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집 재밌는 곳] 제천 덕산 ‘누리마을 빵카페’

제천시내에서 버스로 한 시간, 덕산면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시장 쪽으로 100m나 갔을까? 시골에서는 보기 어려운 카페가 하나 눈에 들어온다. 바로 ‘누리마을 빵카페’. 덕산마을을 둘러싼 풍경과 잘 어울리면서도 어딘가 이국적 분위기가 살짝 풍긴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25평 남짓한 실내를 꽉 채우고 있는 건 빵 굽는 냄새와 커피 향. 아기자기한 커튼이 처져있고 천정에는 조명등이 일렬로 늘어서서 실내를 비추고 있어 마치 작은 공연장에 들어온 느낌이다.

▲ ‘누리마을 빵카페’는 담쟁이로 출입문을 장식해놓았다. ⓒ 임온유
▲ 이국적인 커튼, 소박한 탁자와 걸상, 작은 TV 등이 조화를 이룬 카페 내부. ⓒ 임온유

“어서 오세요.” 조금 어색한 발음이지만 반색하며 손님을 맞은 사람은 카페 매니저 프라 파이(36)씨. 태국 출신인 그녀는 10년 전 결혼을 위해 한국에 왔다. 해맑게 시종 웃어대는 그녀는 카페 일이 항상 즐겁다고 말했다. 개업 3년째인 카페에는 그녀 말고도 카페 대표인 이원범(21)씨와 직원 둘이 일하는데, 마침 농사일을 하다 잠시 쉬러 온 손님도 둘 있었다.

이주여성들이 얻은 자신감과 경제 자립

‘누리마을 빵카페’를 이런 시골에 개업할 아이디어를 낸 이는 마을 주민이자 간디교육연구소 직원인 장춘봉(37)씨다. 그에게 빵카페 개업 얘기를 들었다.

▲ 간디교육연구소 직원 장춘봉씨. ⓒ 임온유
▲ 커피를 만들고 있는 파이(왼쪽)씨와 간디학교를 졸업한 카페 대표 이원범씨. ⓒ 임온유

“제천 간디학교에 계신 한석주 선생님이 한국-베트남 평화 프로젝트에 참가하면서 이주여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셨어요. 3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는 이주여성들의 각기 다른 문화를 인정하기보단 그들을 한국 문화로 동화시키려는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한 선생님은 이주여성들을 한 문화의 주체로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하셨고 그들을 돕기 위해 우선 누리마을센터를 설립했습니다. 센터 설립 이유를 현실화 한 것이 바로 빵카페였습니다.”

빵카페는 이주여성들에게 일자리와 함께 삶의 주체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또 빵과 커피 만드는 기술을 배운 간디학교 졸업생들에게 일자리도 주었다. 카페는 졸업생들이 이주여성들에게 기술을 전수하면서 운영된다.

이주여성들은 대개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고 생김새가 달라 일자리를 얻기 쉽지 않다. 파이씨는 혼자 시내에 나가는 것조차 시부모님과 신랑이 염려했다고 한다. 하지만 빵카페는 달랐다. 마을 안에 있는데다 직원들 모두 파이씨 가족과 아는 이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카페에서 일하면서 경제적 자립과 함께 한국 생활에 대한 자신감도 얻었다.

“제 월급은 제가 관리해요. 신랑이 돈 어디 갔냐고 한번도 물어본 적 없어요. 카페에서 제가 번 돈으로 필요한 물건 사고 어머니께 용돈도 드리고 해요. 다른 마을 사람들이 덕산 이주여성들은 정말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산다고 이야기해요.”

유기농 재료가 가져온 위기와 기회

빵카페에도 위기는 있었다. 지난해 구제역으로 원유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버터와 우유 값이 치솟았다. 비싼 유기농 재료들을 사용했으니 빵 값을 올리지 않고서는 카페를 유지할 수 없었다. 가격을 올리자 손님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결국 파이씨와 간디학교 졸업생 이원범 대표만 남았다.

▲ ‘누리마을 빵카페’는 값이 좀 비싸도 우리 몸에 좋은 우리 농산물 재료를 고집한다. ⓒ 임온유
▲ 유기농 재료를 사용해 만든 버터빵. ⓒ 임온유

“그 때 정말 최악이었어요. 보다 못한 시어머니와 신랑이 ‘이제 가게 그만 나가고 같이 농사나 짓자’고 했어요. 하지만 이 일이 좋고 포기하기 싫어 그럴 수 없었죠.”

두 사람은 고군분투했다. ‘믿고 먹을 수 있는 재료, 바로 구운 빵’을 내세워 주민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의 진심은 통했고 이제 네 명이 일하는 어엿한 일터가 됐다.

