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기자포럼] 소금 이야기

‘고귀한 신분’ 소금의 영고성쇠

“Pass me the salt, please(소금 좀 건네주세요).” 소금이 돈보다 귀했던 시절, 소금 그릇은 제일 높은 사람 앞에만 놓여있었다. 소금을 먹으려면 정중히 건네주기를 부탁해야 했다. 소금을 뜻하는 한자 ‘염(鹽)’이 왼쪽 위는 신하(臣), 오른쪽 위는 소금물(鹵), 아랫부분은 그릇(皿)을 의미하는 것을 보더라도 소금은 국가에서 관리하는 ‘권력’이자 ‘부’의 상징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하얀 황금’은 가격이 떨어지면서 대중화했지만, 현대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무서운 결정체’로 변했다.   

인간이 생존을 위해 필요한 소금은 하루 0.25g의 미량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짜게 먹길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은 그 50배에 해당하는 하루 평균 12.5g을 섭취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권고한 나트륨 하루 최대 섭취량은 2000mg이지만 한국인은 권장 기준치 2.5배에 이르는 평균 4878mg를 먹는다. 짜게 먹는 습관은 한국인 3대 사망 원인인 암, 뇌혈관질환, 심장질환의 요인으로 꼽힌다. 이는 의료비 등 각종 사회비용도 발생시키는데, 2010년 기준으로 한 해 고혈압 진료비만 2조2540억원에 이르렀다.

▲ 서울의대 김성권 교수가 소금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과다섭취의 문제점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 한국식품기자포럼

지난 7일 서울성모병원 성의회관에서 열린 제2회 ‘한국식품기자포럼’(대표 박태균)에 식품 관련 전문기자, 교수, 의사, 업계 관계자, 임채민 보건복지부장관 등 100여 명이 모여 ‘소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포럼은 계명대 식품영양학과 고봉경 교수가 '말랑말랑한 식품, 빵 이야기'를 발표하고, 식약청 손문기 식품안전국장이 정부정책 질의응답에 나서는 등 시종일관 진지하면서도 흥미로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싱겁게 먹기 운동본부’에 참여중인 서울대병원 신장내과 김성권 교수는 “그동안 지방과 설탕의 위험성은 많이 알려졌지만 소금은 그렇지 못했다”며,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는 금연, 금주, 다이어트, 운동 등과 함께 소금 섭취를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맛있다’고 먹는 음식 대부분 ‘소금 덩어리’

사람들이 짜게 먹길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교수는 “사람이 ‘맛있다’고 느끼는 맛의 구성 중 80%는 소금 맛이고, 15%는 지방 맛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마블링이 잘 된 소고기를 구워 소금장을 듬뿍 찍어 먹을 때를 떠올려보라”고 하자, 대다수 청중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 1백여 명 포럼 참석자들이 5가지 주제발표를 듣고 토론을 했다. ⓒ 한국식품기자포럼

사람은 엄마 젖을 먹을 때까지는 소금을 먹지 않는다. 모유에는 염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젖을 뗀 뒤 어른과 같은 음식을 먹는 순간부터 소금에 무방비 상태가 된다. 특히 조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심하다. 나이가 들수록 미각이 둔해져 음식을 더 짜게 만들어 먹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짠맛에 익숙해지고 짠맛이 곧 ‘맛있는 맛’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원조 할매집’ 음식이 점점 짜지는데도 손님이 들끓게 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미 짠맛에 길들여진 입맛을 바꾸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서울대병원에서 환자 6만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소금을 하루 2g 이하 먹는 사람은 17.3%에 불과했다. 대학병원 환자들은 의사에게 “싱겁게 먹으라”는 조언을 수십 번씩 듣는데도 식습관을 바꾸기가 힘들다. 김 교수는 심장병을 앓는 환자가 김치를 싱겁게 먹기 위해 물에 씻어 먹을지, 백김치를 담가 먹을지 고민하자 “눈으로만 먹으라”고 단호하게 답했다고 한다. 그는 또 소금업계에서 무슨 질 좋은 소금이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소금의 기본성분(NaCl)은 다를 수가 없다고 말했다.

▲ 우리가 즐겨 먹는 음식 속 나트륨 함량. ⓒ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소금 섭취를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외식이나 가공식품을 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맛있다고 먹는 주위 대부분 음식들은 ‘소금 덩어리’다. 라면 한 그릇(나트륨 2140mg 함유)만 먹어도 하루 섭취량 2000mg을 훌쩍 넘긴다. 하지만 아무리 소금이 유해한들 오늘 점심에 먹은 맛있는 짜장면과 후식으로 먹은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포기하기 힘들다. 음식을 짜게 만들어 판 식품 회사나 식당에 책임을 돌리고 싶지만 근본 원인은 ‘소비자’에게 있다. 판매자는 짠맛을 선호하는 소비자 입맛에 맞춰 음식을 만들게 돼있다.

