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오재우 화가와 오은 시인 ‘별이 빛나는 밤에’

"열정이 있는 사람은 쉽게 패배하지 않아”

"텅 빈 캔버스 위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삶이 우리 앞에 제시하는 여백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삶이 아무리 공허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더라도, 아무리 무의미해 보이더라도, 확신과 힘과 열정을 가진 사람은 진리를 알고 있어서 쉽게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다.” (반 고흐가 테오에게 쓴 편지. 1883. 3. 21~28.)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 캔버스에 유채, 73.7x92.1cm, 1889년,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

네덜란드 후기 인상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가 쓴 편지들에는 그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있다. 그래서 감동적이다. <별이 빛나는 밤>(1889) <해바라기>(1888) 등으로 잘 알려진 고흐는 그의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로도 유명하다. 현재 남아 있는 고흐의 편지는 모두 909통이다. 그 중 668통이 테오에게 쓴 것이다. 이 편지들은 고흐의 삶과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미래의 글쓰기와 그리기

시각예술을 하는 화가 오재우(29)와 시인 오은(30)이 함께 기획한 전시 ‘별이 빛나는 밤에’는 고흐의 그림과 편지처럼 미술과 문학의 만남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기획의 제목도 고흐의 작품 <별이 빛나는 밤>(1889)에서 따온 것이다. 이번 기획은 글쓰기와 그리기가 인간 본성과 맞닿아 있는 본능적 행위라면 미래의 글쓰기와 그리기는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됐다.

▲오은 시인(왼쪽)과 오재우 화가가 전시된 그림과 편지 앞에서 관객들과 대화하고 있다. ⓒ 이지현

화가 오재우와 시인 오은은 각각 미래의 고흐와 테오의 역할을 맡았다. 오은은 200년 뒤 화가 오슬로 역할을, 오재우는 그를 지원하는 동생 오블로 역할을 한다. 고흐와 테오처럼 오슬로와 오블로 역시 편지를 주고받는다. 오슬로는 자신이 그린 그림에 대해 설명하고 오블로는 그 그림을 상상한다. 실제 그림은 오슬로와 오블로가 주고받은 편지내용을 이미지화해 그려낸 것이다. 언뜻 고흐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이들 그림은 편지와 함께 나란히 전시돼 있다.

“의욕이 있는 한 끝까지 가보고 싶어”

전시장 한 켠에는 이들이 주고 받는 편지의 내용을 음성으로 들을 수 있는 방이 있다.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이 방에서 관객들은 슬로와 블로의 대화를 들으며 그림을 상상할 수 있다.

“블로야, 형은 요즘 의욕이라고 부를 만한 어떤 것이 생기고 있는 중이다. 끝까지 한번 가보고 싶어. 거기에 뭐가 있어도 있을 테지. 의지를 다지기 위해 다시 젊을 적에 찍은 예의 사진을 들여다본다. 입술은 앙다문 채 왼손으로 담배 한 개비를 들고 있는 내가, 그 안에 있다. 딱 그 당시의 나 자신이 그랬어. 욕심도 많고, 고집도 많이 부리고, 열정도 넘쳤지. 지금의 나는 ‘결핍의 나’지만 당시의 나는 ‘과잉의 나’였던 셈이지. 둘 다 나쁘지 않다. 적당히 있는 것보다는 아예 없거나 엄청 많은 것이 더 좋으니까. 그러므로 이번 그림은 결핍이 과잉을 대하는 바로 그 ‘시선’이 담길 테지.” (슬로가 블로에게 쓴 편지. 2212. 4. 30.)

▲오슬로(Oh Slogh) <자화상>(Self Portrait)、oil on canvas, 70x50cm, 2212.

"내가 처음에 그렸던 그림을 기억하니? 그것의 딱 반대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그러니까 아래서 위를 올려다보는 버전인 셈이지. 저번에 그린 그림이 마천루의 위에서 땅을 내려다보는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가장 낮은 곳에서 마천루의 끝을 바라보는 구도가 될 거야. 맹목적일 정도로 창백한 하늘의 색, 저 멀리 아득한 건물 끝에서 느껴지는 잔혹함과 날카로움, 창들에 비치는 어두운 그림자… 이런 것들이 작품 속에 돋보이게 될 테지. 그래서 나는 며칠 안으로 내려갈 거야. 무시무시할 테지만, 마주해야겠지, 수많은 사람들을, 결코 이길 수 없는 더위를, 더위보다 더 뜨거운 사람들의 야심을. 문득 팔뚝 위로 한 무리의 개미 떼가 기어가는 느낌이 난다. 간지럽다. 따끔따끔하다. 이 느낌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이상하다." (슬로가 블로에게 쓴 편지. 2212. 5. 31.)

▲오슬로(Oh Slogh) <별이 빛나는 밤2>(Starry Night02)、oil on canvas、150x100cm、2212.

130여 년 전 고흐의 편지를 보면 그가 고민하는 삶과 예술, 열정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그가 얼마나 진지하게 그림을 그리고 치열하게 고민했는지도 엿볼 수 있다.

“진정한 화가는 양심의 인도를 받는다. 화가의 영혼과 지성이 붓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붓이 그의 영혼과 지성을 위해 존재한다. 진정한 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캔버스가 그를 두려워한다.” (반 고흐가 테오에게 쓴 편지. 1885.)

문지문화원 ‘사이’ 이어 예술의전당 전시

고흐가 매번 마주쳤던 텅 빈 캔버스와 달리 지금 시대는 인터넷을 통해 시공간을 넘나드는 가상의 공간에서도 창작이 이루어진다. 이번 전시는 미래의 글쓰기와 그리기, 앞으로 다가올 창작의 방식에 대해 고민한 시인 오은과 화가 오재우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기회다. 지난 15~16일 이틀간 신촌 ‘문지문화원 사이’에서 열린 ‘별이 빛나는 밤에’는 <파이낸셜 뉴스>가 주최하는 ’10 Curators & 10 Futures’에 선정돼 29일부터 다음달 21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전시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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