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특집] 온라인시대 역사 돌아보기 ④전자상거래

출출한 밤, 뜬금없이 뻥튀기 생각이 난다. 가끔씩 동네에 찾아오는 뻥튀기 아저씨는 언제 다시 올 지 기약이 없고, 그걸 파는 가게가 근처 어디쯤 있는지 알 길도 없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야! 인터넷에 ‘뻥튀기’를 검색어로 넣으니 ‘하루 만에 배송’을 약속하는 업체들 이름이 주르륵 뜬다. 다음 날, 어린 아이 몸집 만 한 뻥튀기 꾸러미가 집으로 왔다. 단 돈 오천 원이다.
  
인터넷은 이제 ‘없는 것 빼고 다 구해주는’ 마술 램프가 됐다. 소소한 생필품부터 희귀한 수집품까지 어지간한 것은 며칠 안에 다 배달된다. 신용카드와 무통장 이체 등 전자금융거래의 발달과 함께 인터넷을 통한 전자상거래가 경제와 생활을 놀라울 만큼 변모시켰다. 신세계유통산업연구소의 ‘2012년 유통업 전망’ 보고서를 보면 국내 인터넷 쇼핑몰의 연매출액은 35조7000억원으로 대형마트에 이은 유통매출 순위 2위이며, 앞으로 2~3년 안에는 1위로 올라설 전망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터넷 쇼핑몰은 1996년 6월 문을 연 ‘인터파크’다. 같은 해 롯데백화점에서 ‘롯데닷컴’, 97년에 신세계백화점의 온라인쇼핑몰 ‘신세계’가 문을 열었지만 오프라인 매장 없이 시작한 업체는 인터파크가 유일했다. 개장 당시에는 코리아나 화장품, 도미노피자, 풀무원 등 10여개 업체만이 입점해 한정된 품목들을 취급했다. 쇼핑몰을 이용하는 소비자들도 전자상거래의 개념이 뚜렷하지 않았다. ‘집이 본사 근처인데 왜 빨리 배송되지 않느냐’고 성화인 고객도 있었고, 금액을 정확하게 입력하지 않아 무통장 입금이 결제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초기에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입소문을 타고 이용자가 점차 늘면서 인터파크는 99년에 흑자로 전환했고 코스닥에도 등록됐다. 인터파크의 성공에서 가능성을 본 사람들이 너도나도 인터넷 쇼핑몰 사업에 뛰어들었고, 곧 온라인 거래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이어졌다.

▲ 1997년 인터파크 초기화면 ⓒ 인터파크

온라인 서점 약진 뒤엔 동네 서점의 눈물이

인터넷  쇼핑은 시공간 제약 없이 편리하게 물건을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대신 물건을 실제로 만져볼 수 없고, 배송비가 들며, 물건을 배달받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초기 인터넷 쇼핑은 이런 문제들이 크게 장애가 되지 않는 몇몇 품목을 중심으로 발전했는데 주로 책과 전자제품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혜택을 받은 품목은 책이다. 지금은 ‘예스24(yes24)’가 된 ‘다빈치’가 98년에 등장하면서 온라인 서점 시대가 열렸다. 국내에서 한 해 4만종이 넘는 도서가 출간되는데, 아무리 큰 서점이라도 책을 진열해서 파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 온라인 서점은 아무리 많은 수의 책이라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인터넷에 진열할 수 있고, 대량 구매를 통해 저렴하게 책을 입고할 수 있다. 책은 어디서 사더라도 품질이 균일하기 때문에 쇼핑의 불확실성이 문제되지도 않는다. 다양한 책을 대폭 할인된 가격에 배달까지 해 주는 온라인 서점의 인기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알라딘, 인터넷 교보문고 등 국내 온라인 서점들이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면서 무료배송과 당일 발송까지 보편화했다.

▲ 다양한 종류의 서적을 낮은 가격에 제공해 인기를 얻은 인터넷 서점 예스24.ⓒYES24

그러나 온라인 서점이 승승장구 하는 만큼 오프라인 서점들은 타격을 입었다. 소비자들은 책 구경을 오프라인 서점에서 하고 구매는 온라인에서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할인혜택 때문이다. 지난해 대형 서점인 강남 영풍문고가 영업적자로 문을 닫을 정도로 오프라인 서점들은 심각한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출판연감에 따르면 1999년 4595개였던 전국 서점 수가 2009년에 1825개로 약 2/3가 줄었다. 특히 동네 서점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는데, 구비한 책의 다양성이나 가격 면에서 온라인 서점들을 당해 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동네 서점들을 살리기 위한 노력도 없지 않았다. 정부는 출판 및 인쇄진흥법을 2007년 개정해 18개월 이내 출간된 서적을 신간으로 규정하고, 신간 도서에 대한 할인과 마일리지 비율을 10%내로 제한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도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금을 받아 지역 주민에게 독서공간을 제공하는 ‘모델 서점’을 육성하는 등 중소서점살리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소형 서점들 스스로도 종합문화공간으로 기능을 확장하거나 취급 서적을 전문화하는 등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전자제품 정보 교환과 공동구매로 성장한 ‘디시인사이드’

