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토크] 필리핀 감독이 고발한 ‘우리 안의 소돔과 고모라’

괴상하다 못해 역겹기까지 하다. 마약에 취한 아이들은 더러운 방구석에서 쥐를 구워먹는다. 전라의 여인들은 서너 명씩 뒤엉켜 레즈비언 성행위에 몰두한다. 눈알이 빠진 시체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장면도 보인다. 필리핀의 빈민가를 배경으로 밑바닥 삶을 사는 인간 군상의 처절한 모습을 담은 영화 <몬도마닐라(Mondomanila)> 얘기다. 지난달 26일부터 9일간 열린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불면의 밤(28일)’ 프로그램을 통해 선보인 이 작품은 1500석 규모의 대극장을 거의 메운 관객들을 75분 내내 강렬하고 파격적인 영상으로 몰입시켰다.

 

▲ 영화 <몬도마닐라> 포스터. ⓒ 전주국제영화제

영화는 필리핀의 한 도시가 홍수로 아수라장이 된 실제 영상으로 시작한다. 한 소년의 인터뷰가 나오면서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전개되는데, 사실 여기서부터는 각색된 영화다. 소년 ‘토니’가 살고 있는 빈민가 ‘몬도마닐라’는 살인, 약탈, 매춘, 동성애, 마약으로 얼룩져 있다. 아무데나 쓰레기가 쌓여 위생은 엉망이고, 굶주린 사람들은 쥐를 잡아먹고, 아무렇지도 않게 범죄를 저지른다.

이 절망의 소굴에 사는 사람들은 오직 ‘몸’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섹스’에 미쳐있다. 영화는 거위와의 항문성교부터 소아성애자의 동성 매춘까지 여과 없이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관객들은 수시로 인상을 찌푸리고, 비명을 지르거나 고개를 돌렸다. 견디다 못해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보기 싫은 것 외면하는 관객 앞에 '도시의 처참한 뒷면' 조명

도대체 감독은 왜 이런 괴작(怪作)을 만들었을까. 다큐멘터리를 주로 만들어 온 필리핀 출신의 감독 카븐 드 라 크루스(Khavn de la Cruz)는 “몬도마닐라를 통해 필름 뒤에 실재하는 현실을 보여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필리핀에서 일어나는 온갖 타락을 영화로 재구성했으며, 보기 싫은 것에는 눈을 감고 오직 즐거운 것만을 기대하는 관객들에게 처참한 도시의 뒷면을 보여주려 했다는 얘기다. 그는 “관객들이 마닐라의 상처를 직접 만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진물과 고름을 클로즈업했다”고 설명했다.

 

▲ 필리핀 출신의 카븐 드 라 크루스 감독. ⓒ 전주국제영화제

필리핀 빈민가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그린 영화를 보면서 한국 관객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전주 영화제 홈페이지 등에 감상을 남긴 관객들 가운데는 구약 성경 속 타락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를 떠올렸다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는 이런 ‘소돔과 고모라’가 없을까? 어쩌면 이 땅의 구석구석에서도 종류는 다르지만 이에 못지않은 참상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우리들 대다수는 알지 못하거나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했다. 

 

▲ 온갖 쓰레기와 낙서로 뒤섞인 도시 몬도마닐라. ⓒ 전주국제영화제

가수이자 작곡가이기도 한 카븐 감독은 영화 음악을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비극적인 장면에 흘러나오는 빠른 박자의 발랄한 랩은 아이러니한 느낌을 준다. 토니의 남동생 디노가 매춘으로 벌어 온 돈다발을 보며 엄마가 기뻐하는 장면에서는 뜬금없이 뮤지컬 형식의 노래 대사가 등장,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견디기 힘들 만큼 역겨우면서도 때론 기묘하고 유쾌한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 상업영화에서 찾기 어려운 강렬한 실험정신이 충만하다. 

영화에 대한 입소문이 퍼졌지만 전주국제영화제를 끝으로 일반 극장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다. 그러나 전주시 고사동의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지프떼끄’를 직접 찾아가면 언제든 ‘역겹지만 매력적인’ 이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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