지원했다. 부천만화박물관에 배치된 그는 박물관 관람객들에게 이벤트 행사를 지원하는 일을 한다. 그는 “작년 8월 부천만화축제에서 자원활동을 했는데 업무에 매력을 느껴 부천영화제에도 지원했다”며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데 자원활동가들끼리 친해지고 관객들과 교감할 수 있어 즐겁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다른 축제에서 이미 한 번 자원활동을 경험해본 대학생들이 일에 즐거움을 느껴 이후 계속 지원하는 경우도 많다. 부천만화박물관 안내데스크에 배치된 임가영(22․여․부천)씨 역시 지난 5월 서울여성영화제에 참여했다가 부천영화제까지 참여했다. 그는 “영화를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고 전공(행정학과)도 관련이 없지만, 자원활동을 계기로 영화와 영화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부천시민으로서 시 축제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셔틀버스에서 안내 방송과 길 안내 일을 맡고 있는 대학생 김미리(23․여)씨는 “경기도 시흥인 집에서 부천까지 1시간 넘는 거리지만, 방학 때 색다른 경험에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지원 동기를 밝혔다. “자기소개서에 쓸 수 있는 재료가 될 수 있고, 봉사시간을 인정받는 것도 좋지만, 피파니언 활동은 아르바이트나 학과 공부에서 얻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라며 매력을 꼽았다.

영화관에서 검표와 관객 안내를 담당한 상영관지기 제민진(23․여․서울)씨는 “상업영화와 달리 좀비, 귀신 등이 등장하는 호러영화를 좋아해 피파니언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장르영화 축제인 피판은 그의 취향에 딱맞는 영화제인 셈이다. 그는 “회사에 가기 전, 신나고 활동적인 일을 해보고 싶었다”며 “시간이 더 지나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즐기는 방법으로 피파니언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스펙과 상관없이 그저 좋아서 하는 일"

 

▲ 노리단 퍼레이드에 참여한 피파니언들이 신나게 축제를 즐기고 있다. ⓒ PiFan

각자 업무 말고도 자원활동가들은 거리 퍼레이드나 파티 같은 행사에 참여해 축제의 중심에 설 수 있다. ‘PiFan과 놀고, 일하고, 사랑하자!’는 활기찬 슬로건에 맞게 다채로운 행사가 많다. 지난 7일 모든 피파니언들이 부천시청 어울마당에 모인 발대식 때, 사무국은 피파니언만을 위해 영화 <나시레막 레시피>를 상영했다.

작년부터는 역대 피파니언들을 초대해 '홈커밍데이' 파티를 열었다. 한만영 담당자는 “16회 동안 영화제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가장 큰 도움을 준 역대 자원활동가들에게 감사함을 표현하고자 여는 행사”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 밖에도 ID카드를 발급해 영화 할인혜택을 주는 등 자원활동가들과는 지속적인 인연을 맺는다.

피파니언에게는 상징인 빨간 유니폼과 하루 활동비 1만 4천원, 각종 기념품, 그리고 봉사활동 인증서를 비롯한 참여증서가 주어진다. 7월 19~29일 열흘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오전 8시반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한다. 하루 9시간 넘도록 일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사실 나 자신도 2009년에 제13회 피파니언으로 활동했다. 당시 기술팀에 배치돼 시원한 영화관 안에서 비교적 편하게 일했는데, 이번 취재를 통해 야외에서 땀 흘리며 고생하는 피파니언들이 많음을 발견했다.

 

▲ 부천만화박물관에서 이벤트 지원 업무를 맡은 피파니언 이소영(왼쪽)씨와 김혜인씨. ⓒ 양승희

좋아서 자발적으로 참여했지만 활동에 불만은 없을까? 부천만화박물관에서 만난 대학생 이소영(21•여•서울)씨는 “영화제 자원활동이라고 해서 평소 볼 수 없던 영화를 많이 볼 줄 알았는데, 영화와 상관없는 곳에 배치돼 아쉽다”고 말했다. 김혜인씨는 “주먹밥, 음료수 같은 간식을 챙겨주지만 하루 반나절을 보내는데 식사 시간을 제대로 챙겨주지 않는 점이 좀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활동 여건이 개선돼 내년 피파니언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일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레드카펫, 스타, 영화같은 반짝반짝한 것에 주로 스포트라이트가 향하지만, 정작 부천영화제를 움직이는 것은 빨간 티셔츠를 입고 축제 현장 곳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피파니언 326명이었다. 대학생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피파니언에게 부천영화제는 단지 스펙 쌓기 만을 위한 수단이 아닌, 흥미있는 분야에 도전해 자신의 젊음을 불태우는 현장이었다. “스펙과 상관없이 그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피파니언의 열정을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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