인터넷 쇼핑의 혜택을 누린 또 다른 물품은 전자기기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소통과 정보 공유가 활발해졌고, 공통 관심사를 기준으로 다양한 커뮤니티가 만들어졌다. 전자기기 중에서는 개인소비재에 해당하는 컴퓨터와 디지털카메라에 관련된 커뮤니티가 많았다. 사람들은 제품 사양과 특징에 대해 자유롭게 질문하며 의견을 나눴고 제품 개봉기와 사용기를 올려 경험을 공유했다. 이런 커뮤니티들의 중심에 있던 사이트가 바로 ‘디시인사이드’다. PC통신 시절 하이텔의 ‘횡설수설’ 란에 ‘대공분실이야기’를 연재해 이른바 ‘PC 폐인’들의 우상이 됐던 김유식씨가 하이텔 측의 투자로 98년에 회사를 설립했다. 컴퓨터 기술과 주변기기에 관심이 많던 네티즌들이 ‘디시인사이드’로 모였고, 이들은 이곳에서 전자기기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구매도 했다. ‘디시인사이드’와 함께 ‘노트북인사이드’, ‘세티즌’ ‘씨디피(CDP)코리아’ 등 전자기기 관련 사이트들이 늘어나면서 ‘똑똑하고 깐깐한 소비자들’도 많아졌다.  이 때문에 서울 용산상가 등 전자제품 전문상가들이 손쉽게 영업하던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분석도 있다.

▲ 1999년 문을 연 ‘디시인사이드’ 초기 화면.ⓒ DCinside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사라지는 의류 쇼핑몰 

책과 전자기기가 초기 인터넷 쇼핑 붐을 주도했다면, 그 바통을 이어받아 전자상거래 대중화를 선도한 것은 패션의류였다. 통계청의 2012년 1분기 조사를 보면 의류·패션 상품이 국내 전자상거래 총 거래액 7조 7천억 원 중 약 1조 2천억 원(16.2%)를 차지하면서 상품구성 1위를 기록했다. 2위가 여행 및 예약 서비스로 비교적 개별 거래단가가 큰 상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의류·패션의 인터넷 상거래가 얼마나 활발한 지 짐작할 수 있다.

▲ 2012년 1/4분기 인터넷쇼핑 주요 상품군별 거래액. 의류패션 및 관련상품의 비율이 가장 높다. ⓒ 통계청

‘입어보지도 않고 옷을 어떻게 사나’ 했던 초기의 우려와 달리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옷을 쉽게 구입한다. 대학생 이상아(24·여·서울 대방동)씨는 인터넷 의류구매의 장점으로 다양한 옷을 짧은 시간에 쉽게 비교해 볼 수 있다는 점과 부담 없는 가격을 꼽았다. 김지영(25·대학생·서울 혜화동)씨는 “개인 의류 쇼핑몰 중 원하는 스타일이 많은 곳을 몇 군데만 알아두면 쇼핑이 훨씬 쉽다”며 “돈과 시간을 절약하는데 인터넷 쇼핑만한 게 없다”고 말했다. 온라인 의류 쇼핑몰은 점포 임대 등의 부담이 없어 초기 투자비용이 적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소비자를 공략했고, 모델이 제품을 입고 있는 모습 등 상세하고 다채로운 사진을 통해 사이즈와 품질에 대한 우려를 최소화하면서 고객의 저변을 넓혔다.

사업 진입 장벽이 낮은 덕에 ‘4억 소녀 김예진’등과 같은 성공사례가 눈길을 모으면서 ‘젊은 나이에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와 환상도 커졌다. 의류쇼핑몰 창업이 급증하면서 현재 온라인 패션의류 산업은 이미 ‘레드오션’, 즉 경쟁이 극심한 시장이 됐다. 소수의 공급처에서 비슷한 옷을 떼어 판매하기 때문에 제품이 차별화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소비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포탈 검색어 노출이나 쇼핑몰 배너 등에 지출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또 패션업계의 특성상 유행이 빨리 바뀌기 때문에 흐름을 놓치면 도태되기도 쉽다. ‘창업한 쇼핑몰 가운데 6개월 안에 망하는 곳이 90% 이상’이라는 서울시전자상거래센터의 통계자료는 이같은 현실을 뒷받침한다.