덕산 마을에서 철물점을 하는 강승구(48)씨는 일주일에 두세 번은 카페에 들른다.

다른 마을에는 이런 카페가 없는데 자랑스럽습니다. 우리 마을 유기농 농산물 원료들 갖다 쓰는데 우리가 이 빵집을 지켜야지요. 값이 올라도 마을 소득과 건강을 생각해서 계속 여기에 옵니다. 빵이 맛있고 또 먹고 나서 뒤끝이 없어요. 좋은 재료들을 쓰니까. 자식들은 한 시간 넘게 걸리는 제천 시내에 가서 달착지근한 프랜차이즈 빵을 사먹곤 하는데 사실 그런 빵은 몸에 안 좋거든요. 자식들한테 계속 누리마을 빵카페 빵을 권하곤 하는데 잘못 길들여진 애들 입맛을 바꾸기는 쉽지 않네요.”

산과 들에서 딴 오디•매실도 식재료

카페에서는 빵을 만들 때 되도록 이 지역 농산물을 사용한다. 가끔 날을 잡아 숲이나 들판으로 나가서 오디, 개복숭아, 오미자, 매실을 따오기도 한다. 카페 사정을 훤히 아는 주민들은 자기 밭이나 어느 골짜기에 이런 야생과일들이 익었다며 따 가라고 알려준다. 직원들은 이런 열매로 오미자효소나 매실효소 같은 음료를 만들어 내놓는데 특히 외지 손님들한테 인기가 있다. 빵을 만들 때 빼놓을 수 없는 달걀도 이웃 수산 마을에서 유정란으로 공급받는다.

▲ ‘누리마을 빵카페’ 진열대. ⓒ 임온유

“유정란은 크기가 일정하지 않아요. 작을 때도 있고 클 때도 있고 그래서 무게도 다르고. 알도 잘 안 나올 때가 많죠. 닭들이 하도 돌아다녀서 알 찾기도 어렵대요. 무엇보다도 너무 비싸서…(한숨).”

이원범 대표는 일반 달걀보다 유정란이 비싸고 구하기 어렵지만 손님들 건강을 생각하면 차마 무정란을 사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반 무정란은 풀어놓고 키우는 닭에서 나온 게 아니에요. 닭들이 작은 칸 속에 갇혀 계속 전깃불을 쬐면서 인공적으로 낳은 알이죠. 항생제를 듬뿍 먹은 닭한테서 나온 알을 재료로 쓸 수 있나요? 몸에 좋은 재료만 쓰겠다고 손님들과 약속했는데.”

아직 이루지 못한 두 가지 꿈

빵카페는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직접 겪고 있다. 언어 소통이 어려운 이주여성들에게 경제활동의 기회를 제공해 삶의 주체로 내세우고, 지역에서 난 유기농 농산물을 이용해 농촌경제를 살리려 노력한다.

▲ 카페에 조명을 켜면 공연장으로 변신한다. ⓒ 임온유

덕산이란 작은 마을에서 카페가 하는 역할은 그대로도 커 보이지만 장춘봉씨는 아직 이루지 못한 꿈 두 개가 남아있다고 말했다. 빵카페에서 덕산 지역 농산물을 외지인들에게 파는 것과 덕산주민들에게 문화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덕산에는 수수쌀, 붉은팥 같은 곡식에서 헛개열매와 약도라지 같은 약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물이 수확된다.

“작물을 외부에 팔려면 여러 중개상인들을 거쳐야 하니 정작 농민들이 받는 돈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외지에서 오신 빵카페 손님들에게 우리가 직접 판매한다면 덕산 농민들에게 더 많은 돈이 돌아갈 텐데…”

빵카페의 또 다른 꿈은 주민들이 누릴 수 있는 문화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덕산마을에서 스스로 문화공간이 되는 것이다. 카페 내부를 소규모 공연장처럼 꾸몄던 것도 그 때문이다. 별다른 놀이공간이 없는 덕산초등학생이나 간디학교 학생들이 와서 웃고 떠들고 가긴 하지만 문화공간으로서 빵카페는 아직 미완성이다.

“지금은 빵카페를 공연장 용도로 1년에 딱 한번 써요. 송년회 때. 마을 주민들, 학생들, 간디학교 학부모 모두 모여서 기타 치고 노래해요. 한번이라도 쓰는 게 어디에요? 그래도 앞으로 더 많이 이용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카페 직원들은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며 겸손하게 말하지만, 산골마을 사람들의 꿈은 하나 둘 현실로 바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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