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특집] 온라인시대 역사 돌아보기 ① PC통신

“뚜뚜뚜뚜뚜 따르르르릉 삐~ 치치치치칙......”

고막을 찢을 듯한 모뎀(전송신호 변환장치) 연결음에 혹시 잠든 부모님이 깨실까 컴퓨터에 이불을 뒤집어 씌웠던 그 때. 사진 한 장 내려 받는 데 30분은 기본이고, 15초짜리 동영상 하나 내려 받다 밤을 꼬박 새운 뒤 20만 원도 넘게 청구된 전화요금 때문에 혼쭐이 나기도 했던 그 때. 파란 화면에 ‘고(go)'로 시작하는 영문 명령어를 입력하면 우리를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해 주던 그 곳. 전화선으로 컴퓨터 통신망에 접속하던 ’피씨(PC)통신‘의 세계를 기억하는가.

▲ 파란 화면에 하얀 글씨체는 PC통신의 상징이었다. ⓒ 하이텔

1980년대 ‘천리안’ ‘하이텔’로 시작된 한국의 PC통신은 1990년대 들어 가정용 PC가 널리 보급되고, ‘나우누리’와 ‘유니텔’이 등장해 ‘4대 통신’을 구성하면서 전성기를 맞는다. 같은 취미를 가진 이들이 자발적으로 주제별 PC통신 동호회를 만들었고, 이 동호회에 ‘재야의 고수들’이 모여들면서 ‘집단지성’이 쌓여갔다. 
 
한국형 판타지 소설 등장에 젊은 세대 열광  
 

▲ 영화 <퇴마록>은 온라인 소설이 최초로 영화화된 작품이다. ⓒ 퇴마록
1989년, ‘멋진 신세계’라는 천리안 공상과학소설(SF)동아리 게시판에 소설이 연재되기 시작했다. 바로 최초의 온라인 소설로 꼽히는 이성수의 <아틀란티스 광시곡>이다. 이 소설은 ‘온라인 문학’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 큰 관심을 끌며 독자를 컴퓨터 앞으로 끌어 당겼고 91년에는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하지만 독자들에게 더욱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며 온라인 문학을 정착시킨 이는 따로 있다. ‘한국형 판타지(공상)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퇴마록>의 저자 이우혁이다. 93년부터 하이텔에 연재돼 94년에는 책으로도 출간된 <퇴마록>은 현재까지 1천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다. 98년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퇴마록>이후 온라인 문학은 전성기를 맞는다.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1997년), 한국 밀리터리(군) 문학의 효시가 된 김경진의 <데프콘>(1995년), 나중에 영화화되어 한류 열풍을 일으킨 필명 ‘견우74’의 <엽기적인 그녀>(1998년)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탄생한 수준 높은 판타지 작품들은 드라마, 영화, 만화 등으로 2차 생산 되면서 한국 대중문화의 폭을 넓혔다. 
 
H.O.T. 팬이 주도한 ‘팬픽’ 문화 막강한 파급력 
 
초창기 PC통신의 주역들은 20대 이상 남성들이었지만, 곧 10대 소녀들이 온라인 세계에 가세했다. 90년대에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과 ‘에이치오티(H.O.T.)’ 등이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면서 소녀 팬들이 PC통신에서 팬클럽 활동을 벌인 것. 당시 천리안의 최대 규모 동호회가 H.O.T. 팬클럽 ‘리옷(LEOT: Love Everything Of H.O.T.)’이었을 정도다. 이들은 전국에 지부를 두고 조직적으로 팬클럽을 운영하면서 까다로운 가입과 등업(등급상승) 절차 등을 통해 회원들의 충성도를 높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팬픽(Fan-Fiction)’, 즉 팬이 스타를 주인공으로 쓴 소설이 탄생한다.  
 