택배업계의 동반성장, 그리고 택배기사의 한숨

 인터넷 쇼핑이 많은 소비자의 일상 속에 자리 잡으면서 주문받은 물건을 배달해 주는 산업, 즉 택배업계가 급성장했다. 고객이 주문하고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인터넷 쇼핑몰의 중요한 경쟁력 요소가 됐기 때문에 쇼핑몰과 택배업체의 전략적 제휴가 늘어났다. 2000년 이후에는 주문 상품의 배달진행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위치정보서비스가 보편화하는 추세다.

반면 택배업체간의 경쟁도 심해져 기사들의 근로조건은 나날이 나빠지고 있다. 남들보다 빨리 일어나고 늦게 잠들면서 하루 종일 땀을 흘리지만 턱없이 낮아진 배송수수료 때문에 기본생계비를 벌기도 빠듯한 경우가 많다. 대다수 기사들이 하루 150건이 넘는 물품을 배달하지만 건당 배송수수료 2500~5000원 가운데 택배기사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700~800원에 불과하다. 한 달 소득 300만 원 정도에서 기름값 등 비용을 빼고 나면 손에 들어오는 것은 150~200만 원 정도. 그래서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무리한 운전을 하거나 하루 12시간 이상 장시간 근로를 자청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가끔씩 일어나는 택배기사 사칭 범죄로 인해 고객들이 경계의 눈길을 보내는 것도 이들에겐 서러운 일이다.

가격비교사이트 등장, 구매의 '권력'은 소비자에게

물품 거래를 중개하는 쇼핑몰과 함께 가격비교 사이트도 많이 늘어났다. 같은 품목을 다른 가격으로 판매하는 쇼핑몰들이 많기 때문에 한 푼이라도 더 싸게 살 수 있는 곳을 쉽게 찾아주는 사이트들이 환영받았다.

▲ 2001년 에누리닷컴화면. ⓒ 에누리닷컴

우리나라 최초의 가격비교 사이트는 <에누리(www.enuri.com)>로 1998년 가전제품, 영상기기, 컴퓨터 가격비교를 위주로 사업을 시작했다. 2000년에 문을 연 <다나와(www.danawa.com)>는 디지털카메라 가격비교 사이트로 시작했다. <다나와>는 문을 연지 1년 9개월 만에 2000만 누적방문자를 기록하며 <에누리>를 위협했다. <다나와>와 <에누리>는 현재 업계 1,2위를 다투고 있다. 후발주자인 <다나와>가 빨리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가격뿐 아니라 제품에 대한 정보도 자세히 다뤘기 때문이었다.

가격비교 사이트는 전자제품 외에 책, 수입상품, 의료실비보험까지 대상 제품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이제 소비자들은 여러 업체의 가격을 꼼꼼히 비교해 본 뒤 ‘영리한 결정’을 내리기가 아주 쉬워졌다. 구매와 관련한 권력이 공급자에서 소비자로 옮겨진 셈이다. 이 때문에 판매자들은 피 말리는 가격 인하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게 됐다. 

불량상품, 사기 등 전자상거래의 그늘도

간단한 클릭 몇 번으로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온라인 쇼핑몰이 급증하면서 ‘지름신이 내리면 자제할 수가 없다’며 ‘쇼핑 중독’을 호소하는 소비자들도 늘고 있다. 또 상품과 관련한 분쟁이나 사기피해 등 전자상거래의 그늘도 커지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 한 해 동안 소비자원에 접수된 전자상거래 관련 소비자 피해구제 사례는 4,291건으로 전년의 4,076 건 보다 5.3% 늘었다. 쇼핑몰에서 배달해 준 물건이 주문한 것과 달라 반품했는데 대금을 돌려주지 않은 경우, 물건 값을 입금했는데 상품을 보내주지 않은 경우 등 온라인 거래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피해사례가 적잖이 발생하고 있다.

전자상거래 초기에 많은 분쟁을 낳았던 대금결제사고는 입금된 돈을 제3자가 관리하고 있다가 배송이 정상적으로 이뤄진 후 판매자에게 지급하는 ‘에스크로’ 제도가 2005년 도입되면서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소규모 사이트 등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외에도 청약철회 제한, 회원가입 유도 후 정보이용료 부과, 소비자 사정으로 취소한 여행상품 비용의 과다 위약금 청구 등 각종 분쟁이 소비자원에 접수되고 있다. 소비자원 거래조사팀 강병모 박사는 “전자상거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이 미리 알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정보 고시 가이드을 마련해야 하고 피해 사례가 많은 쇼핑몰 사업자의 이름을 공개해 경각심을 높이는 방안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규모가 큰 전자상거래 업체들을 적극적으로 계도해서 이들이 시장 정화를 주도하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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