‘식품기자포럼’에 도시락을 제공한 ‘불고기 브라더스’ 정인태 회장이 소금에 대한 외식업계의 견해를 밝혔다. 아웃백, TGI 등의 국내 도입에 앞장서다가 고유 브랜드를 개발해 국제적인 프랜차이즈 업체로 키워낸 정 회장은 “소금량과 매출 사이에 관계가 있냐”는 질문에 수긍했다. 그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맛이 ‘짠맛’이어서 음식을 만들 때 기본적으로 소금을 쓰지만 지나치지 않도록 염도를 철저히 계산한다”고 답했다. 그는 “손님이 줄을 서 기다릴 만큼 맛있는 식당 음식에는 반드시 소금 아니면 MSG(화학인공조미료)가 들어있다“며 ”소비자가 선호하는 가장 적당한 나트륨량을 맞추는 것이 외식업계로서는 중요하다“고 밝혔다.

소금 덜 쓰는 실험 ‘나무위에 빵집’

소금을 줄이려는 움직임도 있다. 서울 이화여대 정문 앞에서 ‘나무위에 빵집’을 운영하는 이은영(47) 사장은 ‘식품기자포럼’에서 올리브빵, 시금치요거트치즈빵 등 저염빵을 선보였다. 100g당 소금 2g이 들어가는 일반 빵과 달리 포럼에 가져온 저염빵은 1.2g만 넣어 만들었다. 빵을 맛본 청중들은 소금이 덜 들어간 것을 크게 못 느끼겠다는 반응이었다. 함께 포럼에 참석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 강태영(26)씨는 “일반 빵과 비교해 자극적이지 않고, 건강빵은 무미건조한 맛이라고 생각했는데 부드럽고 맛있다”고 평했다.

▲ '나무위에 빵집'에서 100g 당 소금 1~1.5g을 맞춰 만든 저염빵. ⓒ 양승희

실은 이화여대를 졸업한 기자도 학교 앞에 이런 빵집이 있는지도 몰랐다. 보통 1층에 있는 다른 빵집과 달리 3층에 있을 뿐 아니라 매일 소량만 생산해 전화나 인터넷 예약제로 판매하기 때문이다. 지난 9일 저염빵을 만드는 과정을 보기 위해 직접 가게를 찾았다. 이대 사학과를 졸업한 이 사장은 프랜차이즈 빵집이 즐비한 모교 앞에서 7년째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소금은 빵의 질감과 모양을 결정하는 중요한 재료여서 부족하면 빵이 끈적거리고 딱딱해진다. 이 사장은 “숙성 시간과 반죽 방법을 조금만 바꿔도 소금이 하는 역할을 보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판매용 빵은 100g당 소금 1~1.5g으로 맞추고 방부제, 유화제 같은 식품 첨가물도 전혀 넣지 않고 만든다. 기존 빵들이 입맛에 짜게 느껴져 저염빵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이 사장은 “소금 1g이 무슨 대수냐 생각할 수 있지만 저울에 직접 소금을 달아 양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 '나무위에 빵집'은 일주일에 세 번 '베이킹 클래스'를 열어 저염빵 만드는 법 등을 가르친다. 왼쪽이 이은영 사장. ⓒ 양승희

최근 웰빙(Well-being) 바람이 불면서 가게를 찾는 손님도 부쩍 늘었다. ‘나무위에 빵집’에서 1년째 베이킹 클래스를 수강하는 회사원 홍기효(50․여)씨는 혈당, 혈압 걱정이 늘기 시작하면서 직접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빵을 좋아하는데 일반 빵은 너무 자극적이라 먹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빵을 먹고 싶은데도 당뇨, 고혈압, 동맥경화 등 질병 때문에 먹지 못하는 환자들이 많다. 이 사장은 이들을 위해 앞으로 소금을 넣지 않고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무염(無鹽)빵’에 도전할 계획이다.    

‘싱거운 사람’이 되어라

싱겁게 먹는 습관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정부, 의료계, 식품업계 등 사회 전반의 노력이 필요하다. 김성권 교수는 “흡연, 음주, 비만만큼 짜게 먹는 식습관이 건강에 해롭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식품기자포럼 박태균(중앙일보 식품의약전문기자) 대표는 인터뷰에서 "기자들이 전문적인 영역을 공부할 기회가 적은데 국민들 관심이 지대한 식품분야를 보도하는 기자들이 정확한 지식을 공유하고 보도의 질을 높이기 위해 포럼을 결성했다"고 말했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과거에는 ‘많이 먹는 게 잘 먹는 것’이었다. 하지만 적게 먹는 것이 미덕이 된 지금 소금 역시 적게 먹을수록 좋다. 이제 식탁에서 소금과 가장 멀리 떨어진 사람이 건강의 상징이 될 것이다. 싱거운 사람이 되자.


* 이 기사가 유익했다면 아래 손가락을 눌러주세요. (로그인 불필요)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