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적 지원 속 성장한 '대기업' 이기심에 '中企' 폭발

    ▲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지금보다 한 세대 전에는 '개천에서 용 만들기' 프로젝트를 하는 집이 많았다. 먹고 살기도 빠듯한 집안에, 공부 잘하는 아들이 하나 나온 경우다. 그러면 부모는 논밭 팔아 학비를 대고, 여동생은 봉제공장이나 남의 집 식모살이로 오빠 뒷바라지를 했다. 공부가 그저 그런 나머지 동생들은 적당한 선에서 진학을 포기하는 것으로 집안의 부담을 덜었다.

그 다음 이야기는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해피 엔딩. 판검사 의사 공무원이 되거나 대기업 입사에 성공한 아들이 나머지 가족의 은공을 갚는 것이다. 부모님을 극진히 모시고, 동생들 시집·장가 갈 때까지 알뜰히 돌봐준다. 다른 하나는 비극. 옛날 사연을 모르는 도시 출신의 아내 때문이든, 저 잘나서 성공했다는 생각 때문이든, 부모형제 외면하고 자기만 살겠다는 아들에게 다른 가족들이 배신감을 느끼는 경우다. 한술 더 떠서 자기 때문에 남의 집살이까지 했던 여동생을 파출부처럼, 공부 못한 남동생을 운전기사처럼 부려먹다가 마침내 동생들이 폭발한 사례도 없지 않았다.

대기업들이 올 들어 화려한 실적을 내고 있다고 떠들썩하다. 삼성전자는 2분기 영업이익이 5조 원을 넘어 사상 최대라고 한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중소기업, 자영업자, 근로자들이 "더 못 버티겠다"며 울상을 짓고 있다. '개천에서 용 만들기'에 나선 집안이 연상된다. 온 가족이 고생해서 뒷바라지했더니 부모형제 모른 척하고 혼자만 잘나가는 형을 보는 것 같다. 대기업이 언제 중소기업, 자영업자, 근로자들의 덕을 봤냐고? 삼성, 현대, LG, SK 다 저 잘나고 열심히 해서 잘 된 것 아니냐고? 그렇게 말하면 정말 섭섭해 할 사람 많다.

1960년대 이후의 경제개발 과정에서 역대 정부가 은행돈과 감세 혜택, 사업 허가 등을 몰아주면서 몇몇 기업을 '대표 선수'로 키웠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허약한 국내의 자동차, 전자, 생활용품 산업 등을 국제 경쟁으로부터 지켜주기 위해 수입 장벽을 높이 쌓았을 뿐 아니라 국내 소비자들에게 비싸게 팔아 남긴 돈으로 외국 시장에서 헐값에 파는 손해를 벌충하게  해 주었던 것도 잘 알려진 얘기다. 우리의 '대표 선수'들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도록 근로자의 임금은 억제됐고, 농산물 가격은 낮게 유지됐고, 세금은 각종 '공제' 명목으로 최소화했다. 이 모든 정책의 배경에는 '적하효과(trickle-down effect)'라는 이론이 있었다. 뿜어져 나온 분수가 위 칸을 채우면 자연히 아래로 흘러 바닥을 적시는 것처럼, 대기업이 잘되면 중소기업과 서민계층까지 잘살게 될 것이라는 얘기였다. 어느 시점까지는 맞는 듯도 했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1인당 국민소득이 늘고 세계 속에서 국가 위상도 올라간 것이 사실이니까.

그러나 이미 출세한 형이 동생들의 희생을 끝없이 요구하는 것처럼, 국가적 성원 속에 성장한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이기심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한 해 수천 억, 수조 원의 이익을 내는 대기업들이 거래 중소기업의 납품단가를 쥐어짜는 바람에 대기업은 호황인데 중소기업에선 죽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자영업자들이 먹고사는 터전인 동네 골목상권까지 잠식하는 대기업, 벤처기업이 고생 끝에 개발한 기술을 채 가는 대기업도 드물지 않다. 정부가 고용을 늘리라며 세금도 엄청나게 깎아 주었건만, 오히려 정규직을 대거 비정규직으로 돌려 '불안하고 배고픈' 근로자를 양산하는 회사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경제위기 와중에서 국민세금으로 보조금을 듬뿍 줘 자동차 매출이 늘었어도, 농민들의 희생을 무릅쓰고 자유무역협정을 늘려 수출 길을 넓혀줬어도, 4대 강 사업 등 대형프로젝트로 엄청난 이익을 챙기게 해 주었어도, 그들의 식탐은 그치지 않는다. 진보신당 분석에 따르면 2008년에 시가총액 상위 10대 재벌이 실제 부담한 법인세율은 법정최고세율인 25%에 크게 못 미치는 16.5%였고, 삼성전자는 6.5%였다. 엄청나게 벌면서도, 각종 감세 조치 덕에 세금은 법인세 납부기업 평균보다 덜 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경제단체를 동원해 '법인세를 더 깎아라' '최저임금을 동결하라'는 후안무치한 주장을 서슴지 않았다. 언제까지 그럴 텐가? 동생들이 폭발할 때까지? 그들의 비명이 들리지 않나. 형, 같이 좀 먹고 살자!


이 칼럼은 국제신문 7월 13일자 <시론>으로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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