▲ <협객기> 저자 이지련은 이후 H.O.T. 멤버들 간의 사랑을 다룬 <새디>를 정식 출간하기도 했다. ⓒ 상상미디어

H.O.T.를 주인공으로 한 무협소설<협객기>(이지련)와 그룹 ‘젝스키스’를 주인공으로 한 <아카시아 길>(태지33)등이 잇따라 출간됐고, 10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모았다. 초기 팬픽은 단순히 스타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었으나, 나중에는 남자 아이돌 그룹 멤버들 간의 사랑을 다룬 소설도 등장했다. 일부 문화평론가들은 이런 팬픽 문화가 ‘게이(동성애자) 코드’에 너그러운 오늘날의 20~30대 여성층을 키웠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월드컵 응원 열기 원천은 하이텔 축구동아리 
 
2002년 한일월드컵 응원전을 주도한 ‘붉은 악마’도 PC통신에서 시작됐다. 93년에 만들어진 하이텔의 축구동호회에서 ‘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을 앞두고 국가대표팀을 조직적으로 응원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의기투합한 회원들은 동호회 내 공모를 통해 스스로를 ‘붉은 악마’라 이름 붙이고 징과 꽹과리를 들고 응원전에 나섰다. 이 후 에이(A)매치, 즉 국가대표팀 간의 경기 마다 이들은 어김없이 등장했고 마침내 한일월드컵의 열기 속에 전 국민을 ‘붉은 악마’ 응원단으로 만들었다. PC통신의 퇴조와 함께 하이텔의 축구동아리는 사라졌지만 ‘붉은 악마’는 2006년 기준 회원수 30만 명의 거대 조직으로 성장, 그 이후에도 한국 스포츠팀의 응원단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PC통신의 전성기 때 각 분야의 ‘고수’들은 다양한 동호회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자랑했고 그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하이텔의 ‘메탈동(메탈음악 동호회)’에서는 수많은 인디(독립)밴드들이 탄생했다. 경향신문 등이 선정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이름을 올린 인디밴드 ‘언니네 이발관’과 ‘델리 스파이스’도 이곳에서 결성됐다. 하이텔의 컴퓨터 동호회 ‘다솜’은 컴퓨터 용어 한글화에 큰 역할을 했고, 하이텔 하드웨어운영체제 동아리 ‘오에스씨(OSC)’는 전자제품 평가와 '공동구매‘라는 문화를 탄생시켰다. 이 ‘OSC' 게시판에서 시작한 ’디씨인사이드’는 오늘날 인터넷의 유행과 ‘폐인문화’의 본거지가 되기도 했다. 하이텔의 게임오락 동아리 ’게오동‘은 국내 온라인 게임 탄생의 토대를 만들었다고 평가 받는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에 대한 지지와 검증의 글들이 치열하게 오갔던 천리안의 ’현철동(현대 철학 동아리)’과 하이텔 ‘큰마을’은 요즘 포털 <다음>의 토론장인 ‘아고라’와 같은 역할을 했다.    
 
인터넷에 밀려났지만 대중문화에 큰 족적

▲ '디시인사이드'의 운영방식은 PC통신의 동아리 문화와 닮았다. ⓒ 디시인사이드 화면 캡처

PC통신은 2000년대 초반 인터넷의 확산과 함께 점차 사라졌다. PC통신 이용자들이 빠른 속도와 멀티미디어 기반을 자랑하는 인터넷으로 옮겨 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PC통신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회원들은 다시 인터넷을 기반으로 활발한 문화 활동을 이어갔다. 취미활동을 중심으로 친목을 다지던 동호회는 포털사이트의 ‘카페’로 이사했고, 온라인 논객들은 <서프라이즈>와 <브레이크 뉴스> ‘아고라’ 등에서 활동하며 인터넷 토론문화를 이끌었다. PC통신의 일부 동호회 모임은 ‘디씨인사이드’의 분야별 갤러리 문화로 되살아났다. ‘축동(축구 동아리)’, ‘만화동(만화 동아리)’ 등이 ‘축갤(축구갤러리), ’만화갤(만화 갤러리)‘ 등으로 변신한 것. PC통신은 사라졌지만, 그 시대가 뿌린 씨앗은 지금 인터넷 시대의 대중문화를 꽃 피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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