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전설의 귀환’ 6개월 만에 토크 콘서트 막 내려
[TV를 보니: 6.4~10]

순발력 만점의 말재주와 촌철살인의 유머. 주병진은 1990년대 한국 최고의 토크쇼 진행자(MC)였다. 80년대를 주름잡았던 자니윤에 이어 1인 토크쇼의 황제로 군림했다. 그는 <자니윤쇼>의 미국색을 벗어나 토크쇼를 한국화하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 주병진이 12년 만에 문화방송(MBC)의 <주병진 토크 콘서트>로 돌아왔다가 지난 7일 초라한 성적표를 남긴 채 6개월 만에 퇴장했다.

▲ 지난 해 12월 1일 첫방송 한 <주병진 토크 콘서트>. ⓒ MBC 화면 갈무리

지난해 12월 1일 방영된 첫 회는 8.5%(이하 AGB닐슨미디어리서치, 전국기준)로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 회 시청률은 2.5%로 뚝 떨어졌고 전 회 평균 시청률도 4.7%에 불과했다. 동시간대 한국방송(KBS2)의 <해피투게더3>, 에스비에스(SBS) <자기야>와는 경쟁조차 되지 않았다. 토크쇼의 ‘전설’이었던 주병진이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쓸쓸히 퇴장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뚜렷한 주제와 색깔 갖춘 토크쇼 흐름 못 맞춰

<주병진의 토크 콘서트>는 유명인들이 전국 각지를 돌며 열었던 ‘토크 콘서트’ 형식을 빌려 왔다. 김제동, 박경철 등의 토크 콘서트는 진행자의 입담에 다양한 초대손님(게스트)이 어우러지면서 큰 인기를 모으고 있었다. 거기 주병진이 가세했다. 첫 회에는 프로야구선수 박찬호라는 든든한 손님이 등장했다. 어느 정도 시청률을 보장하는 조합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 때 뿐이었다. 이후엔 계속 내리막길이었다. 

우선 토크 콘서트라는 포맷(형식) 자체가 주병진에겐 ‘맞지 않는 옷’처럼 보였다. 주병진의 빠른 상황 판단과 적시에 던지는 유머 감각은 어떤 MC와 비교해도 나쁘지 않았지만 방송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주병진이 종횡무진하던 90년대의 토크쇼에서 방청객은 각본대로 박수치고 웃어주던 존재였다. 하지만 요즘의 방청객은 진짜 웃겨야 웃어주고 마음이 내켜야 박수를 치는 ‘살아있는’ 관객이다. 현장에서 진행자와 게스트, 관객 사이에 진정한 소통이 돼야 박수와 웃음이 터진다. 오랜 만에 돌아온 주병진에겐 이런 의미에서의 ‘소통 능력’이 부족해 보였다.

▲ 박찬호, 배철수, 미수다 등 다양한 출연진이 나왔지만  일관성 없고 들쑥날쑥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 MBC 화면 갈무리

토크 콘서트 포맷의 반응이 썩 좋지 않자 제작진은 과거 <주병진 쇼>처럼 명사를 초대해 인물 탐구에 집중하는 정통 토크쇼 방식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다른 토크쇼와 차별화되는 강점이나 색깔이 없었다. 최근 토크쇼들은 대부분 이야기의 주제가 뚜렷하고, 공간 활용에서 강한 개성을 드러낸다. ‘신통한 도사가 초대손님의 고민을 해결해 준다’는 MBC <무릎팍도사>가 그랬고, ‘마음을 치유한다’며 매번 장소를 옮겨 진행하는 SBS의 <힐링캠프>가 그렇다. 하지만 <토크 콘서트>는 처음부터 고유한 주제가 없고 목적도 불분명했다. 공간 활용만 봐도 태진아ㆍ송대관 편에서 콘서트 홀, 배철수ㆍ구창모ㆍ최백호 편은 목욕탕, 에스엠(SM) 아이돌 편은 SBS <짝>의 분위기가 나는 펜션에서 진행했지만 ‘왜 거기여야 하는지’는 뚜렷하게 설명되지 않았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의미 없는 공간에서 특색 없는 이야기가 전후 설명 없이 흘러갔다.  

게스트 구성도 허술했다. ‘국민이 만나고 싶어 하는 각 분야의 핫 피플 초대’가 기획의도라는데, 지난 주는 차승원, 이번 주는 정당 비례대표, 다음 주는 서울대 합격생 식으로 이어지는 게스트 섭외는 뜬금없다는 느낌을 주었다. 박찬호와의 대화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재확인하는데 그쳤고, 태진아ㆍ송대관은 전 국민이 다 아는 우정을 또 우려먹었다. 식상한 ‘추억 팔이’도 이어졌다. 전유성ㆍ임하룡ㆍ이성미ㆍ이경실ㆍ이경애가 출연한 ‘늘 푸른 모임’ 편의 결론은 ‘어려울 때 도와준 주병진에게 감사하고, 앞으로 힘냈으면 한다’였다. 노사연ㆍ이소라 편에서는 90년대 주병진 쇼의 전성시대를 회고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일부 시청자들은 ‘지금이 1990년대인지, 2010년대인지 헷갈린다’는 등의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 6개월 간 주병진 토크쇼를 함께 한 게스트들. ⓒ MBC 화면 갈무리

변화한 환경에 맞춘 ‘주병진의 진화’가 필요

토크쇼를 강력한 1인 진행자가 이끌어가는 형식은 사실 한물 간 포맷이라 할 수 있다. 요즘은 여러 명이 함께 진행하는 집단 진행 방식이 토크쇼의 주류를 이룬다. 물론 유행은 바뀌는 법이다. 집단MC 체제가 언젠가는 식상할 것이므로 다시 1인 진행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제작자들도 있다. KBS의 <박중훈 쇼>가 바로 1인 진행 방식의 물꼬를 다시 트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최근 SBS에서 시작한 고현정의 ‘고쇼’도 보조 진행자를 두고는 있지만 지향점은 같다고 할 수 있다. 캐릭터가 분명하고 지명도 높은 한 사람이 지배하는 토크쇼가 성공하면 오랫동안 시청자의 사랑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바로 그 1인의 능력이 변수다. 박중훈은 실패했고, 고현정은 고전하고 있다. 그리고 주병진도 쓸쓸히 퇴장했다.

▲ 12년만에 돌아온 주병진의 쓸쓸한 퇴장. 하지만 시청자들은 여전히 그의 '부활'을 기다린다. ⓒ MBC 화면 갈무리

한 때 ‘최고’로 인정받던 재치와 입담의 주병진. 그가 변화한 환경에서도 성공하려면 한 발 더 나아갔어야 했다. ‘요즘 시청자’를 사로잡을 만한 매력으로 ‘업그레이드’가 필요했다. 또 제작진은 <토크 콘서트>가 다른 토크쇼와 차별화할 수 있도록 ‘색깔’을 입혔어야 했다. MBC <라디오스타>의 독설 개그, SBS <힐링캠프>의 착한 메시지처럼 <토크 콘서트>만의 개성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주병진이라는 걸출한 방송 인재가 초라하게 퇴장하는 모습은 씁쓸하다. 그는 “앞으로 새로운 방송 환경과 시청자들에 대해 좀 더 배우고 연구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는 말을 남겼다. ‘새롭지 않으면 망한다’는 방송가의 금언을 새기며 절치부심한 그가 다시 화려하게 부활하는 날이 멀지 않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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