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조된 6인조 ‘파업 장기화와 몰골들’ 현장서 인기몰이

 

 

▲ 15일 밤 두번째로 열린 'KBS 개념 탑재의 밤'에서 공연 중인 '파업 장기화와 몰골들'. ⓒ 이승환

 

지난 7일 밤 처음 열린 KBS 새 노조의 '시민과 함께하는 KBS 개념 탑재의 밤'을 계기로 여의도에 밴드 하나가 떴다. 노래나 연주실력이 엄청난 것은 아니지만, 화려하고 신나는 퍼포먼스로 현장의 분위기를 화끈하게 달군 그들은 라디오 PD 다섯으로 구성된 '파업 장기화와 몰골들'. 성공적인 첫 공연 덕에 드러머도 '공채'로 영입했다. 두 번째 '개념 탑재의 밤'이 시작되기 직전인 15일 오후 6시 서울 여의도 KBS 부근 한 카페에서 그들을 만났다. 인터뷰에는 여섯 멤버 중 다섯이 참석했다. 
 
"PD들은 창의력 집단이죠. 가열찬 투쟁보다는 즐거운 투쟁을 위해 라디오 PD들이 나섰습니다."

팀의 리더이자 보컬을 맡고 있는 박용훈 PD는 파업을 최대한 흥겹게 이끌어가기 위해 라디오 PD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다 밴드를 결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기자, 아나운서, TV PD 등 각 직군별로 <추적 6분> <파업 뉴스> 등 개성 있는 패러디 프로그램을 준비하기로 했는데, 음악 매니아가 많은 라디오 PD들은 밴드로 의기투합했다는 것이다.

 

결성 1주일 안 된 첫 무대에도 폭발적 반응  

지난 1일 파업이 시작된 직후 결성했고, 7일 첫 공연을 했으니 연습인들 제대로 했을까? 공연 직전 한 번 만나 맞춰본 뒤 곧바로 무대에 올랐다. 그런데도 반응은 폭발적. 15일 밤 두번 째 행사에서 진행자 우현경 PD가 “이번 파업의 최대 수혜자”라고 소개할 정도로 현장의 '스타'가 됐다.

급조된 데다 연습도 부족했던 이 밴드가 단숨에 무대를 장악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멤버 각자가 평소 '한 가락 한다'는 소릴 들었을 만큼 나름대로 '재야의 고수'들이었기 때문. 특히 기타를 맡은 이충언 PD는 싱글앨범까지 낸 음악인이다. 리더인 박 PD는 직접 개사를 한다. <담배가게 아가씨>를 비틀어 쓴 <개념광장 아가씨>같은, 흥겹고도 의미 있는 노래로 객석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첫 공연 때 "드러머가 필요하다"는 얘길 듣고 뒤늦게 합류한 윤성현 PD는 15일이 첫 무대였지만 능숙하고도 현란한 연주 솜씨를 보여주었다.

이들 모두가 '무대 체질'은 아니다 . 베이스를 맡은 지성찬 PD는 "처음엔 그냥 조합원 수백 명 앞에서 하나 보다 했는데, 시민문화제로 발전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꽤 긴장했다"고 말했다. 

"파업 장기화와 몰골들'이라는 이름은 '장기하와 얼굴들'을 패러디한 것이지만, 이름대로라면 파업이 오래 갈 것을 전제하고 있는 셈. "그건 아니고요,  혹시 장기화하더라도 즐겁게 참여하겠다는 의미로 봐 주시면 좋겠네요." 키보드를 맡고 있는 김경정 PD의 설명이다.

두고 온 프로그램 걱정에 마음은 무겁지만

인터뷰에 나온 멤버들 모습은 이름에 비해서는 ‘꽤 괜찮은’ 몰골이었다. 생각보다 말끔하다는 지적에 윤 PD는 “자동차 노조 등이 하는 격한 파업만 생각해서 그런 거 아니냐”며 “우리는 즐겁게 투쟁한다”고 다시 강조했다. 하지만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마음까지 마냥 편한 것은 아니다. 김경정 PD는 “각 프로그램은 PD들에게 자식이나 마찬가지"라며 “두고 온 프로그램이 걱정되고, 우리 몫을 대신하는 선배들 생각에 마음이 불편하다"고 털어놓았다. 김 PD는 그러나 "방송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잠시 일자리를 떠나 있을 뿐”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윤성현 PD도 “일을 떠나 있는 동안 노동자에게 일하는 것의 가치가 어떤 것인지 새로이 인식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성찬 PD는 “새 노조가 KBS 내부에서도 아직 힘이 약한 상황이라, 이번 파업에서 서로 뭉치고, 우리의 힘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며 “좋은 방송 만들고자 이제 첫발을 뗐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방송, 공정한 방송을 쟁취할 때까지 쉬지 않고 걸어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김경정 PD는 “대체 인력이 없는 사람들, 즉 아나운서 같은 필수 인력이 파업에 참여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인데 아나운서 조합원들이 오늘부터 파업에 동참한다"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보통 파업이 오래 가다보면 이탈자가 생기게 마련인데, KBS 새 노조는 파업 15일 만에 조합원수가 오히려 100여명이 늘어난 950여명이 됐고, 파업 현장의 열기도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 두 번째 공연을 앞두고  KBS 근처 카페에서 만난 '파업 장기화와 몰골들' 멤버. 왼쪽부터 박용훈, 지성찬, 김경정, 정현재, 윤성현 PD. ⓒ 이승환

 
 더 뜨거워지는 파업 열기, 승리할 때까지 즐겁게 간다  

 

일터를 떠나 있으면서도 그들은 '파업 이후'를 생각하고 있었다. 김경정 PD는“라디오는 TV처럼 1주일에 하나가 아니라 매일 만들기 때문에 사실 자신의 프로그램을 차분히 돌아볼 기회가 없는 편"이라며 "파업중에 내가 만들던 프로그램을 객관적으로 들으며 많은 것을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박용훈 PD는 “파업을 하면서 동료끼리 서로 얘기도 많이 하게 됐고  동료애도 커졌다”고 말했다. 이런 깨달음과 화합은 이들이 일터로 복귀한 뒤 더 좋은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7년 만에 베이스도 잡아보고, 대학생 때 여름방학 맞은 기분입니다!” 호기롭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지성찬 PD와 함께 모두들 우루루 무대를 향해 걸어갔다. '신나는 투쟁을 책임지겠다'는 그들의 발걸음에 힘